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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알려져 있지만 요즘 통 글을 쓰지 못하는 소설가(이혜영)가 한 중고서점을 찾아와 서점주인인 서먹했던 후배를 만난다. 예민한 촉수로 지금을 살아가고 싶은 소설가는 서점 직원에게 수화를 배우더니 곧바로 따라해본다.

“날이 밝지만 곧 날이 저물 것 같다
날이 저물기 전에 얼른 나가 놀자”

 


소설가는 전망대에 올랐다가 영화감독(권해효) 부부를 만난다. 자신의 글로 영화를 만들려다가 무산된 과거가 있던 사이다. 소설가는 당시 상황을 미안해하는 영화감독에게 예술이 아닌 돈만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쏘아붙인다.

전망대에서 공원을 내려다보던 소설가는 영화감독 부부와 함께 공원으로 산책하러 내려온다. 그리고 공원에서 한때 유명 배우였던 김민희를 만난다. 영화감독은 김민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다음 작품 정말 안 하세요? 너무 아까워서요. 영화감독들이 다들 아까워하고 있습니다.”

김민희가 웃으면서 얼버무리는 사이 소설가가 끼어들어 소리친다.

“대체 뭐가 아깝다는 거예요? 초등학생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의 결정에 왜 함부로 아까워하는 거죠? 대체 뭐가 아까워요? 상업영화 출연 안해서 돈 못 버는 게 아까워요? 왜들 그렇게 남의 인생을 재단하려고 하는 거죠?”

소설가의 갑작스런 독설에 영화감독이 당황해 자기 발언을 해명하려고 한다.

“아뇨, 저는 배우를 아끼는 마음에 한 소리죠. 재능이 정말 아까우니까.”

“자기들이나 자기 인생을 아까워하라고 하세요.”

소설가는 끝까지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이에 영화감독 부부는 황급히 자리를 떠나고 소설가와 김민희 둘만 남는다. 김민희는 소설가를 평소 존경해왔다고 말한다. 그때 김민희의 사촌동생인 영상원 학생이 등장한다.

소설가는 김민희와 사촌동생에게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이야기한다. 단편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김민희 부부와 사촌동생과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한다. 고민하던 김민희는 승낙하며 자신은 하고 싶은데 남편에게도 말해보겠다고 한다.

 


다음 장소는 분식집. 소설가와 김민희는 라면을 먹으며 대화를 나눈다. 한 여자아이가 창밖에서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이 장면은 영화에 가벼운 긴장감을 불어넣는데 홍상수 영화에 가끔 등장하는 설정이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선 한 남자가 창밖에서 창문을 닦으며 바라보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감독이 말해주지 않으니 의도는 알 수 없다. 관객이 지켜보는 것처럼 설정했는지도 모르겠다.

김민희에게 중고서점 주인이 전화를 걸어오고 두 사람은 중고서점 주인을 동시에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중고서점으로 가서 사람들과 함께 막걸리를 마신다. 영화 맨처음 배경으로 돌아간 것이다.

술자리에서 김민희는 소설가에게 어떤 영화를 만들 거냐고 질문한다. 소설가는 남편 분이 승낙해야 그때 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 말한다. 스토리는 중요하지 않으며 어떤 인물을 담을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공간을 한 바퀴 순회한 영화는 소설가가 만든 단편영화를 김민희가 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김민희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텅 빈 영사실에서 홀로 본다. 영화를 만든 소설가는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촬영과 편집을 맡았던 영상원 학생은 소설가가 얼마나 꼼꼼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는지 회고한다.

소설가가 만든 영화 속 영화는 공원에서 홀로 산책하고 홀로 꽃을 들고 결혼식을 올리는 김민희의 행복한 표정으로 가득하다. 흑백이던 영화는 이 장면에서만 컬러로 전환된다.

상영이 끝나고 김민희가 복도로 나올 때 거기엔 아무도 없다. 김민희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가면서 영화는 끝난다.

 


영화는 홍상수 영화 중에서도 단연 뛰어난 완성도를 갖고 있다. 분명한 자기주장으로 예술과 사생활의 경계에 명백한 선을 긋는다. 또 같은 대사와 상황의 반복과 그 반복이 주는 미묘한 차이를 통해 예술이 감정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준다. 영화 초반부 모두를 침묵하게 만들고 오직 수화로만 이야기하는 소설가의 표정에선 진심이 느껴진다. 직설적이고 감정에 솔직한 주인공 소설가는 속물적인 관객의 뒤통수를 죽비로 계속 때린다.

영화는 스토리를 강조하는 세상을 향해 영화란 꼭 그런 게 아니라고, 인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와 꽃이 등장하는 순간의 아름다움이 오히려 영화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오직 순수하게 아름다운 꽃만이 컬러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 돌이켜보면 결국 이 영화 역시 홍상수가 만든 자기변명의 확장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다. 그의 뇌는 여전히 불륜이라는 세간의 평에 지배당하고 있어서 어떤 이야기를 써도 이렇게 자기변명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상처받고 있을 김민희를 위해서, 이것 역시 그녀가 선택한 인생이라는 항변을 하고 싶은 홍상수의 마음을 가슴으로는 이해하고 그래서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화는 결국 감독의 생각만을 녹여낸 일방향 매체이기 때문이다. 세상으로 나오지 못한 채 자기 이야기를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해 늘어놓아도 결국은 자기 위안밖에 되지 않을 것임을 그들도 잘 알고 있지 않을까.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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