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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가 필요할 때 가끔은 영화가 힘이 됩니다. 영화 ‘행복을 찾아서’(2006)는 견고한 현실의 천장을 기어이 뚫고 올라가는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1997)처럼 아들을 끔찍하게 아끼는 남자입니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현실이 아우슈비츠라면 ‘행복을 찾아서’의 현실은 가난입니다. 노숙 생활을 전전하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 오직 집념으로 직업과 부를 쟁취하는 과정이 유머와 감동 속에 펼쳐집니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나을 게 없어 보이는 주인공이 착한 천성을 바탕으로 성공하는 스토리에서 위안을 얻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인지 ‘행복을 찾아서’도 많은 사람들이 ‘인생작’으로 꼽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우리를 198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데려갑니다. 윌 스미스가 연기한 크리스 가드너는 맞벌이 아내, 5살 난 아들과 함께 바쁘게 살아가는 의료기기 영업사원입니다. 가드너는 오스테오의 휴대용 골밀도 스캐너가 잘 팔릴 거라고 예상해 잔뜩 사다가 집에 쌓아놨습니다. 하지만 엑스레이보다 성능이 약간 좋은 이 스캐너는 가격이 2배나 비싸서 팔기 만만치 않습니다. 누구보다 쾌활하고 사교적인 그는 무거운 스캐너를 들고 열심히 병원을 뛰어다녀 보지만 한 달에 한 대 팔기도 버겁습니다.



가드너의 머릿속은 돈이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집세, 식비, 교통비, 그리고 아들에게 줄 장난감과 과자 비용 등 하루하루가 전쟁 같습니다. 집주인은 월세 못 낼 거면 나가라고 독촉하고, 스캐너는 집안에 한가득 쌓여 있고, 보다 못한 아내는 떠나겠다고 선언합니다. 가드너는 아들과 단둘이 남게 된 뒤 다시 심기일전해 스캐너를 팔아보지만 설상가상으로 국세청에 재산이 압류당해 무일푼이 됩니다.



매일매일 생존을 위한 가드너의 투쟁은 계속됩니다. 그는 14달러를 갚지 않는 친구와 대판 싸우고, 스캐너를 훔쳐간 집시를 사력을 다해 쫓아가고, 견인된 차 벌금을 내는 대신 구류를 선택하고, 힘들게 합격한 인턴이 무급이기 때문에 그만둘까 심각하게 고민합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택시비 5달러는 잠깐 빌려줘도 아무렇지 않은 돈이지만, 가드너에게 5달러는 전 재산이어서 돈을 빌려주고 나면 아들과 함께 굶어야 합니다.


어느 날 스캐너를 들고 거리를 걷고 있는 가드너 앞에 스포츠카에서 내린 한 남자가 지나갑니다. 가드너는 그에게 뭘 하면 저런 차를 탈 수 있는지 묻고 그는 증권회사 브로커라고 말해줍니다. 이제 가드너의 목표는 주식 브로커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딘 위터라는 증권사 간부를 찾아가 설득해 인턴에 지원합니다. 고졸 학력이 전부지만 수학을 잘하고 영업에 자신 있는 그는 면접에서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솔직하게 밝히며 면접관들에게 믿음을 심어주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인턴이 된다고 곧바로 길이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6개월 동안 치열한 경쟁을 펼친 뒤 2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해야만 정직원이 될 수 있습니다.



영화 속 6개월 무급인턴 제도는 지금 생각해보면 심각한 노동착취의 전형입니다. 20명의 인턴을 선발해 그들을 영업 최전선에서 뛰게 하면서도 보수는 한 푼도 주지 않는다니요. 6개월 뒤엔 그중 19명을 아무렇지 않게 해고합니다. 이처럼 노동착취를 일삼는데도 인턴 지원자는 넘쳐나 20명에 선발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당시 1980년대가 주식시장 활황기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만 요즘 같으면 당장 회사의 평판을 깎아먹고 법적 조치를 당할 일이겠죠.



