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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미나리’에 관한 좋은 소식이 계속 들려오고 있습니다. 평론가협회, 기자협회 등에서 상을 잇달아 받고 있는데 특히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싹쓸이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2020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첫 공개됐는데 당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받으면서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았습니다. 올해 2월 28일 골든글로브, 4월 25일 아카데미 영화상이 개최되는데 작년 ‘기생충’을 이을 작품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한국에선 아직 정확한 개봉일이 잡히지 않았는데요. 영화를 미리 본 입장에서 ‘미나리’는 어떤 영화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미나리’ 줄거리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해 스포일러가 될 부분을 생략하고 줄거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아주 단순합니다. 일단 배경은 1980년대입니다.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 부부 제이콥(스티븐 연)과 모니카(한예리)가 주인공입니다. 이들이 캘리포니아에서 아칸소로 이사해오는 것이 영화의 시작입니다. 아칸소는 미국 중부에 위치한 작은 주로 텍사스와 미시시피 사이에 있습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배출한 곳이긴 하지만 인구가 260만명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적고 면적의 대부분이 농장이어서 미국 내에서 존재감이 약합니다.


제이콥이 마련한 집은 그나마도 황량한 벌판에 놓인 컨테이너입니다. 모니카는 실망한 표정이 역력합니다. 이런 데서 어떻게 사느냐고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제이콥은 그러거나 말거나 아들과 딸에게 이 앞에 농장을 만들 거라고 말하며 꿈에 부풀어 있습니다. 네, 이 영화는 한국에서 온 이민가족의 아메리칸 드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이콥과 모니카는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감별을 했고 아칸소로 이주한 뒤에도 병아리 감별사 일을 계속합니다. 당시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들의 현실을 반영한 설정입니다. 이들은 영어가 능숙하지 않으니 단순 노동에 투입됩니다. 토네이도가 몰려오면 가족은 바퀴 달린 컨테이너집이 날아가지 않을까 걱정해야 합니다.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와서 열심히 일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들에게 미국은 환상이 아니라 냉혹한 현실입니다.


영화는 주요인물 소개를 마치고 이제 새로운 인물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가 이들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 한국에서 오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모니카의 아들 데이빗(앨런 김)은 방을 나눠 쓰게 된 할머니가 탐탁지 않습니다. 할머니에게 냄새가 난다고 싫은티를 팍팍 냅니다. 할머니가 화투와 한국 욕을 가르쳐주고 기대만큼 자상하지 않자 할머니 같지 않다고 투정을 부립니다. 오줌을 싸서 할머니에게 음료수라며 주기도 합니다. 영화의 중반부는 이처럼 데이빗과 할머니의 티격태격하는 재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반면 제이콥과 모니카는 끝이 보이지 않는 가난 때문에 계속해서 충돌합니다. 모니카는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고 싶어하고 제이콥은 지금 상황은 힘들지만 이곳에서 농장을 키워 보란듯 성공해 인생 반전을 노리고 싶어합니다.



초중반 감정선을 차곡차곡 쌓아온 가족 드라마는 후반부에 몇 가지 사건을 통해 감정을 폭발시키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윤여정의 연기는 후반부에서 빛을 발합니다. 또 스티븐 연과 한예리의 절제하는 연기도 참 좋습니다.


영화의 제목인 미나리는 순자를 통해 등장합니다. 순자는 계곡에 미나리를 심습니다. 미나리가 잘 자라면 쌈도 싸먹을 수 있고 약으로도 먹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미국에서 힘들게 살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있는 이들 가족에게 미나리는 희망의 상징인 셈입니다.


'미나리' 감독과 출연 배우들


‘미나리’는 어느 나라 영화인가


한국인으로서 ‘미나리’를 보는 감정은 복잡할 것입니다. 한국영화인지 미국영화인지 헷갈리기 때문입니다. 일단 ‘미나리’의 대사는 절반 이상이 한국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영어 대사는 스티븐 연이 아칸소 주위 백인 농부들과 대화를 나눌 때, 데이빗과 딸 앤(노엘 조)이 교회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병원에서 상담을 받을 때 등에만 제한적으로 나옵니다. 한예리와 윤여정은 아예 영어를 잘 못하는 한국인으로 그려집니다. 또 ‘미나리’의 크레딧에는 한국식 이름이 미국식 이름보다 훨씬 많이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국적은 배우나 언어가 아닌 투입된 자본의 국적에 따라 결정됩니다. ‘미나리’는 영화 대사의 절반 이상이 한국어로 이루어져 있고, 한국인과 한국계 미국인이 주요 배역을 맡고 있고, 감독도 한국계 미국인이어서 얼핏 한국영화처럼 보이지만 엄연히 미국영화입니다. 영화를 제작한 곳은 미국 독립영화 제작사인 A24와 브래드 피트의 플랜B 엔터테인먼트로 다양성 영화에 많은 투자를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최근 골든글로브가 ‘미나리’를 외국어영화상 카테고리에 포함하면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외국어영화상은 주로 미국 기준에서 외국영화들을 후보에 올립니다. 따라서 ‘미나리’가 이 부문에서 예비후보가 되었다는 것은 미국 주류에서는 이 영화를 미국영화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이에 대해 미국에서 활동하는 아시아계 영화인들이 크게 반발했습니다.


