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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이해에 관한 드라마 '라우더 댄 밤즈', 초능력을 가진 소녀의 비밀을 섬세하게 그린 '델마'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한 덴마크 감독 요아킴 트리에의 신작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서른살 여성의 심리를 신중하고 세밀하게 포착한 감독의 또다른 걸작입니다.

노르웨이 오슬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울리에라는 한 여성의 연애 이야기는 감정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울리에를 연기한 레나테 레인스베는 서른을 통과하며 불안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여성의 얼굴을 섬세하게 포착해냅니다. 아마도 비슷한 나이대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이라면 그녀가 연애의 과정 속에서 상처를 주고 받는 과정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영화는 파티장에서 빠져나와 홀로 노을 진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울리에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카메라는 서서히 클로즈업하며 그녀의 고민 많은 얼굴을 보여줍니다. 그녀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파티장에서 빠져나와 발코니에 서 있는 울리에


울리에는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해본 적 없는 여자입니다. 학창시절엔 열심히 공부한 성적이 아까워 의대에 갔지만 정작 외과의사는 적성에 맞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다루고 싶다는 생각에 심리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또다시 열공했지만 거식증에 걸린 여자들 사이에서 공부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사진작가로 진로를 또 바꿉니다. 그러다가 서점에서 일하며 쓴 글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자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으려 합니다. 울리에가 변덕을 부릴 때마다 엄마는 놀라지만 조용히 응원해줍니다.

울리에는 어느 파티에서 빠져나와 조용히 발코니에 서서 야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제 서른을 앞둔 그녀는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고 자신의 의지도 잘 모르겠는 이 상황이 모호하기만 합니다. 그녀는 파티로 돌아갔다가 우연히 밥캣이라는 만화를 그리는 악셀을 만납니다.

두 사람은 대화가 잘 통합니다. 여성혐오가 들어간 만화를 그리는 악셀이지만 그는 작품과 자신은 별개라고 말합니다. 남녀가 만나서 호감이 생겼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관계를 계속해야 할지 멈춰야할지 결정해야 할 때가 다가옵니다. 악셀은 울리에에게 자신은 나이가 많아서 애매한 관계로 남을 거라면 헤어지자고 말합니다. 울리에는 그 순간 문득 자신이 이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열살 이상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연인이 됩니다.

 

울리에와 악셀

 

두 사람은 서로의 가족을 만나면서 더 깊이 알아갑니다. 악셀은 화목해 보이는 형 부부와 잘 어울리지 못하고 울리에는 딸에게 무관심한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알게 될수록 두 사람에게는 차이점이 더 많이 보입니다. 그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 갈등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울리에는 악셀과 자주 대화하고 침대에서 오붓한 시간을 갖기를 원하지만 악셀은 틈만 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헤드폰을 끼고 작업에 몰두합니다. 그러다가 책이 출간되고 시간이 생기면 그제서야 울리에를 찾습니다. 울리에는 악셀이 자기 내키는대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악셀은 아이를 원합니다. 하지만 울리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악셀이 원하는 게 뭐냐고 다그치자 울리에는 그런 식으로 몰아부치지 말라고 말합니다. 남자는 확실한 답을 해주지 않는 여자가 답답하고 여자는 지금 자신의 감정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남자가 속상합니다.

대화가 잘 통하고 능력 있는 작가인 남자친구지만 울리에는 점점 악셀과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와 함께 하는 삶은 안정적이지만 그녀는 호기심이 많은 여자입니다. 아직 궁금한 게 많고 또 서툴게 도전하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서른살입니다. 전망 좋은 곳에 혼자 올라 오슬로 야경을 바라보는 울리에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합니다. 그녀는 정처없이 걸어 내려오다가 어느 집에서 파티가 열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무작정 들어갑니다.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었나 봅니다. 안정되기를 거부하고 마음이 가는대로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시들해지면 그만두고 그러면서도 또다시 안정을 찾아나서는 울리에입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자신에게 아무것도 캐묻지 않은 남자 에이빈드를 만납니다.

