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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충돌 사고에서도 상처 하나 입지 않을 정도로 절대 다치지 않는 남자, 작은 충격에도 부스러지지만 두뇌가 뛰어난 남자, 23개의 인격을 갖고 살다가 24번째 인격인 괴물일 때 가공할 힘을 발휘하는 남자. M 나이트 샤말란이 창조한 세 캐릭터는 마블과 DC가 양분하고 있는 슈퍼히어로 세계와 결이 다르기에 신선하다는 평을 받았다. 우비를 입고 다니는 데이비드는 슈퍼맨, 머리 좋은 글래스는 매그니토, 다중인격 케빈은 헐크를 연상시키지만 데이비드는 늙었고, 글래스는 유리몸이고, 케빈은 정신연령이 오락가락한다.


정신병원에 모인 세 영웅 혹은 빌런


그동안 마블과 DC의 아성에 도전한 슈퍼히어로들은 많았지만 대부분 일회성에 그쳤다. 하지만 나이트 샤말란은 '언브레이커블'(2000)을 선보인지 무려 19년 만에 '23 아이덴티티'와 '글래스'로 자신만의 '이스트레일 3부작'을 완성하며 또다른 슈퍼히어로 월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영화 '글래스'는 한 정신병원에 나란히 수감된 데이비드(브루스 윌리스), 케빈(제임스 맥어보이), 글래스(사뮤엘 L 잭슨)의 이야기다. 자신을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라고 믿는 글래스는 슈퍼히어로란 애초부터 없다고 말하는 엘리 스테이플 박사(사라 폴슨)에 대항해 계략을 짠다.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코믹스 속 영웅과 악당의 탄생 공식을 영리하게 대사로 활용하며 이들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자각하는 과정을 그린다.


하지만 슈퍼히어로 영화를 새롭게 재해석하겠다는 감독의 욕심이 과했던 탓일까. '글래스'에는 무리한 설정이 곳곳에 보인다. 이는 신선한 캐릭터를 창조한 기존의 성취를 갉아먹을 만큼 치명적인 결점이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나친 스톡홀름 신드롬


피해자가 범인에게 감화되는 심리 현상을 뜻하는 스톡홀름 신드롬은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발생한 은행 강도 사건 당시 인질들이 범인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데서 비롯된 용어다.


그동안 많은 영화들이 스톡홀름 신드롬을 플롯으로 소화해 왔다. '미녀와 야수' '킹콩' '오페라의 유령' 같은 고전은 워낙 널리 알려져 있어서 눈치채기 힘들지만, '섬씽 와일드' '나쁜 남자' '완전한 사육' '베를린 신드롬'처럼 아예 이를 이용해 자극적으로 폭력을 전시한 영화도 있다.


"누나가 왜 여기까지 왔어?"


인질이 납치범의 감정에 동화되는 과정은 드라마틱한 플롯으로 기능해 어떤 영화에선 그것이 비정상적인 범죄인 줄도 모른 채 소비되곤 한다. 하지만 스톡홀름 신드롬은 폭력의 정당화로 연결되는 만큼 영화 속에 이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비판이 자주 제기돼 왔다.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23 아이덴티티'에서 스톡홀름 신드롬의 경계를 넘나든 데 이어 속편인 '글래스'에선 아예 작정하고 스톡홀름 신드롬을 이용하고 있다. '23 아이덴티티'에서 납치 피해자였던 케이시(안야 테일러 조이)는 '글래스'에선 납치범인 케빈에게 아예 '스파이더맨'의 여자친구 그웬 스테이시와 비슷한 역할을 자처한다. 어릴 적 가족에게 버림받아 동질감을 느낀다는 설정이지만 피해자가 범인을 도우려 제발로 찾아가기 위해선 더 설득력 있는 이유가 마련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신승리 끝판왕 엔딩


'글래스'는 세 캐릭터들의 심리를 차곡차곡 쌓아나가다가 후반부에 반전을 거듭하며 감정을 터뜨리는 영화다. 데이비드, 케빈, 글래스의 숨겨진 의도와 의외의 관계가 밝혀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런데 후반부엔 지나치게 억지스러운 반전이 공든탑을 무너뜨린다. 엘리 박사가 갑자기 개입해 모든 캐릭터를 정리해 버리더니 나중엔 이 모두가 글래스의 자살 미션이었다며 정신승리에 가까운 해피엔딩을 향해 나아간다.


엘리 박사 "제가 다 정리해 드릴게요."


엘리의 개입은 마치 축구장에서 한창 빅매치가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경기를 관리해야 할 심판이 선수들을 퇴장시킨 꼴이어서 황망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영화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여기서 한 번 더 비틀어서 캐릭터들이 초능력을 발휘하는 영상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송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미스터 글래스의 자살 미션이었다고 엘리의 입을 빌어 설명한다.


이 마지막 장면은 어쩌면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엔딩이었다. '베테랑' '부당거래' '내부자들' '더 킹' 등 한국영화에서 이미 여러 번 시도된 데우스 엑스 마키나(만능 해결사) 같은 이런 엔딩은 영화가 해야 할 판단을 대중에게 유보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괴물이 된 케빈의 차력쇼.


세상에 어떤 슈퍼히어로가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자신이 능력자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자살하는가. 손으로 차를 들어올리고 네 발로 뛰고 철강을 휘는 진기명기 차력 쇼를 보여주는 영상이 슈퍼히어로의 증명이라는 것도 실소를 자아낸다. 그 영상이 불러일으킬 효과라고는 기껏해야 '버드박스 챌린지'처럼 '슈퍼히어로 챌린지' 정도 아닐까.


영화 '글래스'는 마블과 DC로 양분된 슈퍼히어로 월드의 새로운 대안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하게 했지만 아쉽게도 거기까지였다. 데이비드, 케빈, 글래스 캐릭터는 새로웠으나 스토리 전개에선 신선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이스트레일 177호' 열차처럼 폭발해버렸다.


글래스 ★★☆

신비로운 캐릭터를 살리지 못한 처참한 엔딩.



*매일경제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http://premium.mk.co.kr/view.php?no=24653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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