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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놓쳤다가 뒤늦게 집에서 보게 됐다.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난데없이 '화차'가 떠있길래 찾아보니 IPTV에서 고화질 VOD서비스를 처음 시작한다는 것이다. 영화가 개봉한 지 80일 정도 지났으니 채 3달도 되지 않았는데 유료케이블에 풀리는 것이 조금 이른 감이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요즘은 갈수록 주기가 빨라지는 것 같다. 개봉 당시부터 워낙 화제가 되었고 또 흥행도 성공했기 때문에 이미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여기에서는 영화를 보면서 느낀 소감을 간략하게 노트해보려고 한다.


1. 전반적인 소감을 말하자면, 기대보다 별로였다. 사실 너무 기대를 많이 했나보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아마도 영화화하기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미미여사 소설은 이야기가 압축되어 있어 강렬한 대신 단순하다는 것이 단점이다. 이 영화도 그런 장단점을 그대로 갖고 있다. 이야기가 강렬하지만 풍부하지 못하다. 채워지지 않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나면 약간 허무하다.


2. 주인공이 형사가 아닌 약혼자로 바뀐 것은 참 좋았다. 약혼자의 시선에서 보면 강선영 혹은 차경선이라는 인물에 더 감정이입할 수 있다. 그런데 주인공의 직업이 동물병원장인 것은 의도를 잘 모르겠다. 동물도 이만큼 보호를 받고 사는데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너무 단순한 비유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날지 못하는 나비도 은유라고 하기에 참 식상한 메타포였다. 오우삼 영화에 비둘기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3. 장문호와 사촌형인 전직 형사가 차경선을 열심히 뒤쫓는데 정작 중요한 단서는 간호사인 한나가 찾아준다. 모델하우스 사진도 찾아내고 호두엄마와의 만남도 알려준다. 차경선을 찾는 사람이 세 사람이나되니 불필요한 부분이 눈에 보인다. 캐릭터가 약간씩 겹친다고 할까? 배역 간의 역할분담이 안되어 있는 부분이 아쉽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에 대한 탐구는 정말 탁월하다. 짧은 2시간이었지만 장문호, 차경선이라는 인물이 어떤 궤적으로 살아왔는지 대충 알 것 같다. 시나리오를 수십 번 다시 썼다고 하던데 그만큼 인물에 대한 연구는 철저하게 해놓은 것 같다.


5. '화차'는 일본에서 '지옥으로 가는 욕망의 불수레'라는 뜻으로 쓰인다. 이 영화는 사채빚을 지고 평생을 살아온 한 여자의 처절한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에서 낙오한 자들을 위한 지옥으로 가는 열차로, 한 번 타면 절대로 내릴 수 없는 절망의 구렁텅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영화는 자본주의 시스템보다는 한 여자의 개인사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실 차경선의 죄는 그녀 자신보다는 그녀를 그렇게 만든 시스템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자본주의가 더 부각됐어야 했다. 하다못해 <내 깡패같은 애인>에서 박중훈이 "그거 너 때문 아니야. 이 사회가 문제지." 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 영화에는 그런 대사조차 없다. 나비 같은 단순한 메타포마저 즐기는 감독이 왜 그런 대사나 상황은 넣지 못했을까. 더 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영화가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6. 여기저기서 칭찬했던 대로 김민희의 연기는 좋다. 사실 김민희의 이런 진정성 있는 연기는 처음이 아니다. <여배우들>과 <모비딕>을 보면서도 나는 그녀가 지금까지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연기를 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김민희에 비해 이선균의 연기는 평범하다. 지금까지 이선균은 두 가지로 쓰였다. 자상한 이선균과 버럭하는 이선균이다. 이 영화에서는 둘 사이를 오가는데 다른 영화들에서와 크게 차별되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조성하는 초반에 굉장한 포스를 갖춘 것처럼 나와서 기대를 했는데 후반부로 가면서 형사라기보다는 이선균의 친형처럼 느껴지면서 비중이 약해진다. 세 명의 주연배우를 제외한 조연이나 단역 배우들은 안타깝게도 그다지 연기가 좋지 않다. 초반 강선영의 직장동료로 나온 여자처럼 국어책을 읽는 듯한 배우도 있다. 캐스팅에 좀더 신경을 썼어야 했다.


7. 변영주 감독은 다행스럽게도 이 영화의 성공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그녀가 그다지 재능이 있는 감독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화차>는 <밀애> <발레교습소>에서 그다지 나아가지 못한 것 같다. 영화적인 만듦새가 탁월하지도 않고, 새롭지도 않으며, 감동을 줄만큼 만족스럽지도 못하고 또 혜안을 제시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 감독에 대해 또 확실하게 알게된 것은 그녀는 참 노력하는 감독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장점은 재능이라기보다는 노력이다. <낮은 목소리>를 찍기 위해 수년간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해온 열정이 그녀의 노력을 말해준다. <화차>를 위해 수십 번이나 시나리오를 고쳐쓴 노력은 이 영화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차경선과 장문호의 캐릭터가 이토록 생생할 수가 없다. 그래서 <화차>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진다. 아쉽지만 제법 괜찮은 영화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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