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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6년 프랑스의 니세포르 니엡스가 카메라 옵스큐라로 최초의 사진을 촬영한 이래 약 200년 간 사진은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될 기술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역사를 기록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는데 있어 사진은 최고의 효율성을 갖췄습니다.


세상을 바꾼 사진은 항상 역사의 현장에서 나옵니다. 생생한 사진은 현장에서 피사체와 가까이 있을 때에만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어떤 일이 벌어질 때까지 오랫동안 기다리고,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려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진 한 장은 여론을 형성하고 정책을 만들고 결국 역사의 물줄기를 바꿉니다.


1863년부터 현재까지 역사의 현장을 찍은 사진 50장을 모아봤습니다. 시대별로 나눠 5부작으로 게재합니다. 유튜브 영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꾼 사진 50장 Part 1/5 : 1863~1948



1863년 미국 게티스버그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게티스버그 전투가 막 끝난 7월 5일 티모시 오설리반이 촬영한 죽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게티스버그 전투는 남부연합군에 밀리던 북군이 전세를 역전시킨 결정적 전투로 7월 1일부터 3일간 벌어졌습니다. 남부연합군 로버트 리 장군은 남부연합을 승인받기 위해 7만5000명의 대군을 이끌고 북부로 진격했지만, 북군의 새로운 사령관 조지 미드 장군은 결사항전의 의지로 맞섰습니다. 결국 양측 모두 각각 2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끝에 리 장군이 버지니아로 퇴각하면서 북군 승리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863년 링컨 대통령은 이곳을 국립묘지로 지정했습니다.




1888년 네덜란드 로에몬드


19세기에는 카톨릭 신도와 개신교도가 함께 묻힐 수 없었습니다. 1880년 네덜란드 기병대 대령이었던 남편이 죽고 1888년 아내가 사망했을 때 사람들은 두 사람을 담을 사이에 두고 묻어 손을 맞잡는 비석을 세워주었습니다. 이 사진은 로에몬드 개신교 묘지에서 본 모습입니다.



1907년 호주


1907년 호주 수영선수이자 배우이자 극작가인 아네트 켈러맨이 몸에 꼭 맞는 수영복을 입고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한때 외설죄로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켈러맨은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최초의 여성입니다. 그전까지 여자들은 판타롱 바지 형태의 수영복을 입었습니다. 그녀가 입은 원피스 수영복이 큰 인기를 끌면서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 수영복 브랜드를 갖게 되었습니다.



1936년 스페인


1936년 9월 5일 스페인 내전 중 한 무정부주의자 민병대원이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지고 있습니다. 매그넘의 로버트 카파가 죽음의 순간을 포착해낸 놀라운 사진으로 칭송받던 이 작품은 그러나 이후 조작설에 휘말렸습니다.


로버트 카파는 이 사진을 세로 무리아노 전장에서 페데리코 보렐 가르시아를 찍은 것이라고 말했지만, 2009년 바스코 대학 호세 마누엘 수스페레기 교수는 '사진의 그림자들'이라는 책에서 이 사진은 실제 전장에서 50킬로미터 떨어진 에스페호에서 찍힌 것으로 보인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배경이 그곳과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또 당시 민란군은 기관총에 의해 죽었지 사진에서처럼 스나이퍼에 의해 암살당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이 사진의 주인공이 민병대원 페데리코 보렐 가르시아가 아니라는 다른 전문가의 주장까지 나왔습니다. 스페인 내전을 상징하는 사진 중 하나지만 어쩌면 이 사진은 연출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1937년 미국 뉴저지


1937년 5월 6일 경식 비행선 힌덴부르크 LZ 129호가 미국 뉴저지 맨체스터에서 불이 붙은 채 추락하고 있습니다. 이 사고로 탑승객 97명 중 36명이 사망했습니다. 힌덴부르크호는 5월 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출발해 대서양을 건너 3일 뒤인 6일 오전 미국 뉴저지주 레이크허스트에 착륙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폭풍이 치면서 착륙이 연기됐고 기장은 목적지를 맨해튼섬으로 바꾸었습니다. 맨해튼으로 가던 중 오후 6시 22분 날씨가 좋아지자 기장은 다시 기수를 레이크허스트로 돌렸고 그곳에서 착륙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오후 7시 25분 가스가 누출되면서 대기방전으로 갑자기 기체에 불이 붙었고 그대로 추락해버렸습니다.


