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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서로 다른 류승룡을 보았다. 한 번은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또 한 번은 큰 영화관 화면에서였다. 작은 화면에서 류승룡은 왕을 쥐락펴락하는 해원 조씨 가문의 우두머리로 눈을 매섭게 치켜떴고, 큰 화면에서 류승룡은 만년 경찰반장으로 “이것은 갈비인가 치킨인가” 멘트로 허당 웃음을 발산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의 류승룡


작은 화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큰 화면은 코믹 경찰영화 ‘극한직업’이다. 전자는 넷플릭스가 최초로 제작비 전액을 투자한 한국 드라마로, 후자는 한국영화의 흥행 가뭄을 일거에 해소해준 다크호스로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제작비 200억원이 투입된 ‘킹덤’은 넓은 스케일의 영상을 작은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는 게 갑갑하게 느껴진 반면, 65억원이 투입된 ‘극한직업’은 마치 예능 프로그램처럼 아기자기한 장면이 많아 오히려 대형 스크린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영화 '극한직업'의 류승룡


‘킹덤’에는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한 인서트컷 중 한국의 자연을 항공 촬영으로 담은 장면이 많다. 이때 울긋불긋한 산, 고풍스런 궁궐 등 한국에서만 찍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또 역병에 걸린 좀비들이 떼로 달려드는 장면 역시 작은 화면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반면 ‘극한직업’에는 이병헌 감독의 장기인 ‘말맛’을 살린 대사들이 많은데 어떤 대사는 웃음을 유도했음에도 그냥 지나가게 되는 경우가 있어 차라리 예능처럼 자막 처리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다.


분명 제작 단계부터 스크린 포맷을 인지하고 만든 작품들이지만 결과물은 이처럼 상반된다. 이 낯선 어색함은 영상산업의 변화가 가져온 현상 중 하나다. 넷플릭스, 아마존, 훌루 등 비디오 스트리밍 시장에 돈이 몰리면서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기존 극장용 콘텐츠 이상의 퀄리티를 가진 영상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는 반면, 영화산업은 점점 위축되면서 제작비 규모를 줄여 가성비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북미 영화시장은 최근 5년새 정체돼 있다. 북미 영화시장의 티켓 판매 수는 12억장 안팎에 머무르고 있으며, 한국 영화시장의 관객 수는 2억명대를 맴돌고 있다. 반면 비디오 스트리밍 시장의 구독자 수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는데 넷플릭스, 아마존, 훌루 등 주요 서비스의 가입자 수는 2018년 2억5천만명(중복가입자 포함)으로 이는 5년 전인 2013년 6700만명에 비해 무려 270% 증가한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


지난 25일 전세계 190개국서 첫 선을 보인 ‘킹덤’은 넷플릭스가 수치를 공개하고 있지 않아 얼마나 많은 시청자가 봤는지 알 수 없지만 IMDB에서 네티즌 평점 8.6을 기록하는 등 준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낯선 조선시대에 좀비물을 결합한 시도가 신선하다는 반응이 많다. 영국드라마 ‘더 크라운’ 도입부처럼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영상으로 시작해 ‘워킹데드’처럼 좀비들 사이에서 캐릭터가 하나씩 드러나더니 ‘왕좌의 게임’처럼 권력암투를 그린 구성으로 나아간다. 스릴러에 재능 있는 김은희 작가는 미스터리한 캐릭터를 삽입해 정체를 서서히 드러내는 방식으로 6부작을 단숨에 끌고 간다. 다만 시즌1이 이야기의 중간에 갑작스럽게 마무리되다 보니 기존 드라마의 ‘시즌’ 개념보다는 영화의 시리즈 개념이 더 어울리는 작품이다.


영화 '극한직업'


23일 개봉한 ‘극한직업’은 지난 추석 이후 연이은 흥행 부진에 위기설까지 돌던 한국영화계에 모처럼 내린 단비 같은 영화다. 100억대를 예사롭게 넘나들던 제작비를 대폭 줄이고 ‘주유소 습격사건’ ‘인정사정 볼것없다’ ‘’두사부일체’ ‘베테랑’ 등 그동안 흥행했던 한국영화를 레퍼런스로 삼되 무거운 핵펀치보다는 가벼운 잽으로 승부한 게 주효했다.



