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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전기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뻔한 클리셰와 어설픈 미담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정도가 심했다. 스티브 잡스이기 때문에 봤지만 작가나 감독 역시 그가 스티브 잡스이기 때문에 명성에 짓눌려 있었던 것 같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한심하고 엉성한 영화. 주인공이 스티브 잡스가 아니었으면 개봉하기도 힘들었을 영웅담이다. 애쉬튼 커처는 도대체 여기서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뭐가 잘못 되었는지는 영화 초반 1분만 봐도 안다. 아이팟을 소개하러 연단에 오르는 잡스를 비추는 카메라. 그때부터 카메라는 주인공에게 지극히 경도되어 있다. 우리는 그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현실세계에서 알고는 있지만, 영화는 이제 시작일 뿐 아닌가. 위대함을 칭송할테니 감동할 준비를 하라고 시작하면 영화는 맥이 빠지고 만다. 모두가 칭송하는 잡스 같은 사람에게는 이런 방식이 어울리지 않는다. 영화는 위인전과는 달라야 한다. 이런 방식은 오히려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을 다룰 때에나 효과적이다. 시각을 갖지 않은 영화는 그저 기록필름일 뿐이다.


"대학을 중퇴하고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인도에 다녀오사 이제 비전을 가지고 아빠 차고에서 워즈니악과 창업을 하게 됐다" 영화는 이런 스토리를 비주얼하게 나열한다. 그 과정에서 잡스의 고민이 뭐였는지, 그가 왜 딸을 버리려고 했는지, 왜 독불장군이 되었는지에 대한 고민은 영화에 전혀 없다. 영화는 그를 그저 대단한 선구안을 가진 천재로만 그리고 있다. 조금만 과장하면 마치 초능력자로 보일 정도다. 그가 안 된다고 하는 건 다 안 되고, 그가 된다고 하는 건 다 된다. 그는 동료들에게 자신의 인사이트를 설교한다. 영리한 협상가이고 파워풀한 세일즈맨이다. 세상에 이렇게 완벽한 사람이 또 있을까. 그러나 관객의 입장은 "그래서 뭐?" 정도가 될 것이다. 정말 감독과 작가는 대중이 이런 스토리를 원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만약 잡스가 이 시나리오를 봤다면 심한 독설을 날렸을 거다.


<소셜 네트워크>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잡스>를 보면 <소셜 네트워크>가 얼마나 잘 만든 영화인지를 떠올리게 된다. 마크 주커버그는 데이빗 핀처에게 감사해야 한다. 모두가 페이스북을 칭송할 때 그의 인간적인 어두운 면모를 영화 속에 적절하게 담아 주었다. 그에 비해 <잡스>는 스티브 잡스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영화다. 안 그래도 위기인 애플에 한 방 먹이는 '안티-애플' 영화다. 창업자를 종교지도자처럼 그린 이 영화는 '쿨'한 이미지의 애플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애플의 사내용 무비로도 낙제점일 것이다. 감독은 미국의 또다른 영웅 신화를 만들고 싶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러기에 이 영화는 시대착오적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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