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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발생 초기에 필자는 이런 생각을 했다. “혹시 이거 트루먼쇼인가?”


눈부시게 발전했다는 현대과학이 전염병 하나를 못 잡아서 인류 전체를 격리시킨다는 게 한동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 이 모든 상황을 만들어놓고 연출하는 자가 있는 건 아닐까.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한동안 전 세계 주식시장이 폭락했으니 거기서 이익을 얻는 세력이 만든 것 아닐까. 물론 아무 근거가 없는 상상이다.



그런데 한두 달 후 신기한 일들이 벌어졌다. 인류가 이동을 멈춘 지구에 자정 기능이 작동해 미세먼지가 사라지고 희귀생물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미디어에는 그동안 몰랐던 지구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속속 보도됐다. 사진 속에서 인간이 사라진 지구는 생경하면서도 무척 아름다웠다. 만약 이것이 일종의 트루먼쇼라면, 총책임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그동안 지구의 정복자라는 지위를 스스로에게 부여해 욕망하는 대로 자연을 훼손하며 살아왔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지구라는 총책임자의 지휘 아래 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더 겸손해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고 나서 최근 영화 ‘트루먼쇼’를 다시 봤다.



1998년에 세상에 나온 피터 위어 감독의 영화 ‘트루먼쇼’는 지난 20여 년 간 쏟아져 나온 다양한 리얼리티 쇼를 예견한 선구적 영화로 꼽혀왔다. 영화는 CCTV, 카메라, 거대한 세트, 잘 훈련받은 수많은 연기자들, 한 사람의 인생을 드라마로 만들 수 있는 미다스의 손을 가진 연출자와 전 세계에 라이브 쇼를 송출할 수 있는 거대 네트워크, 그리고 미디어에 푹 빠진 수억 명의 시청자가 있다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거짓으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참고로 ‘트루먼쇼'가 만들어진 20세기 말엔 우리가 사는 세계가 거대한 힘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그린 영화가 인기였다. ‘트루먼쇼'와 함께 대표적인 영화는 1999년작 ‘매트릭스’다. 이 영화는 인간이 기계장치에 누워서 현실이 어떤지 모른 채 가상의 세계에서 강제로 꿈만 꾸며 살고 있는 미래를 그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혹시 가짜인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진짜 세상은 어떤 것인지 ‘트루먼쇼’와 ‘매트릭스’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질문했다. 테크놀로지가 발달하면서 다시 오용돼 인간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기발한 상상력으로 영화에 녹아들던 시기다. ‘매트릭스'가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을 SF로 펼쳐놓은 영화였다면, ‘트루먼쇼'는 조지 오웰의 ‘1984’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현대판 동화로 구현한 영화다.


트루먼이 사는 세상은 이중적이다. 제작진과 시청자들이 보기에 그곳은 가상의 유토피아지만, 정작 트루먼은 자신이 사는 세상이 빅 브라더에 의해 감시받는 사회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유토피아에 사는 사람은 그곳이 유토피아인지 모르고, 빅 브라더를 의심하는 사람은 감시망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때까지 결코 의심을 멈추지 않는다. 유토피아가 상징하는 평등과 빅 브라더가 상징하는 자유에 대한 의지는 인류의 오랜 숙제다. CCTV와 미디어의 기능과 역할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현대사회 역시 유토피아와 빅 브라더의 경계를 오가고 있다는 점에서 만들어진지 22년이 지난 ‘트루먼쇼’는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트루먼은 가짜가 아닙니다. 모든 게 진짜입니다.”


영화는 에드 해리스가 연기한 크리스토프 PD의 의미심장한 말로 시작한다. 그는 우주에서도 보인다는 씨헤이븐(Seahaven) 섬의 지상 최대 스튜디오 221층의 루나룸에서 ‘트루먼쇼'를 지휘하고 있다. 전 세계 220개국에서 17억 인구가 이 라이브 쇼를 지켜보고 있다. 구석구석 숨겨진 초소형 카메라가 트루먼의 일거수일투족을 생중계한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은 이것이 만들어진 쇼라는 것을 알지만 오직 한 사람만 모르고 있다. 그에게는 이것이 진짜 삶이다. 트루먼은 그렇게 30년 가까이 살아왔고 10,000일 이상 라이브 쇼는 계속됐다.



