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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그 라르손의 밀리언셀러 소설 [밀레니엄]의 첫번째 편을 영화화 한 이 작품의 원제는 소설의 원제처럼 <용 문신을 한 소녀>다. 하지만 한국에서 영화의 제목은 한국판 소설의 제목을 빌려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하 <밀레니엄>)이 되었다.


소설의 원작자인 스티그 라르손은 [밀레니엄]의 주인공 미카엘처럼 그 자신이 [엑스포]라는 잡지의 탐사보도 기자였는데, 2004년 이 작품을 끝내자마자 작업실에서 심장마비로 급사했다. 그래서 이 책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어쩌면 그가 갑자기 죽는 바람에 책이 더 유명해진 것일 지도 모르겠지만... [밀레니엄] 3부작이 스웨덴에서 처음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2009년이었고, 이어 2011년 소재 고갈에 허덕이는 헐리우드에서 데이빗 핀처를 만나 또다시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밀레니엄> 스웨덴판 vs 미국판


스웨덴 영화가 미국에서 리메이크된 사례는 최근에도 있었다. 바로 <렛 미 인>이다. 스웨덴 특유의 눈보라 속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미국인들에게 신비롭게 다가오는 모양이다. <렛 미 인>처럼 스웨덴판 <밀레니엄>도 눈덮인 스웨덴의 황량한 모습이 기억에 오래 남는 영화다. 하지만 리메이크 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두 영화가 많이 다르다. 미국판 <렛 미 인>이 배경을 미국으로 옮겨 눈의 신비로움을 탈색시켰다면 미국판 <밀레니엄>은 스웨덴이라는 무대를 그대로 가지고 가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유지한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배경인 스웨덴을 지웠다면 신선한 느낌은 많이 사라졌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도 미국판 <렛 미 인>은 여주인공인 클로이 그레이스 모리츠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반면 미국판 <밀레니엄>은 데이빗 핀처라는 뛰어난 감독을 만나 스웨덴판보다 더 세심하고 밀도 깊은 영화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지난 1월 거의 동시에 스웨덴판과 미국판이 개봉했다. 미국판 개봉 일정이 잡히자 스웨덴판의 수입사에서 그보다 한 주 빨리 기습적으로 소규모 개봉을 해버린 것이다. 덕분에 두 영화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보고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다.


밀리언셀러인 원작을 영화화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용을 알고 있기에 그들마저 만족시킬 만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 스웨덴판과 미국판은 같은 원작을 놓고 비슷하지만 약간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두 영화를 비교해보자.



스토리 (스포일러 포함)


조금 놀라운 것은 같은 원작의 두 영화가 내용에 있어서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스웨덴판은 보다 더 원작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는 반면 미국판은 군더더기를 없애고 좀더 깔끔하게 전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카엘과 리스베트가 만나는 장면을 보면, 스웨덴판에서는 리스베트가 해킹을 통해 미카엘의 컴퓨터를 계속해서 모니터링한다. 그래서 암호를 풀지 못해 고민하는 미카엘을 리스베스가 해킹이 발각될 위험을 무릎쓰고 도와준다. 단순 호기심으로밖에 설명이 안되는 이 장면이 미국판에서는 사라졌다. 그대신 암호를 푸는 단서는 딸이 제공하고, 리스베트를 엄청난 능력자로 묘사해 모니터링해온 자료 없이도 한 번만 훑어보고도 알아내는 천재처럼 그렸다. 스웨덴판이 리스베트의 동기를 잘 설명하지 못한다면 미국판은 리스베트를 지나치게 영웅화하고 있다.


후반부에서 범인으로 밝혀진 마르틴의 지하 작업실도 다르다. 스웨덴판에서 등장했던 수많은 여자들의 시신은 미국판에서 사라졌다. 비위가 약한 관객들을 위한 배려였을까. 사실 스웨덴판에서는 그 장면이 약간 뜬금없이 등장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전혀 언급이 없다가 갑자기 등장하는 많은 시신들이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미국판에서는 그런 장면을 삭제하고 단지 대사로만 처리함으로써 좀더 주인공과 악당의 대결에 집중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밀레니엄> 스웨덴판


<밀레니엄> 미국판


가장 큰 차이점은 아마도 사라졌던 해리엇의 존재일 것이다. 스웨덴판에서는 호주에 살고 있는 전혀 다른 여자가 해리엇으로 밝혀지지만, 미국판에서는 아니타라는 가명으로 런던에서 살아온 것으로 나타난다. 스웨덴판에서 갑자기 우편물을 역추적해 발견해내는 방식이 허탈했는데, 미국판에서는 좀더 합리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있다. 기존의 헐리우드 추리물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아마도 아니타가 해리엇이 되는 편이 좀더 논리적으로 보일 것이다.


에필로그 장면도 다르다. 스웨덴판에서는 직접 해결사가 되어 부패한 기업가를 처단하는 리스베트를 짧게 보여주는 반면 미국판에서는 그 장면을 길고 복잡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리스베트를 더 멋진 영웅처럼 보이게 만든다. 가짜여권 만들고 해외여행하면서 금융시스템을 교란하는 그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하고 있다. 미카엘에게 부패 기업가에 대한 자료를 주는 것도 스웨덴판에서는 헨리크 방에르이지만 미국판에서는 리스베트다. 그 덕분에 미국판을 보고 나면 리스베트라는 캐릭터에 대한 인상이 슈퍼히어로처럼 아주 강하게 남는다. 스웨덴판의 리스베트도 강렬한 인상이지만 미국판의 리스베트는 그보다 더 매력적이다.


