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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역사상 가장 완벽주의자이자 혁신가이면서 거대한 비전을 가졌던 감독으로 평가받는 20세기 마지막 거장 스탠리 큐브릭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Eyes Wide Shut, 1999)’은 영화 자체도 매우 충격적일 뿐 아니라 제작과정도 스펙터클했다. 러닝타임 159분에 달하는 이 영화를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모아봤다.

 


1. 큐브릭은 편집본을 넘긴 뒤 6일 후 사망했다

스탠리 큐브릭은 1999년 3월 1일 톰 크루즈, 니콜 키드먼, 그리고 워너브라더스 테리 세멜 회장에게 ‘아이즈 와이드 셧’ 편집본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6일 뒤인 3월 7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래서 이 영화가 큐브릭의 최종 편집본이 맞는지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

‘아이즈 와이드 셧’은 석달 후에 개봉하기로 되어 있었다. (실제로는 4달 후인 7월 16일 극장 개봉했는데 이 날은 존 F 케네디가 암살당한 날이기도 했다.) 큐브릭은 개봉 직전까지도 계속해서 수정을 하기로 유명한 완벽주의자다. 심지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샤이닝’의 경우에는 극장 개봉을 한 뒤에도 수정 작업을 했다.

실제로 큐브릭의 조력자인 마이클 허는 큐브릭이 죽기 4일 전 그에게 전화를 걸어 기술적인 부분에서 수정할 부분이 많지만 니콜 키드먼에게 누드 장면 허락을 받기 위해 이 영화를 미리 보여주었다고 말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운드 믹싱, 음악 선곡, 색보정 등은 큐브릭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채 이루어졌다.

 

워너브라더스가 삭제한 21분이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실체 없는 가설에 불과하다.

 


2. 워너브라더스는 누드 장면에 그래픽을 입혔다

‘아이즈 와이드 셧’은 선정성으로 충격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큐브릭 영화 중에 더 선정적인 작품(시계태엽 오렌지)도 있지만 ‘아이즈 와이드 셧’에는 대규모 나체 장면이 등장하는데 주인공이 무려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라는 톱스타라는 점에서 더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두 사람의 노출 수위는 높지 않다.)

워너브라더스는 개봉을 준비하면서 R등급을 사수하겠다는 내부 목표를 세웠다. 제한상영가 등급인 NC-17 등급을 받으면 매출에서 막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교 장면에 일일이 디지털 작업을 했고 섹스 장면을 가리기 위해 망토를 입은 사람들을 배치해 놓기도 했다.

영화 평론가와 시네필들은 워너브라더스의 이러한 조치에 격분했다. 큐브릭은 ‘시계태엽 오렌지’로 X등급을 받을 정도로 등급에 연연해하지 않았기에 이러한 조치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저명한 영화평론가인 로저 이버트도 워너브라더스의 조치에 반발하며  "등급 시스템에 대한 도덕적 위선의 상징"이라고 했다. 그는 ‘아이즈 와이드 셧’의 R등급 버전을 ‘오스틴 파워 버전’이라고 비꼬면서 "성인 영화를 젊은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위대한 감독이 그의 비전을 타협하게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언컷 버전은 2007년에야 DVD와 블루레이로 출시되었다. 현재 넷플릭스 등 OTT에서 볼 수 있는 버전은 모두 언컷 버전이다.


3. 큐브릭 영화 중 두번째로 많은 흥행수입을 기록했다

큐브릭이 70세에 내놓은 ‘아이즈 와이드 셧’은 13번째 장편영화로 ‘풀 메탈 재킷’(1987) 이후 무려 12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었다.

영화는 65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미국에서 5500만 달러의 수입을 기록했다. 워너브라더스가 대대적 홍보한 것에 비하면 저조한 기록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의 분위기는 달랐다. 영화는 영미권에서보다 라틴 국가들,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에서 대히트를 기록해 인터내셔널 박스오피스에서 1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한국에선 2000년 9월에 개봉했는데 난해한 예술영화로 인식되어 26만명의 관객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결국 ‘아이즈 와이드 셧’은 총 1억6200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기록해 큐브릭 영화 중 두번째로 많은 돈을 벌어들인 영화로 남았다. 큐브릭 영화 중 가장 많은 흥행 수입을 기록한 영화는 1968년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로 전세계 매출 1억9000만 달러였다.