경찰이 잠복근무 끝에 범인을 검거한다는 이야기는 ‘인정사정 볼것없다’ ‘잠복근무’ 등을 떠오르게 하지만 이 영화만의 매력은 디테일에 있다. 마약계 반장 류승룡뿐만 아니라 진선규, 이하늬, 이동휘, 공명 등 모든 형사들의 캐릭터를 세세하게 만들어 각자 매력을 심어주었고, 위장한 치킨집이 의외로 대박난다는 설정(우디 앨런의 ‘스몰 타임 크룩스’를 떠올리게 하는)은 단지 개그소재를 넘어 자영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플롯으로 나아갔다. 류승룡의 마지막 대사 “소상공인들은 다 목숨 걸고 해!”는 이 노림수가 정확하게 박혀 디테일 코미디의 화룡점정을 찍는다. 영화는 개봉 첫 주말 이틀 동안만 무려 200만 관객을 불러모으더니 일주일새 400만 관객을 돌파해 이 속도라면 설날 연휴 ‘천만영화’ 등극을 노려볼 만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

영화 '극한직업'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킹덤’과 ‘극한직업’처럼 작은 화면에 대작이 올라오고, 큰 화면에 비교적 작은 규모의 영화가 선전하는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넷플릭스는 올해 오리지널 콘텐츠에 무려 130억달러(약 14조원)를 쏟아부으며 고퀄리티 영상물에 올인하고 있고, 한국영화계는 규모를 줄여 내실을 다진 작품들을 곳곳에 배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총제작비 45억원을 들인 코믹 학원물 ‘내안의 그놈’이 190만 관객(손익분기점 150만명)을 기록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고, 설연휴 이후 제작비 50억원대의 묵직한 드라마 ‘증인’, 순제작비 55억원이 투입된 코믹 좀비물 '기묘한 가족'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매일경제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http://premium.mk.co.kr/view.php?no=24712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댓글
  • 프로필사진 dpfah 넷플릭스 가입자 전부가 5인치대 스마트폰 및 이동용 디바이스만을 이용해서 시청하나요? 저만해도 집안에서 가장 큰 디스플레이인 60인치 TV에서 넷플릭스를 시청하는데요, 그렇게 보니 킹덤에서 펼쳐지는 장엄한 풍광이 제대로 느껴지더군요. 동일 배우이긴 하나 콘텐츠의 장르가 다르고,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좀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극한직업 역시 넷플릭스 같은 곳에서 곧 상영이 될 터이고 그렇게 되면 지금의 비교는 더욱 덧없어지네요. 넷플릭스에서 회당 수십억씩 들이는 블록버스터만 서비스하는 것도 아니고 코미디 장르도 많아요. 무엇으로 볼 것인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고 두 작품 모두 장단점이 있는 것이고, 너무 비교를 위한 비교 아니신지 하는 생각이 드네요. 2019.02.07 13:23
  • 프로필사진 Youchang 의견 감사드립니다. 통계를 보니 넷플릭스 한국 가입자의 절반 이상이 스마트폰으로 시청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비교를 해봤습니다. 물론 대형 TV 화면으로 시청하면 더 낫겠지만 그래도 저는 킹덤을 보면서 극장 스크린으로 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어요. 고퀄리티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 같아 아쉽더라고요. 2019.02.07 14:21 신고
  • 프로필사진 뽀야어망 저도 킹덤 PC화면으로 보거나 티비로 봤습니다
    이동중엔 태블릿으로 보기도 했구요
    화면이 작아서 불편함 전혀 못 느꼈습니다
    가뭄에 콩나듯 극한직업같은 좋은 영화도 있지만 이젠 거의 영화관 안가고 넷플릭스를 접하는게 일상이 됐네요
    자알~ 만들면 수고스럽더라도 영화관을 찾아가게 만드는 힘이 될 겁니다
    그런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2019.02.07 13:43
  • 프로필사진 Youchang 네~ 아무래도 대세가 넷플릭스로 넘어가는 듯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큰 화면을 겨냥한 영화들이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 싶네요. 킹덤도 극장에서 보면 전혀 다른 기분일 것 같은데요.. 2019.02.07 14:2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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