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라스 폰 트리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두 눈 뜨고 보기 힘들었던 <안티크라이스트>에 이어 이번엔 우울함의 극단으로 치닫는 <멜랑콜리아>다. 라스 폰 트리에는 2007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고백했었다. 작년 깐느 영화제에서 나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도 정신적인 기복이 심했던 탓이라는데, 그가 최근에 선보이고 있는 작품은 분명히 이전의 작품들과 많이 다르다.



<백치들> <어둠 속의 댄서> <도그빌>과 비교하면 <안티크라이스트> <멜랑콜리아>는 전혀 다른 감독의 영화처럼 느껴진다. 사회 속에서 차별받으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인물을 내세워 그들을 통해 부조리를 신랄하게 풍자해왔던 스토리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최근 두 작품에서는 외딴 곳에서 사회와 단절된 소수의 인물군과 극단적인 냉소만이 남았다.


'도그마 선언'을 할 정도로 날것 그대로의 영상을 추구하던 그의 스타일마저 완전히 변해서 이젠 극단적인 고속촬영이나 특수효과의 사용도 마다하지 않는다. 단지 어떤 정서적인 느낌과 미술을 차용한 이미지를 통해서만 라스 폰 트리에의 예전 작품들과의 연결성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멜랑콜리아>를 지배하는 것은 두 가지 키워드다. '우울증' 그리고 '종말.' 라스 폰 트리에는 "우울증 환자는 일반적으로 재앙이 닥칠 때 보통 사람들보다 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로 이 영화의 기획의도를 설명했는데 아마도 감독 자신이 겪고 있는 질병을 정면돌파하는 방법으로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영상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종말'이라는 단어는 참 무책임한 단어지만 이미 <안티크라이스트>로 인간 내면의 극단을 실험해본 감독에게 지구의 종말은 그저 또하나의 실험 대상이었을 것이다. 라스 폰 트리에는 달라진 자신만의 방식으로 종말에 대처하는 인간의 내면을 영화 속에 담고 있다.



내러티브 중심으로 흘러가는 영화를 '소설'로 비유한다면 <멜랑콜리아>는 소설보다는 '시'에 더 가까운 영화다. 이야기들을 엮어가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라기보다는 어떤 관념들이 있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이미지들을 차용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시를 보는 듯하다. 영화의 두 주인공인 저스틴과 클레어는 우울과 불안이라는 감정에 둘러싸여 있다. 이 둘을 연결시켜주는 클레어의 아들 리오는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사랑받는 존재이지만 그 역시 두 사람을 구하지는 못한다.


이 영화에는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이 숨겨져 있다. 오프닝과 엔딩에서 흘러나오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대위법을 처음 사용한 곡인데 줄거리를 위주로하던 기존 오페라의 관행을 깨고 인간의 내면심리를 파고들었던 작품이다. 앞서 '시'라고 표현했던 이 영화의 상징성과 비슷해서 잘 어울린다.


존 에버릿 밀레의 [오필리아]


피터 브뤼겔의 [눈 속의 사냥꾼]


카라바지오의 [골리앗 머리를 든 다비드]


그림으로는 존 에버릿 밀레의 [오필리아], 피터 브뤼겔의 [눈 속의 사냥꾼], 카라바지오의 [골리앗 머리를 든 다비드] 등의 작품이 직접적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혹은 영화의 주인공인 저스틴을 통해 재현되기도 한다. <도그빌>에도 등장한 적 있던 [오필리아]의 이미지는 상실감에 빠진 저스틴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고, 마을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타는 와중에 빈 손으로 돌아오고 있는 사냥꾼을 그린 브뤼겔의 그림은 오프닝 시퀀스에서 잿더미로 타버리는데, 사회와 고립되어 있는 이 영화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또 골리앗 머리를 칼로 베어내 들고 있는 다비드의 그림은 저스틴이 결혼식에서 만난 직장 상사처럼 스트레스를 주는 주변인물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상징한다. 이처럼 이 영화는 음악과 미술을 통해 인물들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다. 더 많이 알수록 더 많은 관련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1,2부로 나뉘어 두 자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1부 [저스틴]은 성대하고 부유한 결혼식이 진행되는 와중에 계속해서 불안감과 상실감을 느끼는 저스틴의 이야기다. 결혼식은 풍요로운 파티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예사롭지 않은 가족의 면모가 드러난다.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를 거부한다고 선언하는 엄마, 숟가락 하나라도 챙겨가려는 아빠, 이런 가족들을 비난하면서 결혼식 비용이 얼마나 비싼지를 투덜대는 형부 등. 유일하게 정상인처럼 보이는 저스틴의 언니 클레어의 비밀은 2부를 위해 감추어져 있다.


