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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50년 후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하루가 멀다하고 기술이 발전하고 자본의 지배가 공고화되는 지금 150년 후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그러나 영화는 언제나 미래 예측의 최전선에 있었다. 조르주 멜리에의 <달세계 여행>은 67년 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으로 이어졌고,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목성과 토성 탐사선 보이저호를 발사하는데 기틀이 됐으며, 어릴때 <스타트렉>을 본 과학자들이 지금 워프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손을 휘젓는 공간 입력장치나 <블레이드 러너>의 인간을 닮은 로봇도 영화가 과학적 상상력을 자극한 케이스다.


SF 영화들이 그리는 미래의 지구는 주로 황폐화되어 있거나 혹은 파시스트가 집권해있거나 혹은 강력한 테러리스트와 전쟁중이다. 그만큼 현재의 지구가 위험해 언제든 최악의 상황으로 추락할 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라는 반증일 것이다. 물론 영화는 짧은 시간 안에 독자적인 세계관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종종 비약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가 풍요롭기만 하다면 영화의 소재로는 별 볼 일 없지 않겠는가. 아, 물론 놀고 먹기만 해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미래를 그린 영화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미래인들도 결국 팔다리가 퇴화해 위기에 봉착하고 만다.



남아공 출신 닐 브롬캠프는 세계관이 뚜렷한 감독이다. 이제 겨우 두번째 장편을 내놓았을 뿐이지만 두 편의 영화에서 그는 미래사회를 통해 불법이민자와 도시빈민, 그리고 계급문제를 일관되게 다루고 있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까다로운 이슈들을 극단적으로 증폭시켜 이대로 가면 미래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를 보여줌으로서 다시 지금의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셈이다.


2009년 <디스트릭트9>은 만약 가까운 미래에 외계인이 지구에 온다면 우리는 그들을 결국 불법이민자 취급하지 않을까 하는 가정에서 출발했고, 지금 개봉한 <엘리시움>은 환경파괴가 계속되면 21세기말 부자들은 황폐해진 지구를 버리고 우주정거장에 새로운 세계를 건설해 이사가지 않을까 하는 상상력으로 시작한다.


부자들이 떠난 지 50년 후, 그러니까 서기 2154년을 배경으로 하는 <엘리시움>의 세계는 단순하다. 엘리시움은 잘 사는 곳이고 지구는 못 사는 곳이다. 지구에서 보면 둥그런 프레첼 과자 모양의 물체가 하늘에 떠 있다. 대기오염과 인구폭증으로 지구는 버려진 땅, 가난한 자들이 사는 행성이 되었다. 자막이 그곳을 LA라고 소개하지 않으면 남미의 한 빈민촌처럼 보일 뿐이다. 반면 선택받은 1%의 부자들은 우주에 떠 있는 엘리시움으로 이민갔다. 풍요롭던 지구의 대기권과 똑같은 환경을 조성하고 쾌적한 공기와 나무와 호수와 저택과 빌딩 등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할리우드 베버리힐즈를 닮은 꿈의 신도시인 그곳은 천상 낙원처럼 보인다.


지구에는 남미계, 아시아계, 아프리카계 등 유색인종이 많은 반면 엘리시움에는 백인들 위주다. 지구인들은 주로 스페인어와 영어를 쓰고, 엘리시움인들은 영어와 프랑스어를 동시에 구사한다. 이런 낡은 이분법은 이 영화가 제시하는 상상력의 근원이 현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굳이 숨기지 않으려는 전략이다. 엘리시움 입장에서 지구는 식민지이며 그래서 지구에 대사관을 두고 노동력을 착취한다. 지구에서 오는 우주선은 불법이민으로 간주해 호전적인 국방장관이 즉결 격추 명령을 내린다.



엘리시움이 고작 1%의 인구로 지구를 지배하는 이유는 그들이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눈부신 기술 발전은 오직 엘리시움에서만 가능했다. 지구인들은 부자들이 떠나기 전 21세기말의 기술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엘리시움인들은 지구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드로이드로 지구인을 통제한다. 자신들이 만든 로봇에 의해 지배당하는 지독한 아이러니는 오늘날 휴대폰이나 커피를 만드는데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고도 정작 임금으로 그 제품을 사기에도 벅찬 가난한 나라 노동자들의 현실과 들어맞는다.


