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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은 한국과 참 밀접하게 연결된 도시다. 동-서 베를린으로 나뉜 분단의 현장은 남북관계를 떠오르게 하고 도시 전체가 2차대전 때 폐허가 되어 새로 지어진 역사는 6.25 전쟁 이후 새로 지은 서울을 떠올리게 한다. 박정희 정권 때 동백림 사건의 무대이기도 했고, 윤이상이 귀국하지 못하고 평생 살던 곳이기도 했다. 냉전시대에는 존 르 까레를 비롯한 수많은 첩보소설과 영화의 무대였고, 그 명성은 현재에도 이어져 <본 슈프리머시>에서도 베를린이 무대로 등장했다. 베를린은 유럽여행을 가는 한국인들이 독일여행을 할 때 빼놓지 않고 들르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만큼 한국인에게는 묘한 동질감을 불러일으키는 도시인데 왠지 걸어가다가 북한 유학생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무너진 베를린 장벽을 빼면 정작 별로 관광할 만한 곳은 많지 않은 도시다. 브란덴부르크 문 양옆으로 펼쳐진 넓은 공원이 부럽지만 전반적으로 음울한 기분이 감도는 도시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를린>의 영어 제목은 The Berlin File. 묘하게도 이 제목은 1991년 한국영화 <베를린 리포트>를 떠오르게 한다. 박광수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에서 강수연은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해왔고 이를 알게 된 오빠 문성근이 그를 죽이고 베를린으로 도피했다. 말하자면 베를린은 성폭행당한 동생을 지켜준 오빠가 도망갈 수 있는 최후의 도피처같은 곳이었다.


냉전시대를 정면으로 담아온 도시의 역사 만큼 베를린은 신비한 곳이고, 한국과의 긴 인연 만큼 한국형 첩보영화의 무대가 될 수 있을 만한 곳이지만 사실 베를린은 너무 유명한 곳이어서 왠만한 이야기로는 그 도시를 제대로 담을 수 없다. 그만큼 영화 제목을 '베를린'으로 했을 때는 제목에서 주는 중압감으로 인해 기대를 하게 되고, 만드는 사람도 그만큼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제목이 무려 '베를린'이라니! 당신이 만약 영화 제목을 '서울'로 한다면, 왠지 어떤 거대한 이야기나 모두에게 통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지 않은가. 우리 모두가 아는 서울을 제목으로 그저 그런 고부갈등 스토리나 늘어놓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실망할 것이니까.


이쯤에서 도시를 제목으로 한 영화들을 찾아보자. 그 어떤 수식어도 없이 도시가 제목인 영화로 <도쿄!> <필라델피아> <뉴욕> <뮌헨> <파리> <런던> <부에노스 아이레스(해피 투게더)>, 한국영화로는 <부산> <파주> 가 떠오른다.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그 도시를 특징적으로 드러내주는 소재들을 갖고 있다. 즉, 그 도시의 이미지가 영화의 주인공이다. 인권선언이 처음으로 이루어진 도시 필라델피아의 동성애자, 올림픽 테러사건이 일어난 뮌헨, 홍콩 게이커플의 이상향 부에노스 아이레스, 재개발의 기억을 간직한 파주 등.



그렇다면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은 그 제목에 부합할 만한 영화인가? 우리가 베를린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영화의 주인공인가? 결과부터 말하자면 내 대답은 '아니오'이다. 이것은 비단 지금의 통일독일 수도인 베를린이 냉전시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결국 베를린이라는 이국 땅에서 북한 사람들끼리 배신하고 버림받는 이야기가 이 영화 스토리의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즉, <베를린>에서 남한은 그저 들러리처럼 쓰였다. 굳이 영화의 배경이 베를린일 필요는 없었다는 말이다. 예컨대 미-소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소련인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영화의 제목이 베를린이었다고 상상해보라. 미국인이 갑자기 동료애를 느끼고 배신당한 소련 스파이를 도와준다고 상상해보라. 그것도 역사를 간직한 베를린 장벽이나 브란덴부르크 문 근처가 배경이 아니라 저 멀리 외딴 갈대숲의 건축양식도 궁금하지 않은 한적한 집이 클라이막스의 배경이라면 왜 제목이 베를린인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베를린'이라는 제목은 그저 이국적 풍경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끼 역할 밖에 하지 못한다.


두번째 질문. 이야기의 구성이나 영화를 만든 방식은 적절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내 대답도 역시 '아니오'이다. 즉, 제목이 지칭하는 '베를린 파일'의 소재 자체는 그럴 듯하게 살아있지만 그 구현방식은 전혀 새롭지 않다.


