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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과 토니 스콧 형제가 제작한 무정부주의 환경운동가들을 다룬 영화 <이스트>. 미국 독립영화계의 여신 브리트 말링이 주연을 맡았는데 감독은 그녀와 함께 <사운드 오브 보이스>로 데뷔한 잘 배트맹글리다.


브리트 말링은 <어나더 어스> <컴퍼니 유 킵> 등 묵직한 주제의 영화에서 만날 수 있는데 <어나더 어스>의 마이크 케이힐 감독이 조지타운대 경제학과에서 만난 동창이라면 잘 배트맹글리와는 이미 단편영화 <레코디스트>부터 함께 작업했던 사이로 이번이 세 번째 작업이다. 골드만삭스의 일자리를 거부하고 영화계에 뛰어든 재원인 말링은 주연을 맡은 영화의 제작을 맡고 각본을 감독과 함께 쓰는가 하면,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기도 하는 등 다재다능하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스트'라는 제목의 첫 인상은 굉장히 평화롭다. <에덴의 동쪽>의 우여곡절 많은 사연이나 동녘의 약속 같은 추상적인 그림이 떠오른다고 할까. 하지만 이 영화는 평화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현실의 거대악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이스트'라는 제목은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영화 속 '이스트'는 반기업 에코테러리스트 조직의 이름이다. 환경을 파괴하는 이들에게 테러를 가하는 과격 환경론자인 그들은 대기업 피해자들을 위한 일종의 자경단이다. 기업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는 사설 보안업체 힐러브로드의 스파이인 전직 FBI 요원 사라(브리트 말링 분)는 이스트에 잠입해 그들의 정체를 파악해오라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우여곡절 끝에 그들의 거주지에 들어가는데 성공한 사라는 며칠 동안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데 거대 조직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이스트는 10여명이 단촐하게 살아가는 친환경 공동체다.


이스트 조직원들은 흩어졌다가 모이기를 반복하며 함께 테러를 모의한다. 그들이 '잼'이라고 부르는 에코테러는 환경을 오염시키는 대기업 CEO를 찾아가 그들의 제품을 강제로 사용하게 함으로서 그 기업의 만행을 사회에 고발하는 것이다. 예컨대 대서양에 기름을 유출한 대기업 CEO의 집에는 석유를 붓고, 안면인식장애 부작용을 유발하는 약품을 판매하는 제약회사 임원진들의 파티에 참석해서는 샴페인에 그 약을 타서 마시게 하며, 암을 유발하는 오염수를 배출하는 기업 CEO를 그 오염수가 쏟아지는 강에 빠뜨리는 식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그들의 방식인데 단원들은 대기업으로부터 직접 피해를 겪었거나 가족을 잃는 등 아픔이 있는 자들이다.


그 이후 스토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선에서 전개된다. 이스트의 일원이 된 사라는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매혹당한다. 손을 쓰지 않은 채 음식을 옆사람에게 먹여주고, 쓰레기통을 뒤져 합법적으로 버려진 음식을 먹고, 서로의 몸을 씻겨주며, 안아주고 키스하면서 몸으로 서로를 느끼는 그들은 옛 히피들이 만들려고 했던 무소유의 정신을 공유하고 있었다.


영화는 사라가 이스트의 일원이 되는 초반부와 두 번의 에코테러를 모의하고 감행하는 중반부, 그리고 마지막 '잼'으로 반전하는 후반부로 나눠지는데 만듦새는 전반적으로 말끔하다. <인사이더> 같은 기업고발 영화와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불법에는 불법으로 맞서는 좀더 단순하고 통쾌한 복수극이다.


장르적으로는 집단적 모의를 통해 범죄를 저지르는 케이퍼무비의 일종이지만 처음부터 스파이인 사라의 시점으로 전개된다는 것이 독특한데 누가 조직의 스파이인지를 궁금하게 만드는 미스터리 방식이 아니어도 그들의 독특한 행동과 테러의 정당성 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스릴을 줄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오는 구성이다. 마지막엔 그녀가 전직 FBI 요원들을 포섭해 새로운 '잼'을 조직하기에까지 이르며 뒷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다.


스텔란 스카스가드의 세 아들 중 장남인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이스트의 정신적 리더인 벤지 역을 맡았고, 엘렌 페이지가 모임을 이끌면서 부도덕한 대기업 CEO인 아버지의 만행을 고발하는 이지 역으로 출연한다. 또 주제가 뚜렷한 드라마에서 곧잘 볼 수 있는 패트리샤 클락슨이 사라를 고용한 힐러브로드의 CEO 샤론 역으로 나온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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