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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이해하지 못하는 젊음과 욕망을 꿈꿀 수 없는 늙음.

어쩌면 한 인간의 양면성과도 같은 두 남자 앞에 나타난 은교라는 순수한 소녀.

눈 오는 날, 그녀는 유리로 된 문에 낀 성에를 옷소매로 슥슥 문질러 닦아내더니

이윽고 문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온다.

그렇게 문학이 영화 속으로 들어왔다.


이적요와 그의 제자 서지우. 하지만 서지우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차마 쓰지 못하던 장르소설을 대필해주고 남들 앞에서 드러내지 못하던 욕망을 담은 글을 몰래 발표하고 또 그런 자신에게 스스로 축사를 내리는 존재. 서지우는 이적요가 욕망하는 모든 것의 대명사이다. 사회에서 존경받는 그의 일탈을 위한 안전장치이고, 윤리와 쾌락 사이에서 선을 정해주는 심판이며, 또 그가 욕망하는 은교와 섹스하기 위한 젊은 육체이다. 결국 이적요는 자신이 만들어낸 환영의 존재를 스스로 죽인다.


이적요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동백꽃'이라는 시가 실릴 정도로 추앙받는 노시인이다. 한적한 저택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며 책 속에 묻혀 있던 그에게 어느날 한 소녀가 찾아온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던 오후, 반바지를 입은 채 안락의자에 앉아 세상 모르게 잠에 취해 있던 소녀. 그녀는 노시인의 저택에서 집안 정리를 도와주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젊은 것은 상이 아니요, 늙은 것은 형벌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스스로 침묵의 형벌을 받고 있던 노시인. 어느날 밤, 비에 젖은 교복 차림으로 찾아온 은교에게 흰 면티를 입힌다. 그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녀는 온통 흰 색이다. 아무 죄가 없을 것 같은 순수함. 그리고 하얀 도화지 같은 미소. 발 뒤꿈치마저 사랑스러운 그녀에게 그러나 노시인은 다가갈 수가 없다. 금지된 것 바로 앞에 놓인 아슬아슬한 경계선. 어디까지가 지켜야 할 선인지 그는 아찔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는 그저 할아버지일 뿐. 침대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겁내지 않고 쌔곤쌔곤 잠이 든다.


노시인에게 그녀는 이상향이다. 그녀가 그의 삶으로 들어오면서 잠자고 있던 문학에 대한 집념이 다시 솟아오른다. 그는 원고지를 꺼내 뭉툭한 연필을 손에 쥔다.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어린 미소년에게 반한 음악가 아센바하처럼,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로리타]에서 조숙한 로리타에게 한 눈에 반한 대학교수 험버트처럼, 이적요는 은교를 바라보다가 죽어버릴 것만 같다. 아니,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서지우와 함께 오른 등산에서 그는 은교가 애지중지하는 손거울을 집기 위해 절벽을 내려간다. 몸에 밴 근엄한 표정은 숨길 수 없지만 그녀를 향한 마음은 결코 늙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라고 한 것처럼.


하지만 이적요는 모든 것을 고백하고 드러낼 수 있을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공개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정도로 사회에서 숨어 지내지만 그것은 자신이 잊혀지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과거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기 때문이다. 액자 속에 담긴 자신의 젊은 시절 사진처럼 그는 그렇게 기억되고 싶다. 그래서 자신에게 손가락질 할 세상에 당당히 맞설 용기가 그에게는 없다. 그는 그저 외로운 소녀에게서 본 눈물을 자신의 외로운 욕망으로 닦아주고 싶은 시인일 뿐이다. 두 외로움은 자연스러운 화학작용을 일으키지만 정작 그가 발견한 것은 자신없는 육체 만큼이나 비겁한 자신의 모습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또다른 자아인 서지우를 죽이고 소설 [은교]의 원고를 불태우고는 술독에 빠져 모든 것을 잊으려 한다.


그러던 어느날, 술에 취해 살고 있는 그에게 대학생이 된 은교가 찾아와 속삭인다. "저, 할아버지의 은교에요." 오래전 비오던 그날, 흰 속옷과 속살, 니트의 올에서 느껴지던 은교의 향기가 다시 떠오른다. 하지만 그는 은교를 잡을 수 없다. 그 망설임과 뒤늦음이 그를 더 슬프게 한다.


영화 속에서 이적요가 공대생 출신의 서지우의 육체를 빌려 쓴 통속소설의 제목은 [심장]이다. 그리고 그 책의 부제는 '그저 탐욕적이었던 사랑의 결말'이다. 소설을 통해서만 꿈꿀 수 있던 이적요의 탐욕. 그래서 은교는 그 탐욕의 결말을 알지 못한 채 그저 그에게 다가왔다가 다시 떠났다. 그 자리에는 노시인이 알려준 은교의 아름다움만이 남았다.


'별'의 의미를 모르는 공대생으로 가득한 사회와 미디어에서 영화 <은교>는 보는 사람에 따라 한 노인의 '노망스'나 김고은의 노출수위에 화제가 집중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스스로 뿌듯할 것이다. 이 영화가 이룬 문학적 성취에 대해서. 대사가 없는 장면들에서 이 영화는 매순간이 거의 '시'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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