 

에이빈드도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끌리지만 바람은 피우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바람일까요.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할까요. 스킨십은 어디까지 가능할까요. 만지지 않으면 야한 대화는 해도 되는 걸까요? 두 사람은 은밀한 성적 취향을 이야기하면서 밤새 서로를 바라봅니다.

 

에이빈드와 울리에


다음날 아침 두 사람은 서로의 은밀한 속마음까지 알게 됐지만 연락처도 모른 채 헤어집니다. 바람은 피우지 않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도덕적 딜레마가 그들을 더 강하게 끌어당깁니다. 인간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서 못 참는 존재입니다. 울리에는 집으로 돌아와 악셀의 장점을 찾아보려 노력합니다. 악셀이 원하는대로 아이를 낳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하지만 그녀가 일하는 서점에 에이빈드가 손님으로 찾아오면서 그녀의 머리 속은 에이빈드로 가득 찹니다. 울리에는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합니다.

에이빈드에게도 사연은 있습니다. 그의 여자친구는 섹시한 몸매를 가진 요가 강사에 열렬한 환경론자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입니다. 그 역시 그녀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기 위해 환경론자가 되려고 노력하지만 그는 점점 지쳐갑니다. 그녀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녀의 올바름에 대한 강요는 그에게 속박이 됩니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때 마침 너무나 자유로워 보이는 여자 울리에를 만난 것입니다. 울리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은 파티를 찾아와 자유롭게 즐기고 있었고 에이빈드는 그녀의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울리에는 악셀이 커피를 내리는 사이 에이빈드가 일하는 베이커리로 달려갑니다. 전기 스위치를 끄자 시간이 멈춰버립니다. 온세상이 멈춰 있고 오직 울리에와 에이빈드만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울리에는 몸이 악셀과 함께 있는 순간에도 마음은 이미 에이빈드에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영화는 울리에의 속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멈추고 에이빈드를 향해 달려가는 울리에


에이빈드를 찾아가 그의 마음도 자신과 같다는 것을 확인한 울리에는 이제 악셀에게 이별을 통보합니다. 갑작스러운 헤어질 결심에 악셀은 당황합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서운한 게 있었는지 묻는데 울리에는 오랫동안 생각해왔다고 말하네요. 이미 수많은 이별을 겪어봤는지 악셀은 지긋지긋하다며 산책하고 올테니 짐 싸서 나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이까지 생각했던 두 사람의 이별이 이렇게 쉽게 될 리가 있을까요.

두 사람은 남은 감정을 소진하며 속에 있던 말들을 털어놓습니다. 울리에는 악셀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고 악셀은 울리에의 옷을 벗겨 마지막 섹스를 합니다. 그러나 그뿐입니다. 울리에의 이별 의지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지고 이제 울리에는 에이빈드와 연인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결핍돼 있다고 느끼고 있던 것들을 채워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알콩달콩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눕니다. 하지만 울리에는 늘 그랬듯 끝까지 가지 못하는 여자입니다. 에이빈드와 함께 있으면서 울리에는 악셀과 나누었던 지적 대화들을 그리워합니다. 누구도 그녀의 마음을 온전히 다 채워줄 수는 없습니다. 어느 순간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집니다.

동거하기 전에 두 사람은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항상 계획했던 대로만은 되지 않는 법이어서 울리에는 곧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문득 악셀과 아이 낳는 문제로 티격태격 했던 것이 떠오릅니다. 그녀는 아이를 낳아 키울 자신이 없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생명에 당황한 그녀는 에이빈드에게 상처주는 말까지 해버립니다. “난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넌 평생 커피나 나르고 있을래?”

울리에는 이제 어떤 선택을 할까요? 여기서 영화는 극적 반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에게는 조금 익숙한 설정인데 전남친을 시한부 인생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 악셀의 죽음은 울리에가 뱃속에 잉태한 새 생명과 대비하기 위한 설정입니다. 하지만 울리에와 악셀이 다시 만나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을까요? 그런데 두 사람의 재회는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만들어냅니다.

