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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1981년작. 추억의 영화로 기억하는 이 영화를 정말 오랜만에 다시 봤다. 초등학생 시절 이 영화를 친구들과 함께 보면서 무서워서 벌벌 떨었던 기억이 나는데 다시 봐도 팔뚝과 얼굴에 핏줄이 툭툭 서면서 불타버리는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 강렬하다.


마이클 아이언사이드가 포스터의 주인공이지만 그는 사실 이 영화에서 공동주연 중 한 명이다. 첫 장면의 등장과 마지막 장면의 카리스마가 워낙 대단해서 그동안 이 영화의 단독 주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후에 TV시리즈 <브이>, <A-팀> 그리고 <탑건> <토탈 리콜> <스타쉽 트루퍼스> 등으로 친숙해지는 그의 머리숱 제법 있던 시절을 볼 수 있다. 마이클 아이언사이드가 스캐너들의 세상을 꿈꾸며 지하운동을 벌이는 리더 대릴 리복으로 나오고 그를 막기 위해 스캐너들을 관리하던 ConSec이라는 회사의 폴 루스 박사(패트릭 맥구한)가 찾아낸 또하나의 스캐너 카메론 베일 역으로 스티븐 랙이 출연한다. 스티븐 랙은 마이클 아이언사이드와 함께 이 영화의 주연이고 또 잘생긴 외모로 비주얼을 담당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이후 별다른 출연작이 없다. 1988년 <스캐너스>의 쌍둥이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데드 링거>에 출연한 것이 그나마 눈에띄는 행보의 전부다. 그런데 미안한 말이지만 <스캐너스>에서 그의 연기는 너무 어색해서 차마 눈뜨고 봐주기 힘들 정도다.


<스캐너스>는 <플라이>와 함께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최대 흥행작 중 하나다. 북미에서 14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두 영화의 흥행 성공으로 그는 사실상 이후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백지수표를 받은 셈이다. 이 영화가 당시 관객을 사로잡았던 이유를 짐작해보면 아마도 SF 공포영화로서 독특한 지점을 공략한 것이 아닌가 싶다. 포스터에서 보이다시피 '쇼킹하게 무섭다'는 이미지가 마케팅 포인트다.


'스캐너'는 일종의 초능력자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사토라레>처럼 보이기도 하고, 뇌파를 이용해 타인을 조종하고 심지어 파괴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엑스맨>의 자비에 박사도 이 부류에 속한다. 어쩌면 <왓 위민 원트>의 멜 깁슨도 스캐너 중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스캐너와 경찰의 추격전에 러닝타임을 할애한다. 대릴 리복이 교수들의 세미나에 등장해 사회자와 시연을 하는 척하며 스캐닝 능력으로 사회자의 머리를 날려버린다. 예전에 출시된 비디오에선 이 부분이 잘려 있어서 몰랐는데 다시 보니 첫 장면이 무척 충격적이었다. 당시 관객들에겐 더했을 것이다. 물론 고무인간으로 만든 특수효과는 티가 너무 나서 그냥 <데드 얼라이브> 같은 영화 보는 느낌이긴 하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잡았다 싶으면 스캐닝 능력으로 반전시키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사실 중반까지는 굉장히 지루하다. 뚝뚝 끊기는 편집과 너무 단순한 반전에도 지나치게 힘주는 연출이 답답하다. 그동안 이런 장면들을 너무 많이 봐와서 예측가능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로넨버그는 아주 직설적이어서 끝까지 뚝심 있게 밀고 나간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것이 폭발할 때는 지금까지 이 영화를 과소평가했구나 하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카메론은 스캐너를 양산하는 페므롤을 만드는 바이오카본 연구소와 ConSec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내부에 첩자가 있다는 것이다. RIPE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페므롤을 만든다. 그러나 루스 박사는 그 사실에 충격받는다. 그리고 카메론에게 인간에게 스캔하는 것처럼 컴퓨터에 스캔하라고 말한다. 당시에 테이프로 돌아가는 거대 컴퓨터와 흑백의 단말기 역시 아주 인상적인데 당시 관객들에게는 첨단이어서 인상적이었을 것이고 지금 보면 뭐 저렇게 어설플 수가 있을까 싶어 인상적이다. 카메론은 공중전화기를 통해 컴퓨터를 스캔한다. 그때 내부 첩자였던 브래든 켈러(로렌스 데인)가 컴퓨터를 파괴시키면서 카메론은 뇌파에 손상을 입는다. 전화기를 타고 충격이 전해지면서 수화기에서 기름이 뚝뚝 떨어져 불이 붙는 장면의 상상력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드디어 만난 대릴 리복과 카메론 베일. 여기에서 지금까지 스토리와는 전혀 다른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이 반전을 위해 준비해놓은 함정이었던 셈이다. 어차피 만들어진지 32년이나 된 영화이니 모두 이야기하자면, 바이오카본사는 1947년 임신부를 위한 안정제 '페므롤'을 출시하는데 이 약은 부작용 때문에 실패했다. 그 부작용은 태아에게 치명적이었는데 바로 아이를 스캐너로 만들어버린 것. 바이오카본사와 재정적 후원사인 ConSec은 모두 이 사실에 흥분했고 약의 개발자를 영입했다. 그가 바로 루스 박사. 그는 약이 출시되기 4년 전에 자신의 아내에게 이 약을 먹였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바로 대릴 리복과 카메론 베일. 두 사람은 모두 스캐너 능력을 가진 형제 관계인 것이다. 대릴이 "루스 박사가 너와 나의 아버지다" 라고 할 때의 반전은 1980년작 <스타 워즈 - 제국의 역습>에서 다스 베이더가 "내가 네 아버지다"라고 할 때의 반전 만큼이나 쇼킹하다. 페므롤은 스캐너를 만드는 능력도 있지만 한편으론 스캐너들을 예민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능력도 있다. 발병제와 치료제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1947년이 시대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1979년에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촬영한 시점에서 이 영화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스캐너들을 원자폭탄에 희생된 기형아들에 대한 상징처럼 담은 것이다. 그들은 특별하지만 너무 예민한 존재들이다. 자신의 자식을 괴물로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 루스 박사는 1970년대 당시 급격하게 진행되던 산업화와 생명과학의 발전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를 담고 있고, 포스트 베이비붐 시절에 이대로 가다간 지구가 인간들로 넘쳐나 굶어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은근히 깔려 있기도 하다. 그래서 카메론 베일과 함께 다니는 여자 스캐너인 킴 오브리스트(제니퍼 오닐)가 임신부의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스캐닝을 당하는 장면이 인상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어쨌든 다음 장면은 두 형제가 누가 더 막강한지 겨루는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클라이막스다. 지금 보면 엉성한 특수효과지만 얼굴에서 핏줄이 튀어나오는 장면은 여전히 끔찍하다. 그동안 타인의 마음을 읽고, 조종하고, 파괴했던 스캐너에게 아예 다른 신체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까지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난다. 불에 타버린 카메론 베일의 시체를 발견한 킴 오브리스트에게 대릴 리복이 말한다. "우리가 이겼어! We won!" 크로넨버그의 전매특허인 신체 이탈과 전이의 초기 버전인 셈이다.


크로넨버그가 직접 쓴 각본으로 만들어진 <스캐너스>는 1990년에 비디오용 영화로 속편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2007년엔 DNA나 생체리듬 등으로 좀더 과학적 근거를 집어 넣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정작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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