어쨌든 딘 워터의 인턴이 된 가드너는 아슬아슬한 삶의 줄타기를 시작합니다. 밤에는 아들을 최대한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잠잘 곳을 찾아다니고, 낮에는 인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전화기를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회사에선 19명의 경쟁자보다 더 많은 계약을 따내야 하고, 회사 밖에선 다른 노숙자들보다 먼저 교회 노숙자 센터의 숙소를 차지하기 위해 줄을 서야 합니다. 만약 교회에 가지 못하면 지하철 화장실에서 하룻밤을 꼬박 새야하기에 그는 퇴근 후 교회 대기 줄을 향해 전력 질주합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정말 ‘개고생’이라고 할 만큼 안타까운 장면들이 많습니다. 크리스 가드너는 실존 인물에서 따온 캐릭터인데 나중에 그가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영화는 실제로 그가 겪은 일들의 절반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훨씬 더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냈다고 합니다. 아들은 영화에서처럼 대화가 통하는 5살이 아닌 갓 난 아기여서 더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 자신이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기에 자신은 절대 아들에게 소홀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은 영화와 같습니다.


실제 크리스 가드너(왼쪽)와 윌 스미스


실존 인물 크리스 가드너는 2002년 미국의 한 시민단체에서 주는 ‘올해의 아버지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증권사를 차려 성공한 뒤엔 노숙자 단체와 그가 기거했던 샌프란시스코 글라이드 메모리얼 교회에 기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가난한 삶 속에서 꿈을 향해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아기처럼 천천히 걸어보세요. 옳은 방향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면 그 방향을 확신하세요. 속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난이라는 환경은 그의 속도를 느리게 만들었지만, 그는 뚜벅뚜벅 자신이 선택한 길을 향해 걸었기에 훗날 과거를 회상하며 웃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원제는 ‘The pursuit of happyness‘입니다. 여기서 ‘pursuit’과 ‘happyness’라는 두 단어는 이 영화를 풀어가기 위한 열쇠입니다.


영화 속에서 가드너는 ‘추구(pursuit)’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토머스 제퍼슨이 기초한 미국 헌법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는데 여기서 ‘행복할 권리’가 아니라 굳이 ‘추구’라는 단어를 포함한 이유는 행복이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추구해야만 겨우 닿을 수 있는 가치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영화를 본 뒤에 우리나라 헌법도 찾아봤습니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행복추구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자유나 평등 같은 가치에 대해서는 ‘추구’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등을 누리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헌법이 행복을 ‘추구해야 할 권리’로 규정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추구하지 않고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행복의 속성 때문 아닐까요?



행복에는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면 그 순간만큼은 행복할지 몰라도 며칠 지나지 않아 행복한 감정은 약해집니다. 또 행복에는 허들이 있어서 한 번 기대치가 충족되면 다음번에는 더 높은 기대치의 허들을 뛰어넘어야만 비슷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은 돈, 더 맛있는 음식, 더 즐거운 경험을 얻어야만 비슷한 행복감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행복은 지속적으로 갖기 힘들고 그래서 ‘추구’해야만 하는 가치인 것입니다.


두 번째 단어인 ‘happyness’는 행복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happiness’의 오기입니다. 영화에선 아들이 다니는 차이나타운 어린이집에 철자가 틀리게 쓰여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요. 아들은 이 단어를 보고 아빠에게 “형용사”라고 말합니다. 영화 제목을 굳이 ‘happyness’로 오기한 이유는 행복이란 가만히 놓여 있는 명사가 아닌 계속 바뀌는 형용사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추구’라는 단어처럼 행복의 속성을 담은 제목입니다.



영화 속에서 가드너는 행복을 추구하면서 행복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지만 행복은 붙잡을 수 없고 붙잡히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행복이 지금 여기 있다고 생각되는 순간 곧바로 느껴야 합니다. 가드너는 증권사 정직원에 합격한 뒤 가장 먼저 어린이집을 찾아가 아들을 꼭 안아줍니다. 그토록 꿈꾸던 것을 이룬 뒤 그 기쁨을 함께 나눌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곧 행복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에서 티격태격하면서도 감동의 순간을 만들어내는 가드너 부자는 실제로도 부자지간이기에 더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칠 수 있었습니다. 아들 크리스토퍼는 윌 스미스의 아들 제이든 스미스가 연기했습니다. 당시 9살이었던 제이든 스미스는 20대가 된 지금 배우 겸 래퍼로 성장했습니다. 두 사람은 SF영화 ‘애프터 어스’(2013)에서도 아버지와 아들로 출연했는데 그 영화에선 청소년기의 제이든 스미스를 볼 수 있습니다.


