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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감독은 매번 퍼펙트한 영화를 만든다. 휴먼 무협, 가족 코미디, 로맨틱 시대극, 게이 서부극, 에로틱 서스펜스 등 건드리는 장르마다 완벽한 결과물을 낸다. 이런 재능에는 스탠리 큐브릭이나 코엔 형제 정도의 이름만 떠오를 뿐이다. 그는 천재가 아닐까. 하지만 영화의 완성도와 별개로 개인적으로 이안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고까지 말하기 꺼려지는 것은 그의 영화가 품고 있는 주제가 너무 경건하고 때론 심지어 거룩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보수주의라고 할까. 전반적으로는 아주 좋지만 가슴 한구석에서는 뭔가 채워지지 않는 불편함이 있다. <결혼피로연>이 전통의 복원을 핑계로 가부장적인 이야기를 답습했다는 생각이 있던 차에 <음식남녀>는 그 확장판처럼 보였고, 아름다운 무협영화 <와호장룡>도 결국 가업승계 이야기의 변형으로 보였다. <헐크>와 <브로크백 마운틴>은 멋지지만 소심해보였고, <색, 계>의 순종적인 엔딩은 불합리해보였다.


그리고 이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영화가 담고 있는 주제와는 별개로 이야기의 상징성에 비해 질문이 너무 구체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미 바다 위에 떠 있는 호랑이라는 캐릭터의 상징성과 파이라는 소년을 통해 많은 것을 던져주고 있는데 영화는 후반부에서 주제를 직접 설명하려고 한다. 친절한 감독님이라고 할까. 그러나 영화는 불친절할수록 걸작이 되는 법. 조금만 더 자제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호랑이와 함께 바다에서 표류하게 된 소년. 그 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힌두교, 천주교, 이슬람교에 푹 빠졌고 나중엔 유대교도 믿게 됐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영혼이 있다고 믿었으며 아들(예수)을 죽게 만든 아버지를 통해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 영화 초반에 소년의 이름이 왜 '파이'인지 설명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이 의도하는 바가 소년이 친구들의 놀림을 꿋꿋하게 극복할 만큼 용기가 있다는 것과 '파이'라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숫자가 소년의 인생에 미칠 영향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겠으나 생각보다 러닝타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파이의 아버지는 파이에게 종교보다는 과학에 관심을 가져보라고 말한다. 믿음보다 이성이 인류를 더 빨리 무지로부터 구원했다는 것. 그러나 파이는 이성보다는 믿음과 사랑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그의 이름 '파이'가 지칭하는 수학과 달리 그는 '파이'의 속성인 끊나지 않는 숫자에서 자신의 운명을 찾은 것이다. 라깡의 언어로 말하자면 '기표' 대신 '기의'를 좇았다고 할까.


기표 대신 기의. 이것은 영화에서 계속되는 주제다. 두 가지 이야기 중에 어느 것을 믿을 건가요. 파이가 소설가에게 묻고 선박회사 직원에게도 묻는다. 어떤 이야기가 더 근사한가. 어떤 이야기를 더 믿고 싶은가. 눈에 잡히는 것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상상 속의 이야기를 믿을 것인가. 어떤 이야기를 믿든 그것은 당신의 선택이다. 해피엔딩처럼 보인다면 당신이 해피엔딩을 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영화에서는 두 가지 이야기 중 하나를 많이 생략한다. 호랑이 이야기가 화려한 영상미로 황홀하게 표현된 반면 나쁜 주방장이 나오는 이야기는 언어로만 짧게 전달되고 있다. 그래서 두번째 이야기의 설득력이 많이 떨어진다. 결국 소설가도 선박회사 일본인 직원도 호랑이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 거짓은 성실하고 아름답지만 진실은 초라하다는 옛 이야기가 떠오르지만 막상 영화가 그것을 노린 것 같지는 않다. 다른 노림이 있기에는 영화에 복선이 없다. 그렇다면 결국 영화는 두번째 이야기 부분을 너무 쉽게 처리한 것이다. 영화는 질문을 더 근사하게 던질 수도 있었을텐데 고작 <빅 피쉬>처럼 왕년에 이랬는데 믿겨지니? 정도의 수준에 머물고 말았다.


얀 마텔의 원작 소설에서는 호랑이의 이름이 리차드 파커였다는 것이 작은 반전이었지만 영화에서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드러내놓고 시작한다. 호랑이에게 사람의 이름을 주고 사람이 호랑이의 이름(?)을 가져간 에피소드는 영화의 주제에 상징적으로 대입된다. 망망대해에서 파이는 리차드 파커와 공존할 방법을 찾는다. 파이에게 리차드 파커란 버릴 수 없는 또다른 자아이다. 채식주의자인 파이 속 육식동물이고, 이성보다 영혼을 찾고 싶은 그에게 숨겨진 본능이고, 신과 자연에게 길들여지고 싶지 않은 생명체이고, 낯선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외로운 존재이며, 작별인사도 없이 떠나간 그가 사랑했던 가족과 여자친구를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이다. 카메라도 영화 내내 파이와 리처드 파커를 동등한 시선으로 놓고 화면을 이등분한다. 그래서 둘이 영역싸움을 하며 대결하는 장면에는 시종일관 긴장감이 넘친다. 마침내 육지에 도착했을 때 리처드 파커는 한참동안 밀림을 바라본다. 그리웠지만 여전히 낯설고 새로운 환경. 파이에게 캐나다가 그랬을 것이다. 파이는 리처드 파커와 소통했다고 생각했지만 둘은 끝내 친구가 될 수 없었다. 또다른 자아는 오로지 극한 환경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확실히 3D 효과는 황홀하다. 왕십리CGV 아이맥스관 세번째줄에서 봤는데 목이 조금 아팠지만 거대한 스크린에 압도당한 시간이었다. 바다가 눈앞에 쏟아지는 것 같은 3D에 취했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3D 영화라고 생각하는 <휴고>와 비교해보자면, <라이프 오브 파이>는 전혀 다른 느낌의 3D 영화인데 깔끔한 화면과 엄청난 스케일로 마술을 부리고 있다. 내가 <휴고>의 3D를 평가하는 이유는, 기존의 3D가 단순히 입체감만 강조해 실감나는 영상의 재현에 중점을 둔 것과 달리 <휴고>의 3D는 과거 오손 웰즈 시절 딥포커스라고 불렀던 기술을 3D로 다시 구현하는 영화 문법을 실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3D가 나타내는 입체적인 느낌을 원근법에 대비시켜 모든 곳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랬더니 살아난 입체감이 모든 곳에서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파리의 기차역에서 벌어지는 드라마가 3D 화면에 그대로 담겨 있다. 마치 <시민 케인>의 딥포스커처럼 3D를 통해 새로운 영상언어를 만든 것이다. 그에 비하면 <라이프 오브 파이>의 3D는 인공적이고 포커스도 한곳에 집중되어 있다. 영화도 러닝타임의 거의 전부를 CG로 도배하고 있는데(일단 호랑이부터 CG다) 황홀한 장면들의 대부분은 사파리와 아쿠아리움에 들어온 듯한 아이맥스 효과다. 그러나 이 영화의 3D 효과에서 놀라운 장면은 멀리서 바다를 비출 때 나타난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보트의 외로움을 강조하기 위해 보트를 멀찍이서 담아내니 그 장면은 마치 평면처럼 보였다. 그런데 바다가 평면처럼 보이고 나니 그 속에 떠있는 파이와 호랑이는 더 입체적으로 드러났다. 3D가 억지로 강조하려고 하지 않더라도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살아난 순간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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