 

톰 크루즈, 스탠리 큐브릭, 니콜 키드먼


4. 크루즈 부부 대신 알렉 볼드윈과 킴 베이싱어를 캐스팅하려 했다

워너브라더스의 테리 세멜 회장은 큐브릭의 신작에 투자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톱스타를 캐스팅하라는 것이었다. 큐브릭은 ‘샤이닝’(1980)에 잭 니콜슨을 캐스팅한 이후 톱스타를 기용한 적이 없었다. 또 ‘스팔타커스’(1960) 이후 톱스타와 투자배급사에 휘둘리는 제작과정에 대한 반감도 갖고 있었다.

큐브릭은 톱스타를 기용하면서도 리얼리티를 강화하기 위해 실제 부부인 배우들을 눈여겨 봤다. 조건이 까다롭다보니 캐스팅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빌과 앨리스 역으로 알렉 볼드윈과 킴 베이싱어 부부를 캐스팅하려 했다. ‘겟어웨이’(1994)에 함께 출연한 적 있던 두 사람은 1993년부터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둘은 2002년 이혼했다.) 만약 성사됐다면 영화의 분위기는 지금보다 더 뜨거웠을지 모를 일이다.

큐브릭이 캐스팅을 진행하던 1996년 마침 또 하나의 실제 부부인 톱스타가 영국에 머물고 있었다.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 부부였다. 키드먼은 영국에서 '여인의 초상'(1996)을 촬영하던 중이었다.

크루즈와 친분이 있던 시드니 폴락 감독이 두 사람은 큐브릭과 연결해 주었다. 사회파 영화 거장인 폴락은 큐브릭의 오랜 친구이기도 하면서 크루즈와는 ‘야망의 함정’(1993)을 함께 만든 인연이 있었다.

크루즈 부부는 큐브릭의 저택을 방문했고 그 만남 이후 두 사람의 캐스팅이 확정되었다. 크루즈 부부는 큐브릭과 함께 작업한다는 사실 자체에 매우 기뻐하며 역할을 수락했다.

 


5. 촬영은 400일 넘게 이어져 기네스북에 올랐다

큐브릭은 완벽주의로 명성 혹은 악명이 높은 감독이었다. 그가 만든 영화들은 모두 제작기간이 길었다. 배우들과 스태프들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즈 와이드 셧’은 그중에서도 최악이었다. 그는 모든 장면을 여러번 재촬영했다. 크루즈가 현관을 걸어가는 단순한 장면을 무려 95번이나 찍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소품 하나하나 감독의 검수를 거쳐야 했다. 큐브릭은 비밀 파티에 등장하는 가면들을 베네치아에서 공수해와 일일이 써보면서 세심하게 골랐다. 제작 과정이 길어지는 건 너무 당연했다.

도미노 역할의 비네사 쇼는 원래 2주간 계약을 했지만 촬영을 마치는데 두 달이나 걸렸다. 호텔 종업원으로 딱 한 장면에만 등장하는 알란 커밍은 오디션을 여섯 번이나 봐야 했다.

큐브릭은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에게 '아이즈 와이드 셧' 촬영이 끝나기 전까지 다른 프로젝트를 하지 말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승낙했지만 이렇게까지 제작 기간이 길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촬영이 시작되기 직전인 1996년 11월 크루즈는 “나와 아내는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에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흥분되었다” 라고 말하면서 “촬영이 아마도 내년 6월 쯤이면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큐브릭의 완벽주의를 알고 있었기에 “얼마나 오래 걸리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촬영은 400일 넘게 계속돼 1998년 6월에서야 끝났다. 15개월 넘는 기간 동안 46주 연속 촬영은 상업영화 사상 최장 기록으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올랐다.

 

크루즈는 스트레스가 극심해져서 위궤양을 앓았고 스태프들 중에는 탈진한 사람이 속출했다.


제작 기간이 길었음에도 영화의 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큐브릭은 영화에 대한 정보가 누출되지 않도록 촬영장에서 집착적으로 당부했고 크루즈와 키드먼을 비롯한 모든 제작진들은 아주 높은 수준의 보안을 유지했다.

 

 

6. 뉴욕 배경의 영화를 런던에서 찍었다

영화의 배경은 뉴욕이지만 영화는 거의 대부분의 장면을 영국 런던에서 촬영했다. 비행을 무서워하는 큐브릭의 개인적 문제 때문이었다.