가브리엘 무치노 감독


영화 ‘행복을 찾아서’의 감독은 이탈리아 출신 가브리엘 무치노입니다.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이 영화가 거의 유일합니다. 현재 50대인 그는 젊은 시절 이탈리아에서 다비드 디 도나텔로 감독상, 토리노 영화제 영시네마상 등을 휩쓸었던 감독입니다. 세 번째 영화 ‘라스트 키스’(2001)는 선댄스 영화제 관객상을 받으며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주었습니다. 할리우드가 그의 재능을 눈여겨봤고 그가 미국으로 진출해 만든 첫 영화가 바로 ‘행복을 찾아서’입니다. 당시 그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톱스타 윌 스미스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컬럼비아 픽처스에 감독으로 추천했습니다. 스미스는 할리우드 스타일과 달리 관습적이지 않은 무치노의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사실 ‘행복을 찾아서’의 스토리는 어떻게 보면 다소 뻔한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의 변주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에 흔한 권선징악 클리셰를 배제한 것입니다. 이 글 초반부에 언급했지만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미국 도시 버전처럼 보입니다. 낙천적이고 인간적인 주인공은 고난을 겪지만 영화에는 명백한 악인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가드너가 가난한 이유는 누군가와의 갈등 때문이 아니라 시대가 빈부격차를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가 어렵다”는 TV 연설을 한참 동안 보여주고 시작합니다.



일반적으로 영화가 가난한 주인공을 통해 감동을 이끌어내는 가장 쉬운 방식은 가난한 풍경을 전시하는 것입니다. 저렇게까지 가난할 수 있구나, 불쌍해서 어떡해, 관객에게 이런 반응을 유도합니다. 최근 개봉한 론 하워드 감독의 ‘힐빌리의 노래’도 이런 경우였습니다. 빌 게이츠가 필독서로 꼽았던 JD 밴스의 베스트셀러 원작은 가난하고 폭력적인 환경으로 변한 미국 러스트 벨트 오하이오 미들타운에서 자란 주인공이 어떻게 가난의 대물림을 끊고 예일대 로스쿨에 들어갈 수 있었는지를 개인적인 경험과 사회 환경 변화에 포커스를 맞춰 묘사한 반면, 영화는 이를 개천에서 용이 나온 스토리로 단순화해 ‘빈곤 포르노’, ‘얄팍한 흙수저 성공담’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행복을 찾아서’가 가난을 보여주는 방식은 이런 영화들과 다릅니다. 이 영화는 가난한 삶과 가난하지 않은 삶 혹은 부유한 삶이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점을 묘사하는데 더 많은 공을 들입니다. 가난한 주인공은 단돈 5달러를 빌려주기 전 한참을 머뭇거리고, 아들을 따뜻한 침대에서 재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전기 불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책을 읽기 위해 달빛이 드는 창 앞에 서고, 평소 같으면 버스 줄을 양보했을 테지만 노숙자 쉼터에 줄을 서기 위해 화를 내면서 새치기를 하고, 지하철 개찰구를 무단 통과하고, 모텔에서 내쫓기고도 짐을 놓을 곳이 없어 그냥 두고 지하철 화장실에서 하룻밤을 보냅니다. 그는 부유한 클라이언트에게 계약을 따내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아가 인사를 주고받으며 친해지지만, 두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천지차이입니다. 클라이언트에게 평범한 일상은 가드너에겐 이상향입니다.


빈부 격차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것이기에 단순히 가난을 전시하는 것보다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폭이 훨씬 더 큽니다. 고난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가드너는 유머를 잃지 않고 또 아들에 대한 헌신을 보여주기에 관객은 그를 응원하며 함께 눈물 흘릴 수 있습니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인해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야 했던 시기였습니다. 변화에 적응한 사람들은 더 부자가 됐고,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졌습니다. 코로나19가 지나가고 나면 분명히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더 심해져있을 것입니다. 사회 구조가 변하는 가운데 사실 영화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입니다. 극장은 더 이상 예전처럼 활발한 소통이 이뤄지는 장소가 아니고, 이제 많은 사람들은 집에서 영화를 보기에 영화는 매우 개인적인 매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은 있습니다. 위로받고 싶은 순간에 우리에게 잠시나마 위안을 주는 영화가 있다는 사실도 그중 하나입니다. ‘행복을 찾아서’는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영화입니다. 충격처럼 찾아온 2020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일상을 회복할 용기를 얻고 싶은 이들에게 이 영화를 찾아볼 것을 권합니다.


*BBB에 기고한 글입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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