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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접한 뒤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막연하게 용산참사를 다룬 소설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던 책. 그러나 책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부터 이런 생각과는 많이 다른 책이라는 걸 알게 됐다. 용산에서 모티프만 가져왔을 뿐 소재도 구성도 사실관계도 전혀 다르다. 용산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방화로 6명이 죽었지만 이 소설에서는 박재호라는 아현동 철거민이 아들이 매맞는 모습을 보고 전경의 뒤통수를 가격해 죽인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은 전경이 아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철거용역이 아들을 죽였다고 발표한다. 또 용산의 변호사는 국선변호인이 아닌 김형철 변호사를 중심으로 한 민변이었지만 이 소설에선 한 국선변호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이 사건에 매달린다. 그러나 작가는 이 소설의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용산을 언급한다. 그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충분히 용산을 떠올리게 한다.


"형사대법정의 천장에는 화려하고 거대한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다. 풍성하게 맺힌 크리스털에 굴절된 빛은 경로를 달리하여 달린다. 광원은 하나였지만 빛은 동굴에 사영된 각기 다른 윤곽의 진리처럼 방청객 한 명 한 명의 이마에 가뿐히 내려 앉았다. 말할 수 없는 부조화. 일본에서 수입한 독일식 법을 프랑스식 샹들리에 밑에서 그리스에서 기원된 양식으로 한국인에게 선고하는 곳. 이곳이다." (P.258)


용산이 아니었어도 이 소설에 충분히 공명했을까? 이 소설이 그리고 있는 이상적인 변호사의 모습은 헐리우드 영화나 미국 소설에서 마주할 법한 인물이다. 그는 환경과 우연과 운과 불운이 겹쳐 사법고시를 통과해 그저그런 변호사가 되었다. 먹고살기 위해 국선변호사가 되었지만 이 사건을 맡은 순간 평생에 남을 사건임을 알게 되고 여기에 몸을 던진다. 불의를 위해 싸우는 영웅치고는 초라한 출발이다. 그러나 초라하기에 인간적인 영웅이다. 그가 선배 변호사와 또한명의 이상적인 영웅 법학자의 도움을 얻어 법정에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인다. 가망없어 보이던 싸움은 여론을 등에 업고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다. 현실에선 이보다 더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독자는 그의 성공에 환희와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 용산이 아니었다면 이 소설은 그저 한 변호사의 무용담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변호사라는 인물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긴 하다.


이 소설의 장점은 디테일이다. '기산일로부터 7개월 전', '기산일', '기산일 6개월 후'로 나눠지는 챕터부터 심상치 않은데 소설에는 법과 관련된 전문용어들이 난무하고 사법연수원부터 형사법정까지 이어지는 절차 하나하나가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 정도가 법에 문외한인 필자 같은 범인들이 이해못할 정도는 아니어서 충분히 짐작하며 읽을 수 있다. 디테일과 디테일에 수반된 이야기의 밀도 덕분에 소설은 법정활극으로도 흥미진진하다. 불가능해보였던 일이 가능하게 될 때의 쾌감. <어퓨굿맨> 이후 한때 유행했던 법정드라마처럼 플롯은 명백해보이는 국가의 불법과 불의를 정면으로 마주보며 직진한다. 몇 년 전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으로 인해 미국처럼 변호사와 검사가 배심원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법정드라마가 구성될 수 있었다. 가끔 소설이 그리고 있는 너무나 이상주의적인 교수와 기자와 변호사의 모습으로 인해 손발이 오글거릴 때도 있지만 어차피 이 이야기는 용산참사가 실제로 법정에서 다루어졌던 것과는 다른 방식을 가정하는 데에서 출발했다.


"기대는 했지만 예상은 못했던 일이었다. 법원의 재정신청 승인이 떨어졌다. 1948년부터 1999년까지 재정신청이 인용된 사건은 열일곱 건에 불과했다." (P.94)