길이가 245m로 거대한 이 비행선의 최대 속도는 시속 135km입니다. 1936년 4월 독일의 프리드리히스하펜에서 최초로 비행에 성공한 이래 독일-미국 간 10회 정기 왕복비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힌덴부르크호의 원래 계획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에 참석하려는 승객을 태우고 독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티켓도 매진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참사로 경식 비행선은 더 이상 상업용으로 운행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1941년 벨라루스 민스크


1941년 8월 15일경 벨라루스 민스크의 시로카야거리 수용소에서 나찌 독일의 하인리히 히믈러가 철조망 사이로 영국 군인 호레이스 그리슬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러브스토리를 상징하는 사진입니다. 호레이스는 한 독일 여자와 사랑에 빠져 그녀를 만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강제수용소를 무려 200번이나 탈출했습니다. 그의 방 창문은 나무 막대기로 막혀 있었는데 그는 이 막대기를 없애고 철조망 아래로 기어가 연인 로사 라우히백을 만나고 왔습니다. 그는 나찌가 순찰을 돌기 직전에 감옥으로 돌아와 들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21살의 호레이스가 로사를 처음 만난 것은 실레시아의 노동수용소에서였습니다. 그녀는 영어 통역관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호레이스가 공장 감옥으로 이송되자 상심에 빠진 로사는 그를 쫓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출입이 허락되지 않았고 이에 호레이스가 그녀를 만나기 위해 감옥을 탈출합니다. 2년 반 동안 두 사람은 교회에서 몰래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아예 도망칠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어느 나라로 가도 나찌가 점령해 안전하지 않았기에 갈 곳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진은 히믈러가 감옥을 찾았을 때 독일 전쟁 특파원이 찍은 것으로 역사적인 장면으로 남았습니다.


1945년 5월 24일 전쟁이 끝난 후 호레이스는 잉글랜드로 돌아갔고 계속해서 로사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곧 편지가 끊겼는데 로사가 아이를 낳다가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호레이스는 로사의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 모른다고 밝혔습니다. 호레이스는 이후 다른 여자와 결혼해 스페인으로 이주했고 2010년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44년 프랑스 노르망디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일명 ‘해방의 날’, 한 군인이 노르망디 해안에서 작전 수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당시 30살이던 로버트 카파는 라이프 매거진 특파원으로 미군에 소속돼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면 중계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육해공 합동으로 진격함대를 조직해 벌인 제2차 세계대전 최대의 작전입니다. 영국해협의 날씨가 최악이어서 연합군은 작전을 24시간 연기해 6월 6일 개시했습니다. 연합군은 하룻새 셸부르항을 점령한 뒤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가 독일군을 독일 본토로 돌려보냈습니다. 프랑스는 파리를 시작으로 곧 전역이 해방되었습니다.




1944년 프랑스


1944년 프랑스는 나찌 독일에서 벗어나 해방되었습니다. 프랑스 전역에서 축제가 벌어졌지만 쇼킹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나찌에 부역했다고 여겨진 여자들을 끌어내 머리카락을 밀어버린 것입니다. 로버트 카파가 사진 찍어 유명해진 이 사건은 ‘어글리 카니발’이라고 불립니다.



1945년 폴란드 아우슈비츠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남겨진 손톱 자국입니다. 죽음을 앞둔 희생자들의 공포가 얼마나 끔찍했을지 짐작하게 합니다. 아우슈비츠는 1945년 1월 27일 소련 붉은 군대의 진입으로 해방되었습니다. 현재는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1948년 폴란드 바르샤바


1948년 12월 강제수용소에서 자란 폴란드 소녀 테레즈카에게 집을 그려보라고 말했더니 이런 그림을 그렸습니다. 어린 소녀에게 수용소가 얼마나 혼란스러운 공간이었을까요. 이 사진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정신불안 증세를 가진 아이들을 돌보는 데이비드 세이무어가 찍은 것입니다. 홀로코스트 당시 사망한 유태인 어린이는 대략 150만명 가량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살아남은 아이들에겐 부모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돌봐줄 새 가정을 찾아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5세 미만의 어린 아이들은 출신 지역은 물론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잉글랜드, 이스라엘, 미국, 캐나다, 호주, 남아공 등으로 입양 보내졌습니다.



>> 세상을 바꾼 사진 50장 Part 2/5

>> 세상을 바꾼 사진 50장 Part 3/5

>> 세상을 바꾼 사진 50장 Part 4/5

>> 세상을 바꾼 사진 50장 Part 5/5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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