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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자들>을 통해 확인된 점은 한국영화에는 아직까지 자유로움이라는 미덕이 조금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여전히 비상업적일 것 같은 소재의 영화가 통용된다는 것. 물론 관객을 끌어모으는 것이 상업영화가 만들어지는 가장 큰 목적이겠지만 아직 헐리우드처럼 시스템이 완전히 지배하는 시장이 아니어서인지 관객이 듣고싶은 이야기 보다는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한편에서 만들어진다. 그것도 박찬욱, 김지운 같은 이름 난 감독이 아니라 김홍선이라는 신인감독의 데뷔작에서 말이다. <공모자들>은 아마도 근래 만들어진 가장 문제적이고 논쟁적인 소재의 데뷔작이 아닐까 싶다. 물론 <아저씨>의 소재도 장기밀매였기 때문에 투자를 받을 수 있었는 지도 모른다. 소재 만큼 영화 자체도 문제적이었다면 좋았겠지만 불행하게도 영화가 만들어진 솜씨는 전형적으로 평범하다.


중국의 작은 항구도시 웨이하이로 가는 배 안. 영화의 초반부는 이 배에 타게 된 사람들의 사연을 소개하는 데 할애되었다. 장기밀매를 일삼던 영규(임창정 분)는 빚을 갚기 위해 마지막 한 건을 하려 배를 타고, 보험회사 직원 상호(최다니엘 분)는 하반신 불구인 부인 채희(정지윤 분)와 함께 여행을 하려 배에 오르며, 여객선사 직원인 유리(조윤희 분)는 아버지(최일화 분)의 심장 이식을 위한 최후의 보루로 중국 병원에 가려 배를 탄다. 영규의 뒤에는 그에게 앙심을 품은 동배(신승환 분)가 있는데 그는 영규의 부하 준식(조달환 분)을 매수해 영규를 처단하려 한다.


약 30분 간 인물들을 소개한 영화는 드디어 배를 띄운다. 인천과 웨이하이를 오가는 이 작은 배는, 타이타닉처럼 비극적인 운명을 관객들이 모두 알고 있는 배이지만, 밀수를 일삼는 따이공들과 비행기를 타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소수의 이색적인 여행자들이 주로 타는 배다. 배는 항구를 떠나 한국과 중국 사이의 공해로 들어선다.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그곳에서 6시간 동안 계획대로 RH-A형을 가진 채희가 납치되고 상호는 유리의 도움으로 함께 채희를 찾아나선다. 출구도 없이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 안에서 과연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게다가 탑승객 명단에조차 그녀 이름이 없다.



김홍선 감독이 영화를 구상하게 된 계기는 한 잡지에 실린 실화라고 한다. 중국으로 신혼여행간 부부 중 부인이 어느날 사라졌고 몇 년 후에 장기가 적출된 채 발견됐다. 중국이 개방된 후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그동안 수많은 납치 괴담, 장기밀매 괴담이 떠돌았고 그것은 대부분 실화와 목격담에 기반한 것이었다. 이를 다룬 영화가 거의 없었는데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장기밀매 납치를 정면으로 다뤘다. 감독은 이 영화를 준비하며 자료조사를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났다고 한다. 따이공이나 보험회사 직원, 외과 의사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장기밀매를 하는 조직원도 익명으로 만났다. 덕분에 영화는 쇼킹하리만치 사실적인 외관을 둘렀다. "한두 명쯤 없어져도 아무도 몰라. 한 명 덕분에 나머지가 잘 살 수 있잖아. 잠깐만 비겁해지면 돼."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대사를 집어넣을 정도로 감독은 욕심이 많다. 그리고 생명을 경시하는 이들을 향해 흥분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만든 이의 흥분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다.


메시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은 경각심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관객과 통했을 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영화의 만듦새는 참 투박해졌다. 영화는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면서 중간중간 플래시백을 이용해 3년 전 영규의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을 쓰고 있는데 굉장히 단선적이고 또 플래시백은 그저 부연설명처럼 느껴진다. 이런 방식은 재난영화의 컨벤션이다. 앞서 <타이타닉>의 예를 들기도 했지만 <타워링> <딥 임팩트> <투머로우>, 심지어 <해운대> 같은 재난영화의 구성도 <공모자들>과 비슷하다. 이런 방식의 장점은 임팩트가 강해서 여운이 오래남는다는 것. 그리고 인물 사이의 감정선을 살리면 드라마에 방점을 찍을 수 있다는 것. 그런데 <공모자들>은 후반부에서 갑작스런 반전을 시도한다. 사실은 이 영화가 재난영화라기 보다는 스릴러였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후반부 최다니엘의 반전은 참 뜬금없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한방에 무너뜨리는 짓이다. 애초에 스릴러가 되고 싶었다면 좀더 영리했어야 했다. 차라리 영화의 도입부를 배 안에서 채희가 사라진 장면부터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언노운>의 첫 장면에서 공항에 놓고 온 짐을 찾기 위해 아내와 헤어진 뒤 다시 그녀를 찾아온 리암 니슨에게 아내는 당신은 누구냐고 묻는다. 그로 인해 관객은 어리둥절해지고 리암 니슨은 자신이 거대한 음모의 한복판에 있음을 깨닫는다. 이런 식의 영리한 진행이었다면 관객들과 두뇌싸움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공모자들>은 신인 감독의 패기 있는 데뷔작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렇게 파격적인 소재를 이렇게 과감하게 만들기도 쉽지 않다. 더구나 이것이 실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두운 면의 한 조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돈 때문에 살아있는 사람을 납치해 심장을 밀매하는 세상. 결국 모든 것은 돈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누구는 스카이라운지에서 편안하게 장기이식을 받고 누구는 영문없이 죽어간다. 이런 세상 앞에서 영화의 만듦새 따위가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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