골든글로브는 대사의 50% 이상이 외국어라면 외국어영화 부문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고 반박합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100% 일본어 대사로 만든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역시 2007년 골든글로브에서 작품상이 아닌 외국어영화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그 규정에 예외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988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상당 부분 중국어 대사로 만든 ‘마지막 황제’는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에서 외국어영화상이 아닌 작품상 후보에 올라 수상했습니다. 또 대사의 상당 부분이 이탈리아어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2018년 골든글로브 드라마 작품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그래서 미국 내에서 만약 ‘미나리’를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들었어도 외국어영화로 분류했겠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골든글로브는 2월 3일 후보작을 발표할 예정이고, 아카데미 후보작은 3월 15일 발표됩니다. 골든글로브와 달리 아카데미는 작년부터 외국어영화상을 국제영화상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기준을 언어가 아닌 국적으로 바꿨기에 '미나리'는 아카데미에선 다른 미국영화들과 똑같이 경쟁할 가능성이 큽니다. ‘미나리’가 어떤 부문 후보에 오를지 지켜봐야겠습니다.


2020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는 정이삭 감독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정이삭 감독


영화를 만든 정이삭 감독은 2007년 만든 ‘문유랑가보’가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되며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문유랑가보’는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현지인을 캐스팅해 촬영한 영화로 키냐르완다어로 만들어진 최초의 영화라는 기록도 갖고 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죽기 전 이 영화를 보고 “아름답고 강력한 마스터피스”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정 감독의 르완다에 대한 관심은 2015년 다큐멘터리 ‘I Have Seen My Last Born’으로 이어져 이 영화는 전쟁의 상흔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정 감독은 한국계지만 그가 만들어온 영화들은 한국보다는 아프리카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정 감독은 1978년 미국 덴버에서 태어났고 아칸소의 작은 농장에서 자랐습니다. 예일대에 진학해 생물학을 공부하다가 영화감독으로 진로를 바꿨습니다. ‘미나리’는 그가 한국인을 주요 배역에 캐스팅해 만든 사실상 첫 영화입니다. 한국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몽환적으로 재해석한 ‘아비가일’(2012)을 만든 적 있지만 당시에도 주연 배우는 아만다 플러머와 윌 패튼 등 백인이었습니다(윌 패튼은 ‘미나리’에도 나옵니다).


‘미나리’는 정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는 부모님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직접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정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2013년 딸을 얻었고 LA로 이사하게 됐는데 아빠가 되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졌다고 합니다. 영화 속 데이빗이 바로 정 감독인 셈입니다.


자전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는 뭉클한 감동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요.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도 그랬습니다. '미나리'는 한국계 감독이 유년 시절 가난한 부모님을 그린 이야기라는 점에서 멕시코 감독이 유년시절 함께 살던 가정부를 그린 영화 '로마'와 닮았습니다.



‘미나리’가 호평받는 이유


개인적으로 ‘미나리’를 본 소감은, 그렇게 새롭지는 않지만 잘 만든 가족 드라마라는 것이었습니다. 전반부는 잔잔하고 중반부는 재미있고 후반부는 감동적입니다. 군데군데 심심하고 단조로운 장면들이 눈에 띄지만 햇살 가득한 화면은 정감있고, 음악은 가족 드라마에 걸맞지 않게 조금 실험적으로 삽입돼 긴장감을 유지시켜 줍니다. 연기 잘 하는 검증된 배우들은 물론이고 아역 배우들인 앨런 김과 노엘 조도 훌륭한 캐스팅 앙상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전 황금시대 대만 가족영화를 이창동의 ‘버닝’처럼 밋밋하게 구현하면 ‘미나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미국에 이민 간 한국인에 대한 고정관념, 즉, 돈밖에 모르고, 영어 못하고, 교회에 의존적이고, 무뚝뚝한 인상 등이 어느 정도는 반영돼 있어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런 요소들도 한국인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긴 하겠죠.