드로이드는 인간이 꺼리는 많은 일을 한다. 경찰, 보호감찰, 경비, 정원사, 의사, 경호원 등의 일이다. 특히 보안을 담당하는 드로이드는 막강한 전투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드로이드의 통제권을 갖고 있다는 것은 결국 막강한 군사력을 갖고 있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야심 있는 국방 장관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공장을 갖고 있는 드로이드 제조업체 사장을 우대해야 하며, 드로이드에게 차마 시킬 수 없는 비밀 임무를 위해 인간 요원을 따로 고용해야 한다. 무한공급이 가능한 드로이드의 지휘권자인 엘리시움의 국방 장관은 어떨 때는 대통령보다도 힘이 세다. 그래서 그는 호시탐탐 대통령 자리를 노린다. 조디 포스터가 연기한 야심 가득한 국방 장관은 전형적이긴 하지만 여성이어서 인상적이다.


<엘리시움>에서 눈여겨 볼 기술의 진보는 군사기술과 의료기술이다. 지구와 엘리시움간 끊임없이 갈등이 있었고 가난한 지구에 자생적인 테러리스트 조직들이 생겨났던 탓에 이를 진압하려는 엘리시움의 군사용 무기들은 진화를 거듭했다. 특히 컴퓨팅 기술이 합쳐진 상상력은 인간 신체와 기계를 결합하기에 이르렀다. 데이터의 저장장치로 클라우드가 광범위하게 쓰이고 인간의 두뇌 역시 저장 장치로 이용된다. 가만, 인간의 두뇌라고? 그렇다. 사실 인간 두뇌는 저장과 재생과 삭제가 반복되며 약 100년간의 수명을 지닌 모바일 램 드라이브 아니던가. 두뇌와 컴퓨터를 커넥터로 연결해 동기화하면 두뇌가 엑사바이트 단위의 무한용량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초고속 스피드의 드라이브로 인식될 것이다. 기술에 따른 차이점이라면 엘리시움인 드로이드 제조업체 사장은 그것을 스타일리쉬한 커넥터로 연결하는 반면, 지구인 맥스(맷 데이먼 분)는 머리 뒤쪽을 드릴로 뚫어서 연결해야 한다는 것. 맥스의 걱정처럼 죽을 만큼 아프겠지.


그밖에 인체도륙용 작은 원반은 피부에 꽂힌 뒤 몇 초 후 인체를 산산조각내는 살인무기이고, 머신건은 드로이드를 박살낼 정도로 화력이 대단하며, 이 머신건을 방어하기 위해 비밀요원은 휴대용 쉴드(방어보호막)를 갖고 다니는데 마치 <드래곤볼>처럼 장력으로 보호막을 만들어 자신을 보호한다. 여기서 아쉬운 이야기의 허점은 이 쉴드를 사용하는 것은 그 비밀요원 뿐이라는 것. 정작 요원을 고용한 국방장관에겐 쉴드가 없다.



지구인들은 여전히 백혈병이나 방사능 누출 등 각종 질병으로 죽지만 엘리시움인들은 인체 DNA 지도가 완전히 정복되어 집집마다 비치된 스캐닝 의료장치 하나로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다. 심지어 샷건으로 박살난 얼굴도 두뇌가 살아있기만 하면 뼈와 피부를 원래대로 재생할 수 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문득 저 장치 하나면 마음대로 성형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론 그러면 의사와 병원도 필요없어질텐데 과연 가능한 미래일까 하는 생각까지도. 모든 병이 정복되고 기계가 정밀하게 치료한다면 의사의 역할은 인체의 진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오히려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라는 직업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지구인들은 이 장치로 자신과 자녀들을 치료하기 위해 죽음을 무릎쓰고 우주선을 탄다. 이 영화는 이 꿈의 의료장치를 둘러싼 모험극이다. 마지막 장면에선 지난 미국 대선을 뜨겁게 달군 화두인 '무상의료'에 대한 비전까지 던진다. 가난한 사람도 돈에 구애받지 않고 치료받을 혜택이 있었다면 어쩌면 엘리시움은 지구와 계급 차이를 유지한 채 공존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감독은 엘리시움이 배경이 된 장면을 캐나다 밴쿠버에서 촬영했고, 지구는 멕시코시티의 빈민촌에서 찍었다. 이 상징적인 제작배경은 결국 이 영화가 미래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지금 우리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는지를 설명해준다. 단순하지만 묵직한 메시지. 거기에 쫓고 쫓기는 두 인물의 격투 장면과 SFX 비주얼도 일품인 영화. 물론 애초의 이분법적 설정이 단순한 탓에 중간에 이야기를 쿠데타와 체제 전복으로 비틀면서 스토리텔링에서 다소 무리한 측면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디스트릭트9>이 피터 잭슨 감독의 자장 안에서 탄생한 센세이셔널한 데뷔작이었다면 <엘리시움>이야말로 또다른 거장이 탄생하기 직전의 적절한 통과의례처럼 보인다. 닐 브롬캠프 감독의 다음 영화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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