직장 상사인 잭은 결혼식에서마저 끊임없이 광고카피를 내놓으라며 저스틴을 괴롭힌다. 밖으로 나간 저스틴은 하늘을 바라본다. 한눈에 보기에도 특이한 빨간색 별이 떠 있다. 결혼식에 초대된 하객들은 마치 병풍처럼 저스틴 가족을 둘러싸고 있는데, 18홀의 골프 코스까지 갖춘 대저택에서 저스틴은 마치 외딴 섬처럼 느껴진다. 결국 결혼식이 끝나면서 남편이 될 마이클도 떠나버린다.



1부는 행성 충돌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야기지만, 브뤼겔이 사냥꾼의 초라함을 강조하기 위해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익살스럽게 그린 것처럼 2부를 위해 꼭 필요한 사전 설명으로 존재한다.


2부 [클레어]는 동생 저스틴을 돌보다가 눈앞으로 다가오는 거대한 행성을 보고 공포에 빠진 클레어의 이야기다. 1부와 달리 클레어와 남편 존, 아들 리오, 저스틴, 그리고 집사 외에 다른 등장인물이 없다. 본격적으로 사냥꾼 이야기로 들어선 것이다. 따뜻한 금빛 톤이었던 1부와 달리 2부는 차가운 청백색이다. 지금까지 지구 종말을 다룬 영화들은 으레 들뜬 리포터로 상징되는 미디어의 수다와 탐욕스런 사회의 혼돈이 주된 이야깃거리가 되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1부에서 이미 사회적 배경을 다 지워버렸기 때문에 오로지 인물만이 남았다. 마치 바그너의 오페라가 무대 세트를 단순화시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춘 것과 비슷하다.



이들은 어떤 미디어와도 접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는 알 수 없다. 딱 한 번, 클레어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멜랑콜리아 행성의 '죽음의 춤'이라는 경로를 알아냈을 뿐이다. 이들에게 행성 충돌은 국가나 사회가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자신이 파멸하게 되는 실존적인 공포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저스틴이 1부에서 극도의 우울증세를 통해 정신 파괴를 겪은 후 담담하게 마지막을 기다릴 침착함과 냉정함을 갖게 되었다면 클레어와 존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존은 과학자들의 연구가 틀렸다는 것을 발견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클레어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행성은 지구보다 훨씬 크다.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음을 알게 된 클레어와 저스틴, 리오는 나뭇가지로 만든 동굴에 앉아 지구의 마지막 날을 기다린다. 리오가 스틸브레이커라 부르는 이모 저스틴과 함께 만든 매직 동굴이 기적을 만들 수 있을까? 차분한 저스틴과 겁에 질린 클레어의 상반된 표정에 종말을 마주하는 서로 다른 모습이 보인다.



여러 상징과 알레고리, 그리고 은유로 가득한 영화지만 마지막은 직설적이다. 라스 폰 트리에는 돌아가는 법이 없다. 인상적인 시를 한 편 읽은 듯, 이미지가 머리 속에 강렬하게 남는다. 영화가 끝나면 오프닝 시퀀스를 다시 떠올려보게 된다. 저스틴의 머리 위로 비가 되어 떨어지는 새, 세 사람 위에 떠오른 세 개의 달, 숲속을 뛰어가다 나무줄기에 걸린 신부, 주저앉는 말, 아이를 안고 골프장을 빠져나가는 클레어, 나무를 깍는 소년, 충돌하는 두 행성 등 고속촬영을 통해 극단적인 슬로모션으로 만들어져 마치 미술작품을 나열해 놓은 것처럼 구성되었는데, 결국 이 영화의 내용이 함축적으로 다 들어 있다. 근래 본 영화 중 가장 멋진 오프닝시퀀스다. 특히 슬로모션이 주는 긴장감은 탁월하다. 멜랑콜리아 행성이 지구에서 보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가오는 것 같지만 우주에서 보면 하나의 슬로모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저스틴과 클레어 자매는 커스틴 던스트와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연기하고 있다. 특히 커스틴 던스트의 새로운 이미지 변신이 놀라운데 시종일관 불안 속에 갇혀 있다가 나중엔 한밤중에 풀밭에 나체로 누워 푸른 행성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는 강렬한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깐느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이 아깝지 않다.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안티크라이스트>에 이어 또 한번 쉽지 않은 역할을 맡았다. 전작에서 종교적 도그마에 사로잡힌 여전사 같은 캐릭터였다면 이번에는 불안을 견디지 못하면서도 모성본능에 몸부림치는 역할이다. 하지만 전작의 캐릭터가 워낙 무시무시했던 탓인지 이번에는 무난하게까지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공들였을 장면인 '멜랑콜리아' 행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구의 몇 배 크기인 이 행성이 다가오는 장면의 원근감은 관객을 압도한다. 리오가 만든 원형 철망 너머로 점점 작아지거나 커지는 행성은 짙푸른 지구와 구별되는 탁한 푸른색으로 저스틴과 클레어의 우울함을 상징한다. 여기에 둥둥거리는 공포스런 음향과 바그너 음악의 차가움이 더해져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장면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충돌은 관객에게 강한 여운을 남긴다. 모든 것의 종말은 고통스럽지만 한편으론 너무나 아름다운 영상에 할 말을 잃고 만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