미국에서는 대단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로튼토마토의 평론가 평가는 100% 호평 일색입니다. 메타크리틱에선 87%가 이 영화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30명 이상의 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2020년 최고의 영화 10편'에 포함시켰습니다. 1위에 랭크시킨 평론가도 2명이나 됩니다. 미국 평론가들의 평가 몇 개를 살펴보겠습니다.


“몰아치는 감정과 우아한 음표들로 풍만한 실화영화의 아름다운 예” - 롤링 스톤


"아주 특별하고 디테일하고 보편적인 이야기" - 필름위크


"정 감독은 인내심있게 작은 시퀀스들을 미세하게 축적해 큰 것으로 만들어낸다" - 뉴욕매거진


"당신이 오랫동안 알아왔던 누군가로부터 받는 따뜻한 포옹 같은 영화" - 필름위크


“사랑스럽고 독창적인 영화” - 로저이버트닷컴



그들은 이 영화를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걸까요? 한국인인 제 입장에선 그렇게까지 놀라운 작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그들에게만 보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요? 저는 몇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봤습니다.


우선 ‘독창적인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관점입니다. ‘미나리’는 아메리칸 드림을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에게 색다르게 다가왔을 법합니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영화에 흔한 소재입니다. 가난하고 소수였던 이방인이 주류 사회에 도전해 성공하는 이야기는 미국인들의 꿈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이탈리아계, 아일랜드계 백인, 혹은 흑인, 라틴계를 주인공으로 한 아메리칸 드림은 많았지만 아시아계는 드물었습니다. 미국영화에서 아시아계는 그들끼리 무리를 이루며 살아가는 설정이 다수였습니다. 코리아타운, 차이나타운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미나리’의 주인공들은 절대 다수의 주민이 백인인 아칸소에 이주해 꿋꿋하게 살아갑니다. 제이콥은 백인 농부들과 교류하며 농장을 일굽니다. 데이빗은 학교에서 백인 친구를 사귀는데 그는 데이빗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왜 얼굴이 평면이야?” 데이빗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그 친구에게 (할머니에게 배운) 화투를 가르쳐주면서 재미있게 놉니다.


미국 백인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아시아에서 온 그들은 항상 그들끼리 몰려다녀서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미나리’는 그들의 궁금증을 약간이나마 해소해 주었을테고 그래서 독창적이라고 느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둘째, ‘보편적인 삶의 교훈’이라는 관점입니다. ‘미나리’에는 교훈적인 대사가 몇 개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대사들을 배우의 입으로 듣는 게 조금 거슬렸지만 만약 이 대사들을 자막으로 본다면 그렇게 거슬리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대사들입니다. 윤여정이 연기한 할머니는 뱀을 무서워하며 막대기로 내리 치려는 데이빗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냥 보이게 내버려 둬.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더 무서운 거란다.”


또 영화 후반부에 화재가 발생하는 장면에서 제이콥의 안간힘, 제이콥과 갈등을 빚던 모니카의 실신, 할머니의 멍한 표정, 할머니를 찾아나선 손자와 손녀 등은 이 가족군상의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면서 화룡점정을 찍는데 이 모습 또한 매우 보편적인 삶의 교훈을 전달해줍니다. 앞의 대사와 달리 이 후반부 장면은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데요. 영화만이 표현할 수 있는 영상미학으로 감정에 호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뛰어난 연기를 보는 관점입니다. 이것 역시 보편적인 시선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만약 '미나리'가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다면 작품상과 함께 두 번째로 유력한 부문이 바로 윤여정의 여우조연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윤여정은 지금 미국 각종 평론가협회상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쓸고 있는데 평론가협회상은 오스카 레이스의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기생충'도 오스카 이전에 온갖 평론가협회상을 휩쓸면서 입소문을 냈고 그것이 결국 오스카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실 한국인 입장에선 윤여정이 연기를 잘하는 것은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기에 영화를 보면서 크게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스티븐 연과 한예리의 표정 연기도 참 좋았습니다.


만약 '미나리'를 통해 누군가 스타가 된다면 아마도 가장 가능성이 큰 배우는 앨런 김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를 보고나면 할머니를 갖고 노는 귀여운 이 소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테니까요.


앨런 김


2021년이 시작되면서 아카데미 레이스도 본격 시작됐습니다. 한국계 미국인이 한국 배우들과 함께 만든 가족 드라마 '미나리'가 작년 '기생충'의 성과를 이어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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