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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침체된 극장가에 모처럼 새로운 영화들이 선보이고 있다. 전국 코로나19 바이러스 신규 확진자 수가 두자릿 수로 안정화되면서 그동안 개봉을 미뤄온 영화들이 25~26일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것이다.


한국영화 '이장' '사랑하고 있습니까', 공포영화 '스케어리 스토리: 어둠의 속삭임', 일본영화 '온다' '첫 키스만 50번째' '모리의 정원' '바이올렛 에버가든: 영원과 자동수기 인형', 전기영화 '주디' 등이 이번주 개봉작들이다. 극장 빈궁기를 채워줄 소규모 영화들이다.


가장 기대를 모으는 작품은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작 '주디'다. 지난 12일 개봉 예정이었으나 개봉을 미뤄 25일부터 관객을 만나고 있다.



'주디'는 1939년작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주인공 도로시를 연기해 당대 신데렐라로 떠오른 뮤지컬 배우 주디 갈랜드의 비운의 삶을 그린 영화다. 갈랜드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녀를 바비인형 취급하며 사육하는 영화계 거물들에 둘러싸여 신경쇠약에 시달리다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약물에 손을 댔고 결국 47세의 젊은 나이에 약물 과다 투여로 사망했다. '브리짓 존스의 다이어리' '미스 포터' 등 코믹 연기에서 두각을 나타내온 르네 젤위거가 숏컷을 하고 이미지 변신해 아카데미, BAFTA, 골든글로브 등에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싹쓸이했다. 경쟁자가 없을 만큼 작년은 젤위거의 해였다.



영화는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 MGM 창업자인 거물 제작자 루이스 B 메이어(리처드 코더리)가 촬영 세트장에서 어린 주디(달시 쇼)를 다그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반복되는 연습과 체중 관리에 지친 주디는 메이어에게 더 이상 못하겠다고 호소하지만 메이어는 "너 말고도 이 역할을 맡고 싶어하는 소녀들은 많다. 성공의 길을 포기하고 나중에 후회할거냐"며 윽박지른다.



메이어의 장담대로 주디는 '오즈의 마법사'를 통해 톱스타가 되지만 영화는 영광의 시간을 건너 뛰고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주디가 불면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모두가 아는 한물 간 스타인 그녀의 삶은 구렁텅이에 빠져 있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녀는 빈털털이다. 삶의 의욕도 잃었다. 그녀는 숙박비가 밀려 장기 투숙하던 호텔에서 쫓겨나고 밤에 갈 곳이 없어 두 아이와 함께 어쩔 수 없이 전남편의 집을 찾아간다. 전남편은 아이들을 맡겠다며 양육권 소송을 제기하고 생계 유지도 벅찬 갈랜드는 아이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무대에 올라 그토록 고통스러워 하던 노래를 다시 시작한다.



자신에게 다가온 새 남자 미키(핀 위트록)와 금세 사랑에 빠지며 결혼식을 올리기도 하지만 행복은 잠시 뿐이다.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게 해줄 것처럼 구슬렸던 남자는 갈랜드의 유명세를 이용한 극장 사업 계약에 실패한 뒤 그녀를 냉대한다. 갈랜드의 인생은 다시 뒤죽박죽이 되고 그녀는 계속해서 약물에 의지한다.


시종일관 나락에 빠진 갈랜드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에서 돋보이는 순간들은 그녀가 무대에 설 때 나온다. 젤위거가 노래를 잘 하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무대 속에 그녀의 인생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조울증과 만성 불안에 시달리는 갈랜드의 찌든 삶, 무대가 인생의 전부였던 그녀의 회한이 무대 장면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런던 관객들은 여전히 갈랜드에 환호하지만 그녀는 공연이 지긋지긋하기만 하다. 그래서 공연을 펑크내기도 하고 술에 잔뜩 취해 무대에 올라 비틀거리며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객석에서 야유가 터지면 갈랜드는 똑같이 욕으로 응수하고 기분이 나아지면 혼신의 힘을 다한 공연으로 기립박수를 끌어낸다. 극과 극을 오가는 갈랜드의 무대는 젤위거의 연기를 통해 빛을 발한다.



'Come Rain or Come Shine' 'The Trolley Song'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By Myself' 'The Man That Got Away' 'San Francisco' 'Get Happy' 'For Once in My Life' 등 갈랜드가 생전에 자주 불렀던 노래들을 젤위거가 직접 노래했다. 갈랜드에게 영광과 고통을 모두 안겨준 명곡 'Over the Rainbow'는 영화의 맨마지막 장면에 등장해 감동적인 피날레를 선사한다. 관객 모독으로 무대에서 쫓겨난 갈랜드는 약속 없이 무대에 올라 이 노래를 부르기 전 이렇게 말한다.



"이 노래는 어떤 곳을 향해 걸어가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게 우리 모두의 삶이고... 결국 평생 걸어가는 게 전부일지도 모르겠네요."


영화 속 공연은 갈랜드가 1969년 사망하기 몇달 전 이뤄진 마지막 무대였다.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서 꿈이 이루어질 거라고 믿었던 17세 소녀의 삶은 그렇게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감독 루퍼트 굴드는 영국의 무대 연출가로 런던에서 지난 30년 동안 셰익스피어 희곡을 주로 무대에 올려왔다. '주디'는 그가 만든 두 번째 영화로 런던 웨스트엔드 뮤지컬 '무지개의 끝'을 각색한 작품이다. 영화는 단순한 플롯에서 아쉬움을 남기지만 감독의 장기인 무대 장면만큼은 탁월해 아쉬움을 만회한다.


1997년 갈랜드는 그래미 평생 공로상을 받았고 그녀의 노래들은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됐다. 1999년 미국영화협회는 그녀를 미국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스타 1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갈랜드의 재능은 그의 딸에게로 이어져 1970년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이자 가수인 라이자 미넬리가 갈랜드와 그녀의 두번째 남편 빈센트 미넬리의 딸이다.


주디 ★★★

무대에서 펼쳐지는 희로애락



*매일경제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https://www.mk.co.kr/premium/life/view/2020/03/28059/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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