크리스토프의 내레이션이 끝나면 영화는 10,910일째 트루먼쇼 방송을 보여준다. 그동안 자잘한 사고들은 있었지만 방송은 큰 무리 없이 진행돼왔다. 출근길에 나선 트루먼은 이웃에게 반갑게 인사하며 이렇게 말한다. “혹시 모르니까, 좋은 오후, 좋은 저녁, 좋은 밤 보내세요.” 짐 캐리가 넉살좋게 연기한다. 얼굴에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표정의 달인인 그가 아니었다면 트루먼 캐릭터는 생명력을 얻기 힘들었을 것이다. 감독은 짐 캐리를 캐스팅하기 위해 그가 예정된 다른 영화 2편 촬영을 마칠 때까지 1년을 기다렸다고 한다.



갑자기 출근길 맑은 하늘에서 조명기가 떨어진다. 제작진의 방송 사고다. 트루먼에겐 평온하던 일상에 의심 한 조각의 그늘이 드리워지는 순간이다. 크리스토프는 이 의심을 얼른 편집해버려야 한다. 제작진은 발 빠르게 움직여 항공기에서 물건이 떨어졌다는 뉴스 속보를 트루먼이 사는 세상에서 방송한다. 그렇게 고비를 넘기는 듯했지만 방송 사고는 계속된다. 바닷가에 갔더니 트루먼 머리 위로만 비가 쏟아지고, 자동차 라디오 주파수가 혼선을 일으키더니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예언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평생 들어가 본 적 없던 건물에 들어갔더니 엘리베이터 안이 출연자들의 대기실이어서 트루먼은 황급히 달려온 정장 차림의 남자들에 의해 쫓겨난다.



트루먼에겐 꿈이 있다. 피지로 여행을 떠나 사랑하는 여자 실비아를 만나는 꿈이다. 하지만 그가 거대한 세트장을 떠나려 할 때마다 온갖 장애물이 그를 가로막는다. 비행기는 예약이 꽉 차 한 달 후에나 가능하다고 하고(아마도 한 달 후엔 또 연기될 것이다), 고속버스를 타고 시카고로 가려 했으나 마침 버스가 고장 나서 갈 수 없다. 자동차로 시외로 빠져나가는 길은 차로 꽉 막혀 있다. 주변 사람들도 이상하다. 아내는 자꾸만 새로운 물건을 사오며 광고 모델 같은 포즈를 취하고, 하나뿐인 절친은 속 깊은 우정이라는 말로 포장해 모험하지 말고 순응하며 살자고 조언한다. 실비아는 자신이 실비아가 아니라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사라져버렸고,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는 20년 만에 뜬금없이 살아 돌아온다.



너무 많은 이상한 일들이 한꺼번에 벌어진다. 이쯤 되면 의심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사람들이 모두 짜고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혹시 저 사람도 알고 있지 않을까. 의심이 계속되면 더 나아가 이런 질문에 이른다. 나도 모르는 새 무언가가 나를 조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알고 있던 나는 어쩌면 진짜 내가 아닌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트루먼의 고민은 사실 우리 모두가 하고 있는, 혹은 해봤던 고민일 것이다. 인간은 특정 시기가 되면 자신의 인생이 진짜인지 궁금해한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항상 부모에게 묻는다. “엄마, 나 어디서 주워온 거 아니지?”(리드글) 이 질문은 문화권과 상관없이 인류 공통인 듯하다. ‘트루먼쇼’의 각본을 쓴 앤드류 니콜 역시 어릴 적 품었던 이 질문에서 시나리오를 시작했다고 밝혔으니 말이다.



자신이 속해 있는 가족, 학교, 사회가 진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상상, 내가 알고 있는 세상 너머에 다른 세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 진짜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누구나 한 번쯤 한다. 그 상상을 호기심 혹은 두려움으로 만드는 것은 개개인의 몫이어서 호기심 강한 사람은 끊임없이 파고들어 진짜 세상과 진짜 나를 찾아 나서고, 두려움이 더 강한 사람은 깊게 묻어둔 채 굳이 질문하지 않고 살아간다.


트루먼은 두려움이 강한 사람이었다. 물에 빠져 아버지를 잃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그를 깊이 침잠하게 했다. 그가 두려움에서 벗어나 깊게 묻어둔 호기심을 다시 끄집어내도록 만든 결정적 계기는 사랑이었다. 학창시절 도서관에서 만난 실비아를 잊지 못하는 그는 실비아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게 됐다. 사랑의 힘으로 그는 그토록 두려워하던 물을 건널 수 있는 용기를 회복한 것이다.