이 책의 제목은 왜 '소수의견'일까. 읽는 내내 가장 궁금했다. 소수의견이란 '대법원 등의 합의체 재판부에서 판결을 도출하는 다수 법관의 의견에 반하는 법관의 의견'을 말한다. 해외 부재자 투표권이 소수의견에 머물다가 몇 년 후 다수의견이 되어 법이 만들어지고, 야간옥외집회 금지, 국가유공자 가산점 부과, 혼인빙자간음죄 등이 결국 사라진 것도 그동안 소수의견을 내온 법관들 덕분이었다. 그밖에 소수의견은 교통사고 처리에 관한 법이나 폭력행위 처벌에 관한 법에서 피해자를 더 구제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예컨대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다고 피해자에 중상해를 입힌 교통사고 가해자의 죄가 면책되지 않는다는 식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사용된 '소수의견'은 위에 쓰인 경우와는 다른 것 같다. 이 소설의 주요 갈등은 국가와 개인, 좀더 구체적으로는 검찰과 변호사의 법리다툼이다. 소설의 중반에 증인과 증거물로 제시되지만 검찰은 조직의 이익을 위해 사건을 조작한다. 이를 엄호하는 쪽은 청와대와 경찰이다. 재판부는 이 구도에서 한 발 빼는 모습이다. 소수의견이라고 할 만한 법관의 의견도 없고 그럴 여지도 없다. 주인공 윤변호사가 가망없다고 생각했던 사건을 끝까지 추적하는 것은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으로 바뀌는 과정과는 다르다. 사실 관계에 대한 해석에서 대립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 관계를 잘 모르고 또 그럴 용기와 능력이 없어서 움직이지 못한 것이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꼭 법률적인 해석에 국한되지 않는다면, 제목이 '소수의견'이 된 것은 소설 마지막에 등장하는 형사법정 재판장의 독단적인 소수의견이 결국 배심원 만장일치를 뒤엎어버린 것을 모순적으로 비꼬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법정을 나설 때 그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으스대는 얼굴. 이 법정에서 자신만이 정의롭고, 자신만이 솔직하고, 자신만이 실천주의자라고 공표하는 확신에 찬 얼굴. 정의의 진짜 적은 불의가 아니라 무지와 무능이다. 역사를 통틀어 그래왔다." (P.383)


법정 드라마로서 꼼꼼한 묘사를 보여주고 있는 이 소설의 가장 큰 단점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법정을 벗어나면 약해지는 디테일이다. 독자는 법정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잘 알 수 없다. 여론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 것인지, 실제로 사건이 벌어진 그날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세부묘사는 없다. 이준형이라는 사회부 여기자가 등장해 변호사를 돕고 여론을 환기시키지만 그런 기자는 재벌가 며느리에 예쁘기까지한 이민정 검사 만큼이나 전형적인 캐릭터이고 그래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특히 이준형 기자의 캐릭터는 너무 기능적으로 사용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히려 이 소설은 극적인 법정드라마로서 보다는 소설이 곳곳에서 하고 있는 질문들 - 삶과 법과의 문제 - 에 더 가치가 있다. 각종 법 관련 책들의 인용문구와 작가가 윤변호사의 심정을 통해 던지고 있는 질문들은 곳곳에서 독자의 심장을 겨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 변호사는 왜 없지 않고 있는가, 법은 결국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가. 1부와 2부의 첫 부분에서 윤변호사는 조폭 두목 조구환을 변호한다. 그는 명백한 범죄자이지만 윤변호사는 공소시효라는 법적 제도를 '활용'하여 그를 무죄로 만든다. 이 대목이 소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그 질문은 크고 넓다. 법의 수호자는 사라지고 그도 결국 직업인으로서 변호사가 되었다. 그가 깨달은 법의 무용성이 결국 '법 이전에 사람'이라는 진리로 나아가기까지는 소설 전체 페이지를 지나가야 한다. 용산이라는 거대한 집단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면 [소수의견]에선 한 변호사의 성장드라마가 보인다.

"나는 변호사였던 대통령의 죽음을 생각한다. 그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대통령의 죽음을 슬퍼했고 변호사의 죽음을 기억하지 못했다." (P.98)

"나도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해봤다. 계속 고민하고 있다. 삶의 국면마다 비슷한 질문들이 있었다. 기억은 시간 속으로 제각기 흩어졌지만 질문들의 몸통은 결국 하나였다. 어떻게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의 문제." (P.93)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소수의견]의 가치는 분명하다. 한국사회에서 변호사라는 직업이 갖는 상징성과 한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 지금까지 한국 소설에서 보기 힘든 디테일로 설득력 있게 전개하고 있다. 손아람 작가의 꼼꼼한 문장으로 인해 지금 법원 근처에 가면 윤변호사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작가가 소설을 탈고한 뒤 원인 모를 이유로 파일이 날아가 겨우 복구했다던데 이 소설은 작가에게 운명 같은 것이었나보다.

그런데 영화는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물론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장면장면이 연상되기는 했다. 캐릭터가 무척 영화적이라고 할까.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은 참 매력적이다. 그런데 영화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윤변호사와 대석 변호사 외의 다른 인물들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책 초반부에 염만수 교수가 참 매력적이었는데 능력자에 올곧은 신념을 갖고 있는 완벽남인 그에게서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스를 보는 듯한 매력을 느꼈다. 그에 비하면 이주민 교수는 책에서 묘사하는 것만큼의 매력이 느껴지는 캐릭터는 아니다. 염 교수와 캐릭터가 많이 겹치기 때문이다. 각색 과정에서 차라리 과감히 두 사람을 한 사람으로 합치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이준형 기자의 경우 비중을 늘릴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부러진 화살>에서 김지호가 맡은 기자처럼 부수적인 역할에 그칠 것이다. 법정공방 만으로도 충분히 드라마가 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검찰과 조합장 등 권력 주변의 인물들을 좀더 디테일하게 살려 <부러진 화살>보다는 <부당거래> 같은 영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수의견
국내도서
저자 : 손아람
출판 : 들녘 201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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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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