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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에 대한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제85회 오스카 시상식의 포인트 몇 가지를 짚어보자.

1. 미셸 오바마의 깜짝 등장과 작품상 시상

: 잭 니콜슨이 오바마를 소개했고, 미셸이 화상에 등장했다. 유난히 정치적인 영화가 많았던 이번 영화제 후보작들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유추하는 이야기가 많이 생산됐다. 이란은 오바마가 <아르고>를 발표하자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2. 아카데미 회원들이 인터넷 투표를 했음에도 골고루 나눠준 수상 결과

: 지금까지의 아카데미는 대개 한 작품에 몰표를 주어왔다. <벤허> <타이타닉>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은 무려 11개의 트로피를 싹쓸이간 영화들이다. 이런 결과가 나왔던 것은 회원들의 투표성향이 일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엔 황금비율로 배분되었다. 이안, 타란티노부터 007까지 못받았으면 아쉬웠을 영화들을 골고루 챙겨준 걸 보면 참 신기할 정도다.

3. 다니엘 데이-루이스의 세번째 남우주연상

: 이로서 그는 오스카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3개 가져간 유일한 남자배우가 되었다. 잭 니콜슨도, 로버트 드니로도, 캐리 그랜트도 그 누구도 해본 적 없는 기록이다. 여자 배우 중에는 캐서린 헵번이 여주주연상을 4번 받았다.

4. 공동수상자 탄생

: 그동안 아카데미 후보작이 인정받았던 것은 공동수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수십년 만에 공동수상작이 나왔다. 음향편집상의 <스카이폴>과 <제로 다크 서티>. 한 명씩 나와서 수상소감 발표하는 모습이 오스카에서 볼 수 없던 풍경이었다. (한국 드라마 시상식에서야 자주 볼 수 있지만)


그렇다면 <아르고>에 작품상을 준 오스카의 선택은 어떻게 봐야 할까?

사실 이날 <아르고>의 수상은 어느 정도 예견되어 있었다. 골든 글로브, BAFTA, 스크린길드 등 유수의 미국 영화상을 휩쓸어왔기 때문이다. 미국내 대부분의 매체들도 <아르고>를 점찍었다. 그런데 과연 이 영화가 작년 최고의 영화인가? 혹은 후보작 9편 중 최고인가?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의문점이 남는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르고'는 용사 이아손(Jason)이 황금의 양털을 찾기 위해 타고 떠난 배를 말한다. 영화 속에서는 가짜 SF영화의 제목이었지만 오스카를 향한 항해에서는 벤 애플렉 자신이 신화 속 용사처럼 보인다. 더이상 출연요청이 들어오지 않아 괴로웠던 그는 '한물 간 미남배우'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출연할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벤 애플렉이 만든 영화들을 돌이켜보자. 그는 1997년 <굿 윌 헌팅>의 각본을 맷 데이먼과 함께 써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이름을 알렸다. <굿 윌 헌팅>은 사회부적응자에게 감추어진 재능을 발굴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영화였다. 그로부터 10년 뒤 그가 2007년 감독으로 데뷔한 작품인 <가라 아이야 가라>는 아이가 실종되었음에도 무능한 경찰 대신 사설탐정을 고용하는 이야기였고, <더 타운>은 보스톤을 배경으로 미국이 갈 데까지 간 범죄도시라는 것을 액션으로 포장해 고발하는 영화였다. 이쯤되면 그의 영화세계는 무능한 국가를 질타하고 개인 간 소통에서 해결책을 찾는 영화라고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더 타운>에서는 범죄가 대물림되는 도시에서 은행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기까지 하는데 결국 사건이 해결되는 방식은 고전적인 사랑이다.


이런 맥락과 비교해보면 벤 애플렉이 <아르고>를 만든 것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일맥상통하는 면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기획단계부터 오스카를 노린 것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다. <아르고>는 1979년 이란 미국대사관에 억류된 인질을 구출하기 위한 CIA의 비밀작전을 긴박하게 그린 영화다. CIA 요원 토니는 생명의 위협을 무릎쓰고 헐리우드와 함께 페이크 SF영화를 기획해 이란으로 잠입한다. 물론 영화 중간마다 중요한 고비에서는 국가의 의지보다는 토니 개인의 의지로 사건이 해결되는 장면들이 있지만 결국 엔딩은 작전을 훌륭하게 수행한 토니 요원이 먼훗날 클린턴 시대에 훈장을 받는 것이다. 이쯤되면 미국 CIA의 홍보영화라고 불려도 무방할 정도다. 미국 입장에서는 추억을 되새기며 현재 중동에서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한 자양강장제 무비고, 캐나다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미국을 도와줬다며 우쭐댈 수 있는 선물 같은 영화다. 그러나 이란 입장에서는 이란인들을 너무 단순하게 그린 악몽 같은 영화일 것이다.