한국영화에 빈약한 장르 중 하나가 첩보물이다. <쉬리> 이전에 첩보영화가 떠오르지 않고, <쉬리> 이후에도 <이중간첩> <다찌마와 리> <7급 공무원> <아이리스> 정도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이렇다할 레퍼런스도 없고 노하우도 없다. 유명한 스파이 소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랑받는 캐릭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007> 시리즈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본> 시리즈가 한국에서도 흥행하는 것을 보면 한국 관객들은 첩보영화를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다.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당신이라면 어떻게 만들겠는가? 류승완의 방식은 기존 영화들에서의 짜깁기다. <본> 시리즈에서 제이슨 본의 캐릭터, 톰 롭 스미슨의 [차일드 44]의 음모와 배신, 존 르 카레식의 조직과 개인<첩혈쌍웅>의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한편이 되는 이야기,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식의 부부 의심, <인셉션>에서 캐릭터들의 관계가 레이어 겹치듯 포개지는 플롯 등을 가져왔다. 어차피 현대의 모든 영화는 모방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탓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문제는 영화의 만듦새가 생각만큼 매끄럽지 못하다는 데에 있다. <본 아이덴티티>가 전혀 새로운 이야기여서 <007>과 <미션 임파서블>이 장악하고 있던 첩보물 시장에서 새로운 돌풍을 일으켰던 것이 아니다.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에 어디서 많이 본 캐릭터라고 하더라도 무언가 하나라도 새로우면 전체가 새롭게 느껴진다. <본> 시리즈의 무기는 핸드헬드와 빠른 전개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캐릭터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베를린>에는 그 한 방이 없다. 뭔가 하나라도 새로운 것이 없다. <쉬리>를 떠올려보면 그 영화 역시 새로운 것은 없었지만 강렬한 북한 스파이가 등장했다. 그러나 <베를린>은 캐릭터들도 그다지 새롭지 않다. 그동안 다른 영화에서 봤음직한 인물들이다. 짜깁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몇 가지 단점들을 나열해보자. 우선,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처음엔 북한 사투리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스토리를 많이 생략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너무 친절해도 안되겠지만 너무 불친절해도 관객들은 어리둥절하다. 안들리는 대사를 들으려고 집중하다보면 (사실 그다지 멋진 대사도 없고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만큼 복잡한 스토리도 아닌데) 장면을 놓치게 되고 그러면 그냥 기존 스파이 영화의 공식에 줄거리를 대입하게 된다. 그러면 또 그게 맞는다. CIA니 MI6니 모사드니 모두 이름만 거창하게 나올 뿐 결국 순식간에 사라지고 남는 것은 쫓기는 북한 공작원 부부와 남한 국정원 요원이 <첩혈쌍웅>처럼 개입하는 이야기 뿐이다.


둘째, 영화에 리듬감이 없다. 플롯이 직선으로 뻗어가는 영화일수록 리듬이 중요하다. 전진할 때와 쉴 때를 관객에게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관객이 캐릭터에 쉽게 동화된다. 그런데 <베를린>은 그걸 잘 못한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영화가 관객보다 먼저 놀란다. 관객이 "아..." 감탄사를 내뱉으며 생각할 시간을 갖기도 전에 영화가 먼저 이 장면에선 이렇게 진행될 거라고 가르쳐주는 느낌이 든다. 시종일관 쿵쿵거리는 테크노 음악의 사용도 별로 효과적이지 못했다. 어떤 장면에서는 아예 음악을 뺐으면 어땠을까 싶다. 음악이 있어야만 긴장감을 살릴 수 있다고 믿는 첩보영화는 스스로 재미 없다고 시인하는 꼴 밖에 안된다. <미션 임파서블>의 저 유명한 줄타기 장면에선 아무런 음악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보라.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볼 만한 장면은 라트비아에서 찍었다는 자동차 액션 씬과 아파트 건물 난간에서 추락하는 장면이다. 련정희(전지현)가 쏜 총에 바닥의 유리창이 깨지면서 표종성(하정우)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장면에선 긴박감이 넘친다. 직접 몸이 부딪히는 아날로그 액션에선 류승완의 능력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다. 그러나 인물들이 총을 꺼내기 시작하면 액션 씬은 지루해진다. 도대체 총을 왜 어디로 쏘는지 알 수가 없고 긴장감도 없다.


작년에 개봉한 <007 스카이폴> <루퍼>와 <베를린>의 공통점이 있다. 마지막에 허허벌판 외딴 곳으로 와서 큰 집을 불태우고 갈대밭을 서성거리다가 죽고 죽이며 끝난다는 것이다. 이건 액션 영화의 어떤 유행 같은 것일까? 류승완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장면은 리 마빈과 진 해크먼이 주연한 <프라임 컷>의 라스트 씬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것이라고 말한 적 있는데 <프라임 컷>의 마지막 장면이 트랙터와 자동차가 충돌하는 멋진 피날레를 보여준 것에 비하면 <베를린>의 총격전은 한없이 초라하기만 하다. 집이 폭파되는 장면에서 표종성과 련정희가 폭발과 함께 튀어오르는 슬로모션에서는 옛날 홍콩 액션 영화들의 대충 만든 엔딩을 떠오르게 했다. 한마디로 신선하지 않고 진부한 클리셰였다.



그러고보니 스파이 영화를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을 보면서 왜 한번도 히치콕이 떠오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트릭과 신분 위장, 어느 편인지 알 수 없는 인물들, 의문의 사건 등 히치콕적인 요소들이 없는 스파이 영화라니.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은 이 영화가 스파이 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정작 스파이 영화가 아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표종성은 북한 국적의 무기거래상이고 신원 확인이 안된 고스트로 소개되지만 정작 영화가 진행되면서 보여지는 이미지는 너무나 명확한 아이덴티티를 가진 인물일 뿐이다. 목적이 분명해 신비감이 사라진 인물이랄까.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스파이처럼 보이는 인물은 련정희 뿐이다. 그녀는 이중간첩이 아닐까 의심되는 상황을 계속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 영화는 거기까지다. 결국 스파이 놀이는 중반부에 끝나고 선과 악이 명백한 상황에서 아내를 구하기 위한 한 남자의 복수혈전이 클라이막스를 채운다.


PS) 사족처럼 붙은 마지막 장면에서 "블라디보스톡, 원 웨이!"라는 대사가 주는 쾌감은 영화에 실망한 사람들에 대한 선물 같은 것이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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