<밀레니엄> 스웨덴판


<밀레니엄> 미국판


이밖에 아주 의도적으로 미국판이 스웨덴판과 다른 점이 있다. 바로 나찌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부분이다. 스웨덴판은 이 부분을 원작에 충실하게 담아냈다. 그래서 관객은 방에르 가문의 누가 나찌였고 해리엇의 실종사건이 나찌와 어떤 관계인지를 궁금해하며 보게 된다. 하지만 미국판에선 나찌에 대해 적당히 설명하고 넘어간다.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큰 차이다. 결과적으로 스웨덴판에서는 살인범이 시대적 상황과 연결되어 해석되고, 미국판에서는 싸이코패스 정도로만 이해된다.


마지막으로 만듦새의 디테일한 면에서 스웨덴판과 미국판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한마디로 스웨덴판은 굵직한 줄기들에서 원작을 충실하게 옮기는데 치중하느라 짜임새가 많이 약하다. 스웨덴판을 본 뒤 미국판을 보고 나면 영화적 구성이 훨씬 더 탄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 차이는 바로 디테일의 차이다. 예컨대 미카엘이 작업실에 누군가 침입했었다는 것을 눈치채는 장면을 보자. 스웨덴판에서는 "누가 들어왔던 것 같은데" 라는 대사로 끝이다. 하지만 미국판에서는 미리 길잃은 고양이를 등장시킨 뒤 어느날 그 고양이가 작업실로 들어온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미카엘을 보여준다. 직접적인 대사가 없이도 상황을 이해하게 하는 더 설득력 있는 방식이다.



사람들


스웨덴판의 감독은 <우리는 승리하리라>로 덴마크에서 스타 감독이 된 닐스 아르덴 오플레브, 미국판의 감독은 만드는 작품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데이빗 핀처다. 두 영화 각각의 장단점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데이빗 핀처의 영화가 더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핀처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들면서 어른들을 위한 <해리포터>를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영화를 보고나면 그 말에 수긍이 간다. 얼른 2,3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밀레니엄> 스웨덴판


<밀레니엄> 미국판


핀처의 의도대로 시리즈물로 기획된 영화답게 영화는 마치 007 영화처럼 독특한 오프닝으로 시작한다. 이 강렬한 시퀀스는 팀 밀러가 이끄는 Blur Studio에서 따로 작업한 결과물인데, 레드 제플린의 'Imigrant Song'을 트렌트 레즈너의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예예예스의 한국계 보컬 캐런 오가 노래했다. 마치 리스베트의 무의식을 보는 듯 끈적거리는 검은색 액체가 사람, 컴퓨터, 자동차 위로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이 장면은 영화와는 관계가 없지만 오프닝 시퀀스의 미학 그 자체로서 감독의 전작 <패닉 룸>처럼 평가받을 만하다.


화면의 질에서 두 영화는 다르다. 세트의 크기나 건축물의 규모도 다르다. 물론 그것은 제작비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스웨덴판의 제작비는 1300만 달러인 반면, 미국판은 9000만 달러다. 하지만 질적인 차이가 제작비처럼 7배 규모의 차이는 아니다. 스웨덴판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 북유럽 특유의 황량하고 신비로운 이미지가 더 강해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시킨다.


미카엘을 연기한 두 배우. 미카엘 니키비스트와 다니엘 크레이그. 원작에서는 여자를 밝히는 남자로 묘사되는 미카엘. 하지만 스웨덴판에서는 여자보다는 정의가 우선인 기자처럼 보이고 미국판에서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이미지 때문인지 좀더 섹시하게 보인다. 아마도 선입관을 제외하고 보기에 스웨덴판에서 연기한 미카엘 니키비스트가 원작에 좀더 가까워보인다.


<밀레니엄> 스웨덴판


<밀레니엄> 미국판


그리고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인 리스베트.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뒤 소년원에서 나와 정신병력으로 보호감찰을 받게 된 사연 많은 여자. 사회 부적응자이지만 그녀는 두뇌회전이 빠르고 컴퓨터 해킹 실력은 최고 수준급이며 누구를 만나도 결코 쫄지 않는다. 심지어 강간을 당해도 다음날 다시 찾아가 그 남자에게 똑같이 복수하고는 배에 "나는 강간범 돼지새끼"라는 문신을 해버릴 정도다. 코와 입과 귀에 피어싱을 하고 팔과 등에 용 문신을 하고 있는 이 강인한 여성을 연기한 배우는 누미 라파스와 루니 마라다.



애초에 스웨덴판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 누미 라파스의 연기에 대해 칭찬이 자자했다. 리스베트를 연기할 배우는 그녀 외에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데이빗 핀처에게도 누미 라파스가 리스베트를 맡아야 한다는 팬들의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미국판이 만들어진 지금, 개인적으로 루니 마라가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데이빗 핀처의 연출의도 때문인지 루니 마라의 리스베트가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마크 주커버그의 전 여자친구 에리카 역을 맡았던 배우가 이 영화를 위해 머리를 짧게 깎고 온몸에 피어싱을 하고 홀로 스웨덴으로 가서 리스베트인 것처럼 살았다. 그래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미카엘이 예전 여자친구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미련없이 미카엘을 위해 준비해온 옷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가는 그녀를 보라. 그토록 강해 보였던 그녀의 눈동자에 살짝 불안한 떨림이 느껴지는 그 짧은 순간에 외롭게 살아왔던 리스베트의 삶이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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