물론 만듦새가 뛰어나기는 하다. 마지막 클라이막스의 교차편집에서는 긴박감이 넘친다. 그래서 한 편의 뛰어난 스릴러로서 손색이 없다. 그러나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스카이폴>도 정말 잘 만든 오락영화였고, <장고: 분노의 추격자>는 카타르시스가 넘치는 액션 서부극이었다. 장르 안에서의 완성도로만 평가한다면 <아르고>에만 관심이 쏠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르고>는 분명히 영화 외적인 요소에서 어필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르고>에서 토니(벤 애플렉 분)가 이란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면 어떤 '포비아'가 느껴진다. 그에게 이란은 냉전시대 공산주의 소련이고, 나찌시대 독일이며, 지금의 북한 같은 곳이다. 시체가 하늘에 매달려 있고 혁명군들은 토니를 에워싸고 있다. 그들이 차 문을 두드리는 위협이 영화 속에서는 좀비들이 공격해올 것 같은 공포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들은 혁명의 와중에도 캐나다산 헐리우드 SF영화를 위해 촬영허가를 내주고, 3단계 검문을 하면서도 스토리보드에 희희낙락하며 미국인을 캐나다인으로 속는 바보들이다. 영화 마지막에 지프차를 타고 활주로를 비행기와 함께 달리는 이란인들은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에서 해리슨 포드를 놓친 독일 군인들 만큼이나 참 멍청해 보이는데 그런 이미지가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바꿔 말하면 영화 속 캐릭터는 아주 전형적이고 동기는 진부하다. <더 타운>에서도 그랬지만 벤 애플렉의 영화는 첫 장면을 마주할 때부터 엔딩이 어떨지가 자명하게 보인다.


물론 오스카가 <아르고> 같은 영화를 선택한 것은 익숙한 장면이긴 하다. 그들은 미국적인 가치관을 심은 영화들을 자주 선택해왔으니까. <패튼> <록키> <늑대와 춤을> <쉰들러 리스트> <브레이브하트> 같은 영화들이 그런 예다. 그래서 <아르고>의 수상에 대해서도 실망 보다는 "그렇지 뭐" 하는 수준으로 끄덕거리게 된다. <아르고>와 비슷하게 CIA를 소재로 한 영화인 <제로 다크 서티>는 영화 속에 CIA가 알카에다 조직원에게 물고문을 하는 장면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 때문인지 오스카에서 외면받아 음향편집상만을 수상하는 데 그쳤다.


최근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들을 역순으로 살펴보면 <아르고> <아티스트> <허트로커> <킹스 스피치> <슬럼독 밀리어네어>. 다들 고만고만한 영화들이지만 그중 <아르고>에서 어떤 특별한 점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역대 오스카 수상작들 중 주제나 장르 면에서 <아르고>와 비슷한 영화들을 찾아봤는데 <프렌치 커넥션> <스팅> <쉰들러 리스트> 등이 떠올랐다. <아르고>가 이런 영화들과 비교우위를 가질 만한 점이라면 정교한 편집일텐데 사실 그마저도 더 낫다고 하긴 힘들다. 아마도 먼훗날 <아르고>를 오랫동안 기억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르고>가 아니라면 필자의 선택은 뭐였냐고? 9편의 작품상 후보들 중 주제 면에서는 <장고: 분노의 추격자>를 뽑고 싶고, 완성도 면에서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흑인이 말 타고 달리는 최초의 서부극인 <장고: 분노의 추격자>는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 가장 기념비적인 서부극으로 기억될 것이며 비슷하게 노예제도에 관한 영화 <링컨> 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시각적으로 1850년대의 노예제도를 비판하고 있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경우 원작을 이보다 더 잘 스크린으로 옮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3D 화면은 꿈꾸는 듯한 영상 시였고, 망망대해에서 리처드 파커와 파이의 대결은 그 자체로 묵직한 주제를 품었다. <장고: 분노의 추격자>는 각본상, <라이프 오브 파이>는 감독상을 받았으니 오스카가 이들을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들은 분명 더 대접받을 자격이 있는 영화들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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