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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제목은 마치 스타 다큐멘터리의 제목 같다. 한국식이라면 <김태희와의 3일> 뭐 이런 식일까. 사실 나는 마릴린 먼로 세대가 아니어서인지 그녀에 대해 별다른 감흥(?)이 없다. 섹시스타라고는 하나 당시의 섹시란 지금에 비할 바가 못된다. 음악으로 치면 랩이 나오기 이전의 댄스 음악을 듣는 수준이랄까. 순수하고 클래시컬하다. 마릴린 먼로의 대표작인 <뜨거운 것이 좋아>나 <7년 만의 외출>을 지금 다시 보게 되면, 섹시하기보다는 오히려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마릴린 먼로는 생전에도 대단한 스타였지만 약물남용으로 요절한 뒤에 오히려 더 스타가 됐다. 자살에 대해 끊임없이 의혹이 등장하고 당대의 대단한 남자들과의 스캔들에 오르내리면서 신비한 이미지는 더 증폭됐다. 스캔들에는 심지어 로버트 케네디까지 등장할 정도였으니 앤디 워홀 같은 아티스트가 그를 20세기의 아이콘으로 다룬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영화는 1962년에 사망한 마릴린 먼로의 50주기가 되는 해에 맞춰서 만들어졌다. 원작은 1995년에 발간된 다큐멘터리 작가 콜린 클라크의 <The Prince, The Showgirl and Me>. 1956년 먼로가 영국에 머물며 영화 <왕자와 쇼걸>을 촬영할 당시, 로렌스 올리비에 프로덕션의 '고퍼'였던 콜린 클라크와 로맨틱한 일주일을 보낸 이야기다. 영화는 초반에 실제 이야기라는 자막으로 시작하지만 영화가 전적으로 콜린의 회고록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어느 정도까지가 실화인지는 불분명하다. 아무도 몰랐던 로맨스인 만큼 아마도 본인들만이 사실을 알 것이다.


영화는 무척 고풍스럽다. 마치 그 당시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고증이 잘 되어 있다. 파인우드 스튜디오, 윈저 캐슬, 이튼 스쿨 등 영국적 느낌이 그대로 묻어나 있는 장소들이 주요 배경이다. 당시 공산주의와 노조설립이 한창 이슈일 때의 사회적 배경도 등장인물들 간의 에피소드로 등장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대단히 훌륭하다. 마치 실제의 로렌스 올리비에와 마릴린 먼로를 보는 듯하다. 경이로운 영화들과 연극을 남긴 로렌스 올리비에는 역시 또한명의 영국 최고의 배우인 케네스 브래너가 연기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이나 후나 로렌스 올리비에 역을 맡을 배우로는 케네스 브래너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만큼 환상적인 조합이다. 마릴린 먼로 역은 미셸 윌리암스가 맡았는데 결과가 좋아서 지금은 최고의 캐스팅으로 칭송받지만 사실 이 영화 이전에 미셸 윌리암스라는 이름은 요절한 히스 레저의 연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을 뿐이었다. 차라리 지금 제작중인 영화 <블론드>에서 마릴린 먼로를 연기할 나오미 와츠가 오히려 마릴린 먼로와 더 싱크로율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미셸 윌리암스는 모든 우려를 불식시키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콜린 역을 맡은 에디 레드메인이다. 톰 칼린의 <세비지 그레이스>로 유명해진 그는 7살 연상의 슈퍼스타에게 마음을 빼앗긴 23세의 청년을 생동감 있게 연기했다. 이 영화의 플롯상 관객들은 그에게 감정이입되어야 하는데 그에게는 묘하게 끌리는 매력이 있다. 잘 생기진 않았지만, 당차면서도 여리고, 순박해 보이면서도 영리하다. 루시 역을 맡은 현재의 슈퍼스타 엠마 왓슨과 과거의 슈퍼스타 마릴린 먼로 사이에서 행복한 고민이라니. 아마도 많은 남자들이 부러워할 것 같다.


영화는 로맨틱한 랑랑의 피아노 연주로 시작해서 미셸 윌리암스가 부르는 'That Old Black Magic'으로 끝난다. 처음부터 끝까지 낭만적이다. 누구와도 쉽게 사랑에 빠질 것 같은 마릴린 먼로. 그리고 실제로 그녀와 사랑에 빠진 23세 청년. 어떻게 보면 성장 드라마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영화 속 영화이기도 한데, 마릴린과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아련한 추억도 불러일으켰으리라.


영화를 보고나니 한국에는 왜 이런 영화가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영화에 관한 영화이자 위대한 배우에 관한 영화. 그리고 고풍스러운 멋이 살아있는 한국영화를 보고 싶다. 유산은 비단 전해져 내려오는 것 뿐만 아니라 후세에 어떻게 꾸미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위대한 유산'으로 기억될 수 있는 것이니까.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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