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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26년>을 보고나면 과연 완성도가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 든다. 그러니까 매끄럽게 잘 만든 영화가 우선인가 아니면 장면마다 팔팔 뛰는 싱싱한 영화가 우선인가 하는 고민이다. 적어도 <26년> 같은 의도의 영화에서는 후자인 것 같다. 아마도 이 영화가 더 세련되고 매끄러웠다면 역설적으로 이 정도의 여운을 남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영화의 단점을 열거하자면 계속 말할 수 있다. 캐릭터에 개연성이 없고 스토리에 인과관계가 없다. 정혁이 왜 갈팡질팡하는지 모르겠고, 조폭 보스가 진구를 놓아주는 장면도 갸우뚱하고, 김갑세와 마상렬의 관계도 갑작스럽다. 초반 애니메이션은 집중력이 떨어지고 시가전을 펼치기 전까지의 전개는 참 루즈하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나면 먹먹하다. 그까짓 단점들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광주의 역사가 현재진행형이어서 객관화시켜 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우여곡절을 생각하면 더 그렇기도 하겠다. 마지막 엔딩크레딧에 헨델과 모차르트 음악(영화 속에서 건달 두목이 듣고 있던!)과 함께 올라가는 1만 5천명의 이름을 보노라면 여운은 오래간다.



<26년>이 던지는 화두는 '범죄자를 단죄한다는 것의 쾌감'이다. <작전명 발키리>가 히틀러를 죽이려는 작전이었던 것처럼 <26년>은 그날의 트라우마를 간직한 유족들이 함께 모여 그 사람을 향해 돌진한다. 조폭, 사격선수, 경찰, 경호업체 회장과 아들. 다른 영화들처럼 그들의 사연이 친절하게 소개되지 않은 탓에 5.18을 모르는 외국인들에게는 아마도 몰입감이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외국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광주인과 한국인들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그들의 단죄 과정에 더 중점을 둔다. 극중 조폭 두목(안석환)의 조언처럼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려" 그들은 그 사람의 바로 앞까지 나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서툴다. 처음에는 뭔가 그럴듯한 작전을 짜는 것 같지만 결국 감정이 앞서 일을 그르친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죽어 죽어!" 한혜진이 도로에서 벌이는 총격전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어떻게 보면 시가전 장면 치고는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는데 서울 도로에서 그 사람이 신호조작을 통해 지나가는 장면을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더 현실감 있게 긴장하며 볼 수 있었다.


<꽃잎>이 우회적인 방식으로 5.18을 한국영화에 처음 등장시킨지 12년. <오래된 정원>이 잊혀진 아픔을 회고하는 정신과 치료였고, <화려한 휴가>가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 5.18을 정면으로 다루었다면, <26년>은 그날의 뿌리를 찾아 그 사람을 단죄하려는 데까지 나아갔다. 단죄는 희생자들의 몫이어야 하고 영화를 보며 공감할 관객의 몫이어야 한다. 영화는 그 사람을 벌하는 방식을 생생하고 진정성 있게 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스토리 연결과 캐릭터 해석은 부족하지만 컷 하나하나에 싱싱함이 살아 있다. <26년>의 성과는 거기까지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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