뉴욕 거리로 등장하는 장면은 모두 런던 근교에 있는 파인우드 스튜디오(Pinewood Studio)에 세트를 꾸며놓고 찍었다.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도 스튜디오에 디테일하게 재창조한 공간이었다. 크루즈가 도시를 가로질러가는 장면은 배경이 움직이고 크루즈는 런닝머신 위에서 움직이는 방법으로 촬영했다. 유일하게 뉴욕에서 촬영한 장면은 지글러의 대저택 외관이었다.

 


7. 니콜 키드먼의 섹스 장면은 3일 동안 촬영했다

영화는 니콜 키드먼의 뒷모습을 나체로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영화의 수위가 꽤 높을 것임을 예고하는 도발적인 장면이다.

영화 초반 키드먼이 연기한 앨리스는 크루즈가 연기한 빌과 부부싸움을 벌인다. 지글러의 파티에서 각각 다른 남녀와 어울리는 것을 본 두 사람이 질투를 넘어 서로를 도발하는 장면이다.

앨리스는 빌에게 전에 알던 해군 장교와 우연히 마주쳤다고 말하고는 만약 그가 자신을 유혹했다면 남편과 딸 등 모든 것을 다 던져버리고 그를 만났을 거라고 돌출 발언을 한다.

이에 충격받은 빌은 밤새 거리를 방황하는데 택시 안에서 계속해서 앨리스가 해군 장교와 섹스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이 상상 장면은 영화 속에서 흑백으로 처리되어 있다.

해군 장교는 개리 고바라는 배우가 연기했다. 큐브릭은 이 장면을 3일 동안 촬영했는데 키드먼에 따르면 이 장면을 촬영할 때 큐브릭은 두 사람에게 거의 포르노적인 행위를 원했다고 한다.

 

 

8. 크루즈와 키드먼은 결혼 위기설에 시달렸다

부부의 위기를 다루는 영화를 위해 실제 부부였던 크루즈와 키드먼은 촬영 기간 중 한동안 떨어져 지내야 했다. 두 사람은 보통 함께 작업할 때 노트를 공유했지만 이번엔 큐브릭의 요청으로 아무것도 공유할 수 없었다.

앨리스가 빌에게 해군장교와의 섹스 판타지 이야기를 하며 남편을 자극하는 영화의 아주 중요한 장면은 6일 동안 촬영했는데 이때 키드먼은 크루즈와 어떤 이야기도 나눌 수 없었다. 큐브릭은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 두 사람 사이의 불신을 의도적으로 높이고자 했다.

기나긴 촬영 기간 도중 크루즈와 키드먼의 결혼생활이 위기라고 보도한 기사가 터져나왔다. 영화 소재가 부부간 불신과 혼외정사이니만큼 촬영기간이 길수록 두 사람이 실제로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추측은 루머를 낳았고 이것이 기사로 이어진 것이다.

 

키드먼은 "큐브릭은 영화가 마치 우리 두 사람의 실제 섹스 라이프인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우리는 이용당했다"고 말하며 감독에게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위기설을 부인하곤 했다.

1999년 초 크루즈와 키드먼은 두 사람이 큐브릭이 요구한 뜨거운 러브 신을 촬영하기 위해 섹스 치료를 받고 있다고 보도한 US 스타 매거진을 고소했다.

1998년 10월에는 두 사람의 결혼이 동성애임을 숨기기 위한 위장이라고 보도한 익스프레스지를 고소했다.

 

1990년 결혼해 '폭풍의 질주' '파 앤드 어웨이'를 함께 찍고, 두 아이를 입양하며 일상에서도 줄곧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살아온 부부는 '아이즈 와이드 셧' 개봉 2년만인 2001년 이혼했다. 톰 크루즈와 페넬로페 크루즈의 염문설, 그리고 크루즈가 믿는 종교가 이혼 사유로 알려져 있다.

 


9. 원작의 배경은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빈이었다

큐브릭 영화는 항상 원작 소설이 있다. ‘아이즈 와이드 셧’ 역시 마찬가지다. 원작은 오스트리아의 의사 출신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가 1926년 펴낸 소설 ‘꿈 이야기(Dream Story)’다.

