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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을 롱패딩으로 김밥처럼 싸매고 다녔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벚꽃 흩날리는 봄이 찾아왔습니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봄이면 극장에는 어김없이 로맨스 영화들이 관객을 유혹합니다. 솔솔 부는 봄바람 만큼 우리 심장을 요동치게 해줄 로맨스 영화 세 편을 준비했습니다. 한 편씩 만나볼까요?



<바람의 색> 마술같은 운명적 만남


‘클래식’ ‘엽기적인 그녀’의 곽재용 감독이 일본에서 만든 신작 ‘바람의 색’의 주제는 운명적인 사랑입니다.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도플갱어 류와 료의 이야기가 마술을 소재로 펼쳐집니다.


천재 마술사 류(후루카와 유우키)는 세계 최초로 바닷속에서 탈출하는 마술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예상 못한 사고로 인해 빠져나오지 못하고 연인 아야(후지이 타케미)는 슬픔에 잠깁니다.


료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마술사가 바닷속에서 실종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홋카이도를 찾아갔다가 헤어진 연인 유리를 꼭 닮은 아야를 만납니다. 아야는 료를 류로 착각하고, 료는 아야에게서 유리를 떠올리면서 비슷한 아픔을 가진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이 시작됩니다.



료 역시 마술에 재능을 발견하고 마술사가 되어 류가 실패했던 바닷속 탈출 마술을 재현하는데 마지막 장면에선 이 우연적인 만남이 벌어진 놀라운 비밀이 밝혀집니다.


눈의 도시 삿포로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영상이 시선을 잡아끄는 영화입니다. 일본 드라마 ‘장난스런 키스’로 대세남이 된 후루카와 유우키와 1만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에서 선발된 후지이 타케미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지금까지 도플갱어는 주로 공포영화의 소재였는데 이번엔 로맨스 영화에 등장한다는 게 특이하죠. 운명적 사랑을 표현할 때 오글거리는 장면이 많으니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보시기 전에 각오(?)를 단단히 하는 게 좋겠습니다.



<레이디버드> 17세 소녀의 어설픈 연애


갈팡질팡 사춘기 소녀의 성장담을 그린 영화 ‘레이디버드’에는 17세 소녀의 첫사랑이 등장합니다. 남자에게 첫 눈에 반해 대쉬하고 또 제멋대로 상상하고 행동하는 크리스틴(시얼샤 로넌)은 두 번의 어설픈 연애를 거치면서 성숙한 숙녀가 되어 갑니다.


샌프란시스코 옆 작은 마을 새크라멘토에 사는 크리스틴은 주위 모든 것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엄마는 귀찮은 잔소리를 늘어놓고 카톨릭 학교는 자신을 옥죄는 것만 같습니다. 절친 줄리(비니 펠드스타인)만이 그녀와 고민을 나누지만 줄리는 자존감이 낮은 친구여서 고민을 들어줘야 할 때도 많습니다. 크리스틴의 꿈은 어서 빨리 졸업해 이 마을을 떠나 뉴욕에 있는 대학에 가는 것입니다.


‘레이디버드’는 크리스틴이 스스로 지은 자신의 이름입니다. 그녀는 친구, 선생님, 엄마에게 자신을 레이디버드라고 불러달라고 말합니다. 친구들은 “무슨 이름이 그래?”라고 되묻지만 크리스틴은 그 이름이 꽤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새처럼 가족과 시골마을로부터 훨훨 날아가 어서 빨리 ‘레이디’가 되고 싶은 바람을 담은 이름이 아닐까 싶습니다.


엄마 차를 타고 가는 길에 이름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는 딸을 이해하지 못하고 화를 냅니다. 말다툼을 시작한 김에 엄마는 그동안 쌓아놓고 있던 딸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고 그러자 크리스틴은 달리는 차의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가 버립니다. 엄마는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지르죠. 이처럼 크리스틴은 누구도 제어할 수 없고 감정 기복이 심한 사춘기 소녀입니다.



