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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결혼하는 커플의 50% 가량이 이혼한다. 한국에서도 백년가약을 맺은 커플 셋 중 하나가 이혼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결혼 건수는 25만7600건, 이혼 건수는 10만8700건이었다. 이혼은 일상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혼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려한다. 원인과 결과만 주변에서 가십처럼 다뤄질 뿐이다. 영화나 드라마에도 이혼한 인물은 많이 나오지만 그 과정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교통사고가 난 뒤 수습 과정을 묘사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노아 바움백 감독의 신작 '결혼이야기'는 이혼 과정에 주목한다. '프랜시스 하'(2012) '위아영'(2014) '미스트리스 아메리카'(2015) '마이어로위츠 이야기'(2017) 등 그동안 뉴욕을 배경으로 막막한 청춘, 세대 갈등, 가족 갈등 등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해온 바움백 감독은 이번엔 위기에 처한 부부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마이어로위츠 이야기'에 이어 바움백 감독이 두 번째로 만든 넷플릭스 영화다.



남편 찰리(아담 드라이버)는 브로드웨이에서 잘 나가는 연출가다. 아내 니콜(스칼렛 조핸슨)은 한때 스타였지만 지금은 남편에게 가려진 연극배우다. 둘 사이에는 여섯살난 아들 헨리(아지 로버트슨)가 있다.



영화는 이들에게 분명 있었을 낭만적인 결혼생활을 생략하고 이혼하기로 합의하는 과정부터 시작한다. 결혼생활이 거의 끝난 시점부터 시작하는 영화의 제목을 '결혼이야기'라고 지음으로써 영화는 이혼하는 과정 또한 결혼의 일부라고 말한다. 결혼이 행복을 향해 두 사람이 법적으로 결합하는 과정이라면 이혼 역시 두 사람이 각자의 행복을 위해 법적으로 갈라서는 과정이다. 결혼과 이혼에는 행복 추구라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는 이 부분을 특히 강조한다.


찰리와 니콜이 이혼하려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남편이 바람 피운 것을 아내가 알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니콜은 찰리에 대해 오랫동안 불만을 품어 왔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을 배려하지 않고 혼자 결정하는 것에 지쳤다. 그녀는 자신이 배우로 더 많이 활동할 수 있는 LA에 살고 싶었는데 남편은 뉴욕을 떠날 수 없다고 고집했다. 니콜은 찰리가 성공한 연출가가 된 과정에는 자신의 역할도 있는데 남편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남편의 작품에서 과거엔 자신이 뮤즈였지만 이젠 자신에게 출연 제안도 하지 않는다. 이런 불만이 누적된 결과 그녀는 더 이상 남편을 위해 자신의 꿈을 희생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반면 찰리는 니콜의 불만을 이해할 수 없다. 단지 그는 일 하느라 바빴을 뿐이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서로에 대한 사랑이 아예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니콜은 남편과 헤어진 뒤에도 친구로 지내고 싶어한다. 찰리는 니콜에게 웬만한 재산을 다 넘김으로써 자립 발판을 마련해주려 한다. 니콜은 감정 상하는 이혼 소송의 와중에도 찰리의 머리카락을 잘라주고 허리를 숙여 풀린 신발 끈을 묶어준다. 찰리는 니콜 친정 집의 전기가 갑자기 나가자 밤늦게 찾아가 배전판을 점검해준다.


처음엔 원만했던 두 사람의 이혼 과정은 변호사가 개입하면서 전쟁으로 변한다. 달콤한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는 순간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이 시작되는 것처럼, 헤어짐이 이혼이 되는 순간 현실적인 스트레스가 찾아온다.



서로를 배려하던 두 사람은 아이 양육권 문제만큼은 양보하지 못해 첨예하게 맞선다. 니콜은 능력있는 변호사 노라(로리 던)을 내세워 친정이 있는 LA에서 아이를 키우겠다고 찰리를 압박하고, 찰리는 법정에서 자신이 더 나은 부모라는 것을 증명하려 고군분투한다. 대립이 격화되자 두 사람의 변호인은 급기야 사소한 행동까지 꼬투리잡아 상대방을 헐뜯는다. 일이 더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두 사람은 변호사를 빼고 대화를 시도해보지만 오히려 쌓인 감정이 분출되며 최악의 상황이 되고 만다.



모든 인간 관계는 서로에게 솔직해지는 과정을 겪고 나면 다음 단계로 진입한다. 이혼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악다구니 끝에 소송을 끝낸 찰리와 니콜은 더 이상 부부가 아니지만 부부일 때와는 다른 감정을 공유하게 됐다. 설렘과 기대가 사라진 자리에 아련함이 남아 두 사람은 예전보다 더 서로를 배려하게 됐다. 이별 후에 남은 것은 결국 성장이다. 영화 '결혼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이 주는 교훈이다.



이혼과 헤어짐 같은 차가운 이야기를 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는 영화다. 지금 관계의 위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화는 공감과 위로가 되어줄 법하다. 다만 영화 속 이혼 소송 과정은 한국과 달라 어느 정도 거리감이 들기는 한다.



찰리 역할을 맡은 아담 드라이버는 굵직한 선을 가진 개성 강한 외모로 '스타워즈'의 카일로, '블랙클랜스맨'의 위장 형사, '사일런스'의 죽음을 두려워 않는 신부,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에서 돈키호테를 만드는 열혈 CF감독 등 범상치 않은 캐릭터 뿐만 아니라 '위아영'의 젊은 청년, '패터슨'의 버스 운전사 등 생활 연기에서도 삶에 녹아드는 섬세한 연기를 펼쳐왔다. '결혼이야기'에서 그는 무심한 듯하다가도 홀로 슬픔을 삼키는 감성 연기를 선보인다. 특히 아내가 전남편에 대해 쓴 글을 아들에게 읽어주며 울먹이는 장면은 큰 울림을 남긴다.



니콜 역할의 스칼렛 조핸슨은 최근 '어벤져스' '공각기동대' '루시' 등 화려한 영화에 주로 출연해오다가 오랜만에 정극 연기를 펼쳐보인다. 2004년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이후 오랫동안 섹시스타였던 조핸슨이 아이 엄마를 연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녀는 슬픔을 극복하고 조금씩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이혼녀 역할을 차분하게 연기한다.



니콜의 변호사 로라 역을 맡은 로라 던, 찰리의 변호사 제이 역을 맡은 레이 리오타 등 두 베테랑 배우의 합류도 반갑다. 이들은 쾌활하고 깐깐하고 돈 밝히는 전형적 변호사의 모습으로 드라마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영화는 12월 6일부터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일부 극장에선 11월 27일부터 상영 중이다.


결혼이야기 ★★★★

유효기간이 끝난 사랑.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두 사람.



*매일경제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https://www.mk.co.kr/premium/life/view/2019/12/27275/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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