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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출간된 이 책을 뒤늦게 읽게된 것은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이후 부쩍 늘어난 조선시대 왕과 신하들의 관계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조선시대는 왕의 나라가 아니라 신하의 나라였다"는 문장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동안 왕의 한 마디에 신하들은 그저 무릎을 꿇고 조아리며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만을 외치는 사극에 익숙해진나머지 왕들이 신하의 눈치를 보며 살았다는 말들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이덕일이라는 사람에 관심을 갖게 됐다.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재야 역사학자인 그는 기존의 주류 사관을 뒤집는 역사책들을 잇달아 발표했고 큰 반향을 얻었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는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책 중 한 권이다. 조선왕조실록에 3천번 이상 언급되고 있고 사후에는 맹자 주자와 같은 맥락에서 송자라고까지 불리는 주자학의 대가 송시열. 임진왜란이 막 지나간 선조대에 태어나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서인의 영수가 되어 이후 효종, 현종 그리고 숙종에 이르기까지 네 명의 왕을 쥐락펴락한 대부로서 송시열은 17세기 내내 이 땅을 지배했던 가장 영향력 있던 사회지도층의 한 사람이었다. 이 책은 그동안 노론의 영수이자 성리학의 대부로 포장되어 알려졌던 그의 뒷모습을 까발리고 그가 시대에 역행한 기득권 수구세력의 보스였음을 각종 사료를 들어 파헤치고 있다. 이해하기 쉽고 흥미진진한 필체로 인해 마치 추리소설을 읽듯이 재미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송시열은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언급된 사대부의 나라를 기어코 세우고 만 밀본의 본원 같은 이미지라고 할까. 임진왜란 이후 신분질서가 와해되려는 조짐이 보이자 양반들의 기득권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성리학을 나라의 근본으로 세운 송시열. 다른 어떤 학문도 거부하고 오로지 주자만을 좇은 그는 서인의 뿌리인 율곡 보다도 주자를 더 맹신했고 죽을 때까지 그것을 신념으로 삼았다. 심지어 주자를 다르게 해석하는 것도 용서하지 않았다. 명과 청나라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치던 광해군을 심판하기 위해 인조반정을 일으킨 것도 주자의 나라를 계승한 명에 대한 의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결국 이 의리는 현종대에 북벌론으로까지 이어지지만 송시열은 정작 북벌의 강한 의지를 드러낸 현종의 제안을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현종과 효종의 의문스런 죽음들 배후에 역시 왕들과 반목하던 서인들이 있다.

이 책은 또 예송논쟁이 갖는 중요성과 시대적 의미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그동안 막연히 1년복이냐 3년복이냐는 장례 문제로 인한 붕당정치의 폐혜로만 알고 있었던 두 차례 예송논쟁. 하지만 인조의 어린 후궁이 대왕대비가 되어 현종과 며느리의 죽음 때 어떤 옷을 입을 것이냐는 당시 왕조의 정통성을 인정할 것이냐 아니냐라는 데에 그 폭발성이 있었다. 인조의 세자였던 소현세자가 인조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한 이후 소현세자의 아들이 아닌 동생이 왕위를 계승한 것을 신하들이 인정하느냐 마느냐. 이것은 조선 왕실보다 신하들이 힘이 더 세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송시열을 비롯한 서인들은 사실상 왕을 서자 취급했고 자신들과 같은 사대부의 한 사람으로 보았다. 이는 당시로서는 대역죄에 해당하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승승장구했다. 이런 서인들을 탐탁치 않게 여기던 현종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죽고 숙종이 어린 나이에 즉위한다.

그동안 숙종은 드라마에서 장희빈과 인현왕후, 그리고 동이 세 여자를 사랑하는 우유부단한 이미지로 많이 그려졌지만 이 책에서 엿보게된 숙종의 성격은 굉장히 단호하고 또 추진력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 번 결정한 것을 밀어부쳤으며 어린 나이에 즉위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의 생리를 잘 알 정도로 영리했다. 남인과 서인의 대결구도를 오히려 이용해 왕권을 흔들리지 않게 유지했다. 집권 초에는 예송논쟁에서 왕을 서자취급한 서인을 문제 삼아 송시열, 송준길 등 서인의 영수를 귀양보내고 윤휴와 허적 같은 남인을 중용했다. 그러다가 허적의 권세가 심해지자 남인을 몰아내고 서인이 정권을 잡는 경신환국, 남인과 연결된 장희빈에게 얻은 아들의 세자 책봉을 반대한 서인을 버리고 다시 남인을 중용한 기사환국 등 정당교체를 통해 숙종은 오랜 기간 왕위에 올라있을 수 있었다. 몇 차례 환국이 벌어지는 동안 정치보복이 횡행했고 숙종은 이를 부추기기까지 했다. 결국 누가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남인과 서인들 사이에피의 보복이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윤휴, 허적을 비롯해 송시열까지 모두 정치보복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송시열은 80이 넘은 나이에 사약을 받았으나 그를 추종하는 세력은 나중에 그를 오히려 북벌론을 주장한 성리학의 대가로 추앙한다.

그동안 쓸데없는 논쟁으로만 치부했던 예송논쟁의 휘발성을 보여줌으로써 이 책의 저자는 송시열이 얼마나 역사를 후퇴시킨 장본인인지 보여주고 있다. 대동법이 시행되고 이모작이 도입되면서 상업이 태동하고 
상평통보가 처음 발행되면서 돈으로 양반을 사고 팔 수 있게 된 17세기 조선에서 정치를 장악하고 있던 송시열을 비롯한 서인들은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신분질서에 집착하는 주자학이나 설파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서인 그중에서 송시열의 노론은 이후 조선이 망할 때까지 정권을 내주지 않았고 덕분에 노론의 태두인 송시열은 송자에 버금가는 대가의 반열에 올랐지만 조선이라는 나라는 시대에 뒤처지면서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노론을 숭상하는 정파는 이후로도 한국의 주류 학계로 이어졌고 정치에서도 아직까지도 주류 기득권 세력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것은 참 받아들이기 힘든 슬픈 현실이다. 21세기 한국사회에서 송시열의 뿌리는 깊고 넓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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