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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를 뒤집어놓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또하나의 깜짝 스타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 수상소감 등 영상의 댓글은 온통 이 사람에 대한 칭찬 일색입니다.


“번역이 정확하고 깔끔하다.”

“봉 감독의 말이 그대로 영어로 다시 들리는 것 같다.”

“한국어로 다시 말하라고 해도 못할 긴 문장을 단어 하나 안 빼놓고 통역하다니 놀랍다.”



봉준호 감독 역시 그에 대해 “언어의 아바타”라고 칭송했고

영국 가디언지는 그를 “수상 시즌의 MVP”라고 따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오스카 인터뷰


자고 일어났던 깜짝 스타가 된 그의 이름은 샤론 최. 한글 이름은 최성재.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궁금해 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정보는 한국에서 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미국 대학에 진학한 것 정도입니다. 나이는 25세라고 하는군요.


통역을 따로 공부하지 않았고 단지 영화를 좋아해 이 일을 맡게 됐다고 합니다. 2019년 5월 ‘기생충’이 프랑스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할 때부터 봉 감독 및 기생충 팀의 통역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골든글로브 애프터쇼 인터뷰


지난 1월 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골든 글로브 시상식 직후 열린 애프터쇼 인터뷰에서 진행자는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이정은 배우를 앞에 놓고 샤론 최에게 질문을 던져 지켜보던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시상식 시즌의 보석은 물론 봉 감독이지만 샤론 당신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데 기분이 어떤가요?”


샤론은 쑥쓰러워하면서 “저는 그저 이 영화의 광팬이고 모든 영화감독의 팬”이라고 답했죠.


골든글로브 애프터쇼 인터뷰


봉준호는 “우리 모두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다”고 진행자를 거들어 주면서 그녀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녀가 능숙하게 전문용어를 척척 통역해내는 배경엔 그동안 영화를 공부해왔고 영화를 만들어 본 경험이 밑바탕으로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아마도 그때 알게 됐을 겁니다.


이처럼 뛰어난 영어실력으로 유튜브 스타로 떠오른 샤론 최의 통역에 대해 전문 통역사들은 어떻게 평가할까요? 두 명의 전문가가 그의 통역에 대해 한 말을 소개합니다.


스크린 액터스 길드 어워드


김소영 통역사 (하퍼스 바자 발췌)


"한때 영화판에 발을 담갔던 그녀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업계의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봉준호에 빙의되어 뜻을 잘 전달했죠. 또한 한국과 미국 문화를 거의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어서 어휘의 특징을 매우 잘 살려 통역한 점도 훌륭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역시 지미 팰런 쇼에서죠.


“나는 되도록 말을 안 하고 싶어요. 스토리를 모르고 봐야 재미있거든요.”


봉 감독의 이 말을 이렇게 바꿨더라고요.


“I would like to say as little as possible here, because the film is the best when you go into it cold.”


Jimmy Fallon The Tonight Show


‘go cold’는 대책이나 계획 없이 일단 저지르고 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최소한의 얘기만 하고 싶어요. 왜냐면 영화는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봐야 최고니까요’ 라고 직역할 수 있어요. 봉 감독의 의도대로 명쾌하게 전달한 것이죠.


통역가는 화자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의도를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영어나 한국어 능력은 그다음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Collider Screening Series


곽중철 한국인 1호 통역사(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명예교수) (한겨레 발췌)


"40년 통역과 통역 강의를 마치고 은퇴한 필자에게도 그의 통역은 놀랍다. 먼저 그는 전문 통역 교육을 받지 않았다지만 뛰어난 언어 감각을 지닌 타고난 통역사다.


지난 수십년간 통역사 관련 보도는 아주 단편적으로 이루어졌는데,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의 통역을 맡아온 미 국무부의 한국인 이연향 통역국장이 지난 하노이 정상회담 때까지 한국 언론의 취재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영화 ‘기생충’과 함께 세기의 감독이 된 봉준호 덕분에 최씨의 인기는 그 미국 통역사에 대한 추억을 덮어버리면서 연일 유튜브를 도배하고 있다. 최씨 자신도 놀라고 있을 것이다.


산타바바라 영화제


미국의 한 사회자는 그가 봉 감독의 말을 받아 적는 작은 수첩이 비결인 것 같다며 행사 후 그 수첩을 갖고 싶다고 농담했지만 그런 수첩이 다가 아니다. 수첩에 모든 말을 받아 적을 수가 없기에 그는 봉 감독의 말을 단기 기억력으로 다 머릿속에 담은 뒤 짧은 순간에 그 말을 분석해 자연스러운 영어로 옮기는 것이다. 통역 훈련과 상관없이, 감출 수 없는, 타고난 재주다.



통역 이전에 한국어 분석 및 이해력이 거의 완벽해 보인다. 미국 대학을 나온 그는 미국 대학생들에 뒤지지 않을 어휘력과 자연스러운 표현력을 구사한다. 봉 감독은 자기 영화에 나올 배우를 캐스팅하듯 통역사를 골랐고, 멋지게 성공했다.


국내외 영화 전문가들이 구사하는 언어는 아무나 이해할 수 없고 특히 최고의 국제 영화 관계자들을 상대하며 같은 수준의 전문용어와 속어를 구사하는 봉 감독의 말을 통역하려면 30년 가까이 연상인 그의 머릿속에 들어가거나 그의 이마 위에 앉아 있어야 한다. 최씨는 그렇게 통역을 했다.


통역의 성패는 우선 말을 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봉 감독은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고 통역의 어려움과 민감성을 알고 통역사를 배려하는 사람이다. 최씨는 봉 감독을 존경하고 좋아한다. 봉 감독이 말할 때는 그를 보며 고개 숙여 메모를 하지만 통역할 때는 상대방과 눈 맞춤을 한다. ‘아이 콘택트’는 통역에 필수다. 자신감이 있어야 가능하다. 최씨는 여기에 더해 겸손과 성실성도 잃지 않는다."


골든글로브 레드카펫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소감

골든글로브 백스테이지


봉준호 감독이 1월 5일 골든 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을 때 가장 화제가 된 수상소감은 이 문장이었습니다.


“1인치도 안 되는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멋진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샤론 최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통역했습니다.


“Once you overcome the 1-inch-tall barrier of subtitles, you will be introduced to so many more amazing films.”


군더더기 없는 깔끔하고 멋진 이 표현은 전세계 수많은 매체에 그대로 실렸고 유튜브 영상은 100만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12월 4일 전미비평가위원회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은 수상소감의 일부를 따로 할애해 샤론 최를 따로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정말 언어장벽을 파괴하고 있어요.”


전미비평가위원회 외국어영화상 수상소감


‘기생충’ 신드롬이 낳은 깜짝 스타 샤론 최.

그녀는 통역을 통해 한국영화를 세계에 알리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감독이 그 장면을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 배우들이 어떤 감정으로 연기했는지 등이 샤론의 통역을 통해 정확하게 전달되면서 문화 차이가 좁아지고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이죠. 이는 ‘기생충’이 미국에서 극찬을 받게 된 또하나의 동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언젠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샤론 최의 다음 행보가 궁금합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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