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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우연히 찬란한 유산을 1회부터 라이브로 보게 되었다.
평소에 드라마를 잘 보지 않지만 그날따라 우연히 TV가 보고 싶었고
그냥 채널을 돌리다가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하기에 눈이 갔던 것이다.


고은성과 선우환이 입국하는 공항 장면에서부터 시작한 드라마는 사실 너무 유치했다.
"뭐 드라마가 다 그렇지" 하면서 보기 시작했는데 전개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고은성의 집안이 몰락하고 김미숙이 생애 최초로 악역을 선보이고...
그날 드라마가 끝날 때쯤에는 한 장면 한 장면 슬슬 몰입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날 이후 한 회도 빼놓지 않고 보게 된 나.
나만큼이나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팬들이 많아져서
지난주말에는 시청률이 40%가 넘었다고 하니...
그렇다면 한국 5천만 인구중 2천만명 가량이 이 드라마를 본다는 것인가...
TV를 혼자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테니 플러스 알파 하면 도대체 몇 명인가...
정말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이 드라마가 40%라는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구에 그리 회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 상반기 <꽃보다 남자>나 <내조의 여왕>보다 더 높은 시청률이지만
이 두 드라마에 비하면 거의 듣보잡 수준이다. 왜 그럴까?

익숙한 캔디 이야기에 뻔한 사랑, 단순한 선악구도 때문에 화제가 될 부분이 없어서일까?
언론에 기사화되는 부분도 이승기의 스타성과 한효주의 발견이라는 연예인 예찬 외에
드라마에 대한 별다른 이야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언론에서 여기저기 기사 쏟아내는 것을 보면 착한 드라마의 귀환이니
요즘같은 때 무공해 드라마가 뜬다느니 하는 평을 하고 있는데
(사실 나는 그런 기사들에 그다지 공감이 가지는 않는다. 이 이야기는 아래에서 다시 하기로 하자.)
그만큼 기사거리가 없을 정도로 이 드라마에서 더이상 끄집어낼 것이 없는가보다.
한마디로 드라마가 한국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같으면 장숙자 회장의 경영철학에 대해 얘기했을지 모르지만
확실히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한국사회는 너무 많이 돈에 찌들었고,
아버지와 좋아하는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준세의 선택을 이야기하기에
더이상 스타가 아닌 배우는 기사거리가 되지 않는다.
부잣집 딸에서 가난으로 내몰린 고은성의 내면을 다루기에
드라마는 한없이 가벼운 반짝이공처럼 토끼 모양의 머리띄를 메고 통통 튄다.

한 마디로 이 드라마는 사랑, 갈등, 사업가정신, 가족, 믿음, 배신 등을 다루고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을 그저 피상적으로 툭툭 건드릴 뿐이고
결론은 고은성이라는 한 예쁜 캔디와 사각관계, 그리고 할머니의 유산의 향방이 드라마의 전부이다.

하지만 그나마 미디어의 관심은 온통 선우환과 고은성이 어서 빨리 과거의 연인을 정리하고 알콩달콩 사랑을 나눠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네티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것인지에 대해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시청률이 드라마의 모든 단점을 커버해주는 것처럼 보이니
기자들이 드라마에 대해 나쁜 기사를 쓸 수 없는 이유도 있겠으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시청률이 40%나 나올 정도로 주말밤의 눈과 귀가 쏠려 있는 드라마에 대해
그저 한효주의 CF퀸 등극이라는 기사 밖에 쓸 줄 모르는 언론이라니... 참 한심하다.


마지막으로 아까 하려고 했던 무공해드라마라는 평에 대한 반론.

불륜이나 애정행각, 폭력이 나오지 않는다고 막장드라마가 아닌 것은 아니다.
사실 <찬란한 유산>도 조금 다른 방식이지만 눈쌀을 찌뿌리게 하는 설정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장숙자 할머니의 가족들이 그렇다.
요즘에는 조금 나아진 것 같지만 초반에는 오영란과 선우정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들의 대화는 돈 이야기로 시작해서 할머니가 어서 빨리 죽었으면 하는 것으로 끝난다.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다.
누가 봐도 그들의 대화는 말이 안된다.
이들의 이런 억지스런 설정이 고은성의 착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장치였는지는 몰라도
정말 처음 접했을때는 그 어떤 막장 드라마보다 더 황당해서 적응이 잘 안됐다.


어쨌든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드라마를 한 회도 안빼놓고 보는 이유는
무엇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피상적이고 유치하다고 해도 연기자들이 배역에 어울리고
얽히고 설킨 관계들과 빠른 전개가 매회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있다.

나는 지금도 이번주에 준세가 어떤 결정을 할지 너무 궁금하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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