울리에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악셀의 형을 만나고 악셀이 췌장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니체는 "병에는 모든 습관을 뒤엎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했지요. 병이 아니었으면 그녀가 악셀을 다시 만날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울리에는 병원으로 찾아가 악셀을 만납니다. 악셀은 괜찮은 척하지만 사실 괜찮지 않습니다. 그는 아픈 게 지긋지긋해서 괜찮다고 말하는 것도 지긋지긋하다고 말합니다. 생각해보면 악셀은 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에 익숙한 나머지 지긋지긋해 하는 사람, 힘든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방어기제로 혼자서 상처받을지언정 남에게 의지하려 하지 않는 사람, 그런 악셀이 자신을 찾아온 울리에에게 자존심을 내려놓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 인생에서 너는 내가 가장 사랑한 사람이었어. 죽을 때까지 너랑 같이 있고 싶어. 행복하게.”

병원에 나란히 앉아 40대 중반인 악셀은 서른살을 맞은 울리에에게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는 인터넷과 휴대폰 없는 시대에 태어나 문화를 흡수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던 시절을 회상합니다. 정보나 데이터가 아닌 직접 만질 수 있는 물건으로 감정을 교류하던 시대를 이야기합니다. 죽음을 예감한 그는 자신이 그녀에게 추억으로 남는 게 싫다고 말합니다. 만화로 기억되는 건 더더욱 싫다고 말합니다. 울리에와 함께 있는 이 순간만이 그에겐 의미가 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이 사라지고 나면 그녀의 일부분 역시 사라질 거라고 말합니다. 그녀의 인생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 있을테고 그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순간 그녀에게서도 그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에서 악셀의 대사들이 영화에서 가장 울림이 컸습니다.

울리에도 악셀을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악셀과 함께 살던 시절을 회상합니다. 그녀에게 그는 참 좋은 대화 상대였습니다. 앞으로도 그처럼 좋은 대화 상대는 찾기 힘들 거라고 말해줍니다. 그녀에게 그는 자신을 성장시켜준 사람이었습니다. 악셀이 세상을 떠나는 날 울리에는 애써 침착을 유지하려 합니다.

 

울리에

 

이제 영화는 에필로그만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울리에는 영화 세트장에서 스틸사진 작가로 일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창밖으로 전남친 에이빈드가 유모차를 끌고 아내와 함께 어디론가 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컴퓨터 앞에 앉은 그녀는 혼자서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두 남자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미래 때문에 불안해하는 모습은 아닙니다. 누군가가 옆에 있지 않아도 혼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게 된 듯 독립적인 모습입니다. 그렇게 울리에는 한 뼘쯤 성장했고 그녀의 삶의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예측한 대로의 삶을 살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성장해 갑니다. 죽음을 앞둔 악셀은 사려깊습니다. 더 이상 만화에 대해 자신의 주장만을 늘어놓던 남자가 아닙니다. 아이를 원하지 않던 에이빈드가 유모차를 끌고 가는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평온해 보입니다. 그는 어느새 가정적인 남자로 변해 있습니다. 울리에는 결핍 속에서 갈증을 느끼고 계속해서 흔들리지만 전남친과 아이의 죽음을 겪고 나서 중심을 찾아갑니다.

 

사랑할 때 우리는 누구나 최악이 되지만 사랑에는 우리를 성장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고 교감하고 갈등을 겪고 부딪히다 보면 나와 상대방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 있고, 또 내가 느끼는 감정에 몰두하게 되는 시간도 있습니다. 그 시간들을 통해 우리는 성장합니다. 서툴고 모자르고 결핍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사랑에 빠집니다. 사랑의 과정은 아름답지 않고 최악일 수 있습니다. 홀로서기야 말로 인간이 도달해야 할 최고의 가치라고 여긴다면 어설픈 사랑은 비웃음거리로 보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영화는 설령 그럴지라도 사랑은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과정이라고 울리에를 통해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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