크리스틴은 두 번의 연애를 합니다. 첫 번째 남자는 듬직한 대니(루카스 헤지스), 두 번째 남자는 잘 생긴 카일(티모시 샬라메)입니다. 처음 대니에게 꽂힌 크리스틴은 그에게 티나게 접근합니다. 리더십이 강한 대니는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소년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크리스틴을 눈여겨 보다가 점점 가까워집니다. 하지만 대니와의 관계는 결정적인 부분에서 틀어집니다. 크리스틴은 첫 경험을 대니와 하고 싶었는데 대니는 성적인 부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겁니다.


대니와 헤어진 뒤 크리스틴은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에서 손님으로 온 카일을 만납니다. 퇴폐미 가득한 카일에게 첫 눈에 반한 크리스틴은 이번에야말로 첫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풉니다. 그녀의 솔직하고 거침없지만 어딘가 어설픈 행동은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냅니다.


두 번의 ‘웃픈’ 연애 이후 시간이 지나 크리스틴은 드디어 대학생이 되어 뉴욕으로 떠납니다. 하지만 뉴욕에서 뒤늦게 알게 됩니다. 어린 시절 자신이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새크라멘토가 얼마나 소중한 곳이었는지를요. 그녀는 새로 사귄 친구에게 자신을 레이디버드가 아닌 크리스틴이라고 소개합니다. ‘레이디버드’는 그녀에게 성장통의 또다른 이름이었던 셈입니다.


'인디영화계의 여신'이라 불린 그레타 거윅 감독의 데뷔작인 '레이디버드'는 유수의 영화제에서 100개 이상의 트로피를 거머쥐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입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반항기 넘치는 크리스틴은 완벽하지 않아서 더 사랑스런 캐릭터입니다. 우리 모두 그런 사춘기 시절을 지나왔잖아요. 끊임없이 방황하다가 뒤늦게 나에게 소중한 것을 깨닫는 경험 말이죠. 영화 속에서 크리스틴의 마음을 뒤흔드는 에피소드들은 어떨 땐 너무 사소해서 풋풋한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사춘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면 이 영화를 선택해 보세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장마와 함께 돌아온 사랑


손예진, 소지섭 주연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여름날 장마와 함께 찾아온 짧고 행복한 만남과 가슴 아픈 이별을 그린 멜로드라마입니다. 이미 25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마음 따뜻해지는 이 영화와 만났습니다.


“걱정하지 마. 우린 잘 할 거야. 그렇게 정해져 있어.”


영화 속 명대사 중 하나입니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내려온 수아(손예진)는 영문을 모르고 있는 우진(소지섭)을 끌어안고 이렇게 말하죠. 두 사람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영화는 수아가 아들 지호를 위해 쓴 펭귄과 장마에 관한 동화로 시작합니다. 동화 속에서 죽은 엄마 펭귄은 장마가 시작되면 아들과 남편을 만나기 위해 땅으로 내려옵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엄마 펭귄은 장마가 끝나면 다시 하늘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호는 엄마가 쓴 이 동화의 내용이 실제 일어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동화에서처럼 장마가 시작되면 작년에 죽은 엄마가 돌아오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장마가 시작된 첫 날, 수아와 똑같은 외모의 여자가 철길 위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정말 엄마가 하늘에서 내려온 걸까요? 우진과 지호는 그녀를 집으로 데려오고 이제 세 사람이 추억을 확인하는 동거생활이 시작됩니다.



우진과 수아가 처음 만난 고등학생 시절의 서먹함, 실수 투성이지만 귀여웠던 첫 데이트, 오해로 인한 이별 이후 다시 만난 사연 등 미소와 눈물이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에피소드들이 스크린에 하나씩 펼쳐집니다. 우진과 수아 사이에서 감초 역할을 하는 우진의 친구 홍구(고창석)가 주는 잔재미도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지금 한 사람을 향한 헌신적인 사랑을 꿈꾸고 있다면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주는 감동을 다시 한 번 느껴보시기를 권합니다.



‘바람의 색’ ‘레이디버드’ ‘지금 만나러 갑니다’ 등 세 편의 영화는 분위기도 다르고, 담고 있는 사랑의 방식도 다릅니다. 로맨스가 필요한 계절, 벚꽃이 다 지기 전에 여러분의 사랑의 색깔에 맞는 영화를 선택해 보세요.


(SK하이닉스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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