영화는 진짜 자신을 찾아 나선 30세의 트루먼이 세상의 끝에 이르러 가짜 세상을 박차고 나가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트루먼은 용기 있게 요트를 타고 거친 바다를 항해한다. 그는 막다른 곳에서 출구를 발견하고는 미련 없이 빠져나간다. 새로운 생명을 얻기 위해 물을 통과하는 것은 영화나 소설에서 곧잘 사용하는 출산의 상징이다. 거대한 세트장이라는 자궁을 약 360개월 만에 빠져나온 트루먼은 이제 스스로의 의지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크리스토프는 안락한 유토피아를 포기하고 온갖 거짓과 비정함으로 가득 찬 지옥 같은 세상으로 넘어오겠다는 트루먼을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을 유토피아 설계자라고 생각해왔고, 트루먼에게 고통 없이 행복한 삶을 살 특권을 주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지금껏 감시당해왔다는 것을 알아버린 트루먼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그에게 한 가지 길만 정해진 세상이 유토피아로 보일 리 없다.


시청자들은 트루먼의 결정에 환호한다. 그들은 트루먼을 10,910일 동안 지켜보면서 희로애락을 함께 했지만, 그들 역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지금까지 본 것은 잘 연출된 드라마 속 인물일 뿐이라는 사실 말이다. 그들 역시 트루먼처럼 두려움 깊은 곳에 호기심을 묻어둔 채 살아가고 있었기에 트루먼이 내면 깊은 곳에서 호기심을 끄집어내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할 때 그들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한다.



영화의 결말은 이상적이다.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크리스토프는 완벽주의의 댐에 조금씩 균열이 가면서 결국 무너져버리고, 트루먼은 자유의지를 획득해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시청자들은 트루먼쇼라는 마약 같은 방송의 마수에서 비로소 벗어난다. 절대군주처럼 행동하는 크리스토프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손쉬운 결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속 트루먼쇼는 그렇게 단순할 리 없다. 트루먼에게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크리스토프의 말처럼 결코 평탄하지 않을 것이며, 시청자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자극적이고 신선한 트루먼쇼를 찾아 나설 것이다.



트루먼이 문밖을 나서자마자 ‘트루먼쇼 시즌2’가 시작될 것이다. 트루먼은 미디어의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이며, 실비아와의 로맨스는 연예계 가십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것이다. 트루먼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일반인 스타로 평생 살아가야 할 것이다. 트루먼과 관계를 맺었던 모든 출연진들은 토크쇼 패널로 출연해 트루먼을 겪어본 경험담을 늘어놓을 것이다. 어떤 세상에서도 트루먼은 절대 익명의 남자로 머무를 수 없다. 그는 이런 인생을 선택한 적 없지만 태어날 때부터 이미 스타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트루먼쇼’가 나온 22년 전에만 해도 CCTV나 거대 미디어가 인간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사회문제로 대두됐지만, 이제 그런 걱정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범죄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더 많은 CCTV를 곳곳에 설치해주기를 바라고,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에 개인 미디어를 만들어 조회 수를 높이기 위해 자신의 사생활을 기꺼이 노출한다. 사람들은 트루먼이라는 한 사람의 24시간을 엿보는 대신, 수십억 명의 편집된 일상을 엿보고 있다.


이처럼 빅 브라더는 만연화되어 있지만 모든 책임을 져야 할 크리스토프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영화와 현실의 차이점이다. 새로운 리얼리티 라이브 미디어를 고안한 현실의 크리스토프는 자신이 전지전능한 절대자처럼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선언하는 대신, 개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노출해 자신만의 트루먼쇼를 만들도록 경쟁을 유도하는 영리한 방식을 택했다. 이런 자율적인 방식의 빅 브라더 시스템은 더 민주적인 것처럼 보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욕망에 훨씬 더 들어맞는다.


코로나19가 창궐한 세상이 기존 세상과 크게 달라진 점은 인간의 이동과 대면접촉이 줄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자연에는 잠시나마 멈춤의 시간이 마련됐다. 비록 대면접촉은 줄었지만 인간은 여전히 미디어를 통해 접촉하고 있다. 아니, 예전보다 더 많이, 더 자주 서로를 엿보고 있다. 사람들이 모바일 미디어를 이용하는 시간은 코로나 발생 이전보다 확실히 늘었다. 사람들은 인스타그램 속 세상에 펼쳐진 유토피아를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유튜브 라이브를 보며 빅 브라더의 일부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영화 속 트루먼쇼는 트루먼 자신이 쇼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자각하면서 변곡점을 맞이했다. 현실에서도 트루먼과 같은 현실 자각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모바일 세상에도 잠시 멈춤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BBB에 기고한 글입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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