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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큐브릭의 1999년작 '아이즈 와이드 셧'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는 권태기를 맞은 중산층 부부의 위기를 다루고 있다. 빌과 앨리스는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다른 이성에게 유혹받을 만큼 매력적인 남녀지만 겉으로만 완벽하고 속으로는 증오와 질투가 가득한 쇼윈도 부부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어느날 질투심이 극에 달한 앨리스는 남편에게 거리낌 없이 다른 남자와 자는 상상을 했다고 말하고 그런 아내에 격분한 빌은 집을 나가 방황한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섹스하는 모습을 계속 상상하던 빌은 새벽 2시 피아니스트인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저택에 몰래 찾아가고 그곳에서 가면을 쓴 채 마치 종교집단처럼 숭고한 의식을 거행한 뒤 집단 난교를 벌이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빌은 발각돼 침입자로 낙인 찍혀 위기에 처하지만 미스터리의 한 여자가 그를 구해준다.

 

날이 밝자 빌은 비밀 집단의 정체를 캐고 싶지만 그때마다 그는 알려고 하면 위험해질 거라는 협박을 받는다. 그는 눈으로 본 것을 증명할 수 없고, 존재하지만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는 ‘부존재’의 미궁에 갇혔고,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섹스하는 상상의 굴레에서는 여전히 빠져나올 수 없다. 집으로 돌아가자 아내는 무사히 위기를 넘긴 것을 축하하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가자고 말한다.

 


영화에서 비밀스런 난교 파티 장면은 빌이 아내의 섹스 장면을 상상하는 것과 대구를 이루고 있다. 앨리스는 아무 남자하고 계속해서 자는 꿈을 꿨다고 말하고 이 말이 도화선이 되어 빌은 그런 장면을 목격한다. 성같은 대저택은 아내 앨리스의 꿈 속이고 가면을 쓴 남자들은 빌이 괴로워하면서 상상하는 앨리스의 남자들이다.

결국 위기의 부부관계는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채 봉합된다. 방황의 끝에 빌은 아무런 의문도 해소하지 못하고 찝찝한 채로 현실로 돌아온다. 마치 부부관계란 끊임없는 의심과 체념의 굴레이고 결혼생활이란 단지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큐브릭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계태엽 오렌지’ ‘풀 메탈 재킷’ 등 전작들에서도 냉소적인 반어법으로 영화를 마무리하기를 좋아했는데 이 영화 역시 그렇다. 앨리스는 빌을 바라보며 태연한 표정으로 이제 그만하고 당장 ‘fuck’하자고 말한다.

권태기 부부의 위기를 해부해 심연까지 파고들어가 과감한 상징을 스펙터클로 그려낸 방식은 화려했지만 한편으로는 영화를 미스터리 스릴러로 보자면 회수하지 않은 떡밥이 너무 많다는 측면에서 아쉬움은 남는다. 의문 부호를 던져놓기만 하고 제대로 요리하지 않는다. 물론 마스크를 쓴 자들의 정체가 밝혀지면 뻔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우려는 이해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개연성을 처참하게 짓밟아버린 플롯은 영화를 다 보고난 뒤에도 찝찝한 뒷맛을 남긴다.

 

>> 스탠리 큐브릭의 마지막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에 대해 몰랐던 13가지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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