 

소설은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빈에서 남편인 프리돌린과 부인인 알베르티나가 겪는 이틀 동안의 일들을 그린다. 알베르티나가 다른 남자들과의 성적 판타지를 묘사하자 격분한 의사인 남편 프리돌린은 방황하다가 옛 친구를 통해 알게 된 가면 파티에 참석해 여자들의 유혹을 받는다. 파티에서 돌아온 남편이 아내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자 알베르티나는 남편을 용서하며 미래를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큐브릭은 이 책을 1960년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촬영 도중에 접했고 인간 본성을 억누르는 결혼에 대한 알레고리라고 생각하면서 언젠가 영화화할 목록에 꼽아두었다. 하지만 30년 동안 묵혀두다가 1995년 12월에야 이 소설을 영화화할 것을 결심했다.

큐브릭은 영화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바꿨다. 가장 큰 변화는 배경이 19세기 말의 빈에서 20세기 말의 뉴욕으로 바뀐 것이다. 또 계절을 2월 중순 열리는 마디 그라스 축제에서 12월 말의 크리스마스로 바꾸었다.

모든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밖으로 나와 즐기는 마디 그라스 카니발이 가족적으로 선물을 주고받는 크리스마스로 바뀌면서 소설과 영화에서 가면이 갖는 의미가 조금은 달라졌다. 소설에서 가면이 성과 부부관계에 대한 본성을 상징했다면 영화에서 가면은 부와 권력을 쥔 자들의 은밀한 의식을 상징하는 역할로 확장하게 되었다. 또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화려한 크리스마스 파티는 소설에는 없는 장면인데 현대 사회의 소비주의를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졌을 것으로 많은 평론가들이 분석한다.

소설에선 비밀 파티 장면에 모인 사람들이 대부분 수녀나 수도사 복장을 하고 있다가 모두 누드로 춤을 춘다. 주인공 프리돌린도 수도사 복장을 입고 들어갔다가 수녀 복장을 입고 있는 여자를 만난다. 큐브릭도 처음엔 이렇게 각본을 썼지만 영화화 과정에서 검정색 망토로 바꾸었다.

또 소설과 영화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부부의 관계다. 소설에서 프리돌린과 알베르티나는 서로를 미워한다. 소설은 정적과 누워 있는 것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묘사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두 사람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서로에게 상처주는 말을 태연하게 내뱉지만 겉으로는 다정해보이는 쇼윈도 부부다.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알베르티나의 꿈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영화는 빌이 비밀스런 집단을 방문해 쇼킹한 장면을 목격하는 것으로 클라이맥스를 바꾸었다.

 

 

10. 지글러는 원작에 없는 캐릭터였다

영화 초반에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어 하포드 부부를 초대하는 지글러는 소설에는 없는 인물이다. 파티에서 여자와 섹스를 즐기다가 마약 중독인 여자가 기절하자 안절부절못하며 의사인 빌을 부르는 지글러는 겉보기엔 화려하고 부유하지만 뒤에선 난잡한 파티 벌이는 인물로 영화 플롯 상으로는 빌의 실제 삶과 비밀 집단을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비밀 파티에서 빌이 체포돼 무대에 끌려나갈 때 미스터리의 여자가 자신을 희생하며 빌을 구해내는데 지글러는 나중에 자신을 찾아온 빌에게 그 파티의 참석자들은 누구인지, 피아니스트인 친구가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 짤막하게나마 설명해준다.

영화평론가 랜디 라스무센은 지글러가 빌의 감춰진 자아를 상징한다면서 '샤이닝'에서 찰스 그레이디가 잭 토런스에게 갖는 의미, '로리타'에서 클레어 퀼티와 험버트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글러와 빌 하포드


11. 하비 케이틀이 캐스팅됐으나 해고당했다

지글러 역할은 큐브릭의 친구인 시드니 폴락이 맡았다. 폴락은 크루즈와 큐브릭 모두와 친분이 있는 사회파 영화 거장으로 20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그중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배우로도 꽤 활발하게 활동해 30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콘돌’ ‘투씨’ ‘플레이어’ ‘죽어야 사는 여자’ 등이 대표작이다.

하지만 지글러 역할은 원래 하비 케이틀이 출연하기로 되어 있었다. 케이틀은 아메리칸 뉴 시네마를 대표하는 배우로 마틴 스콜세지 영화에 출연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케이틀은 지글러 역할로 몇몇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한동안 케이틀이 하차한 이유에 대해 스케줄 문제라고 알려져 있었다. 당시 케이틀은 ‘파인딩 그레이스랜드’(1998)에서 엘비스 프레슬리 역할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케이틀은 2016년 한 인터뷰에서 당시 ‘아이즈 와이드 셧’ 하차한 이유에 대해 현장에서 큐브릭과 싸우다가 해고당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마리 리처드슨이 연기한 네이선슨 역할에는 제니퍼 제이슨 리가 캐스팅됐지만 그녀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엑시스텐즈'(1999) 촬영을 위해 하차했다.


12. 미스터리의 마스크 여자 목소리는 케이트 블란쳇이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비밀스런 종교 의식과 난교를 벌이는 대저택에서 빌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을 때 한 여자가 찾아와 빌에게 경고한다. 그녀는 빌의 정체가 폭로되자 자신이 대신 벌을 받겠다며 나서기까지 한다.

이 미스터리의 여자는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을 알 수 없지만 영화 초반부에 지글러의 저택에서 빌에게 치료받았던 맨디라는 설이 유력하다. 물론 다른 배우가 두 배역을 맡았기에 논란의 여지는 있다. 맨디는 모델 겸 가수이기도 한 줄리안 데이비스가 연기했고 마스크 여자는 역시 모델 출신인 아비게일 굿이 연기했다.

아비게일 굿은 당당한 발걸음과 표정으로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었지만 문제는 목소리였다. 영국인 특유의 강한 액센트가 뉴욕 배경인 이 영화에 어울리지 않았다. 큐브릭은 이 영화의 배경이 미국임을 명확히 하려 했고 모든 배우에게 확실한 미국식 액센트를 원했다.

큐브릭의 어시스턴트였던 레온 비탈리는 한 인터뷰에서 “큐브릭은 따뜻하고 관능적이고 동시에 종교적인 의식의 일부 같은 목소리를 원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큐브릭은 목소리를 연기할 배우를 찾지 못하고 사망했다.

한동안 목소리 배우는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정확하게는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미스터리 여자의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가 케이트 블란쳇이었다는 것이 2019년 밝혀졌다. 비탈리는 큐브릭이 사망한 뒤 크루즈와 키드먼의 추천으로 당시 라이징 스타였던 블란쳇을 소개받았는데 큐브릭이 원했을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아비게일 굿은 이후 연기를 그만두고 여행작가와 아동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13. 힌두교의 항의를 받고 일부 음악을 바꿨다

비밀스런 대저택의 종교적 의식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곡은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한 조슬린 푹이 작곡한 'Backward Priests'이다. 현악기, 팀파니와 매혹적인 목소리를 섞어 만든 곡으로 여기에 사용된 목소리는 동유럽의 로마 정교회 예식에서 수도승이 읇조리는 노래를 거꾸로 돌려 만든 것이다. 영화에 수차례 등장하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북돋는다. 당초엔 이렇게 많이 쓸 계획이 아니었지만 큐브릭은 이 곡을 너무 좋아해 사용량을 늘렸다.

그런데 미국의 힌두교 명예훼손 대응단체는 영화 속 비밀 의식 장면에 인도의 중요한 경전 중 하나인 ‘Bhagavad Gita’가 흘러나온다며 삭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푹은 처음엔 힌두어가 아닌 타밀어가 사용되었고 힌두교 경전과는 관련이 없다며 반발했지만 힌두교측은 거세게 항의했고 결국 해당 장면에 사용된 일부 음원을 바꿔야 했다.

이밖에 영화는 대저택의 비밀스런 종교 의식과 난교 파티가 프리메이슨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의혹도 받고 있는데 영화 속 대저택 촬영지가 로스차일드 가문이 지은 곳이라는 사실이 음모론에 살을 더했다. 영화는 영국 버킹엄셔에 있는 멘트모어 타워에서 촬영했는데 이곳은 1854년 로스차일드 가문이 지은 건물이다. (‘배트맨 비긴즈’ 촬영도 여기서 했다.)

1972년 로스차일드 가문은 제임스 로스차일드 남작의 주최로 프랑스에서 세기적 규모의 소셜 파티를 개최한 적 있는데 여기엔 오드리 헵번, 살바도르 달리 등 유명인사들도 참석했다.

 

 

* 이 글은 유튜브 영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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