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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의 후손이자 아마존 전사인 원더우먼이 돌아왔다. 1941년 만화에서 첫 등장한 이후 76년 만에 탄생한 첫 영화로 공개되자마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94%, IMDB 평점 8.5로 압도적이다. <다크나이트> 이후 최고의 DC 작품이라는 극찬과 함께 화려하고 우아한 액션, 흥미진진한 스토리, 남녀차별을 꼬집는 사이다 발언 등 재미와 의미를 두루 갖췄다는 평가다. 한국에서도 개봉 첫 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흥행을 예고했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수어사이드 스쿼드> 등 연이은 실패로 위기에 처한 DCEU(디씨 익스텐디드 유니버스)를 살릴 기대주로 주목받고 있다. <원더우먼>에서 눈여겨 볼 세 가지 포인트를 살펴보자.
#1 페미니스트 슈퍼히어로
"남자는 아기를 낳으려면 필요하지만 쾌락을 위해서는 필요없대요."
여성들만 사는 아마존 데미스키라 왕국에 불시착한 스티브(크리스 파인)에게 원더우먼 다이애나(갤 가돗)가 하는 말이다. 생전 처음 보는 남자에게 호기심을 보이던 다이애나는 곧 성적인 호기심을 거두고 임무에 집중한다. 이 대사에는 노림수가 있다. 1970년대 린다 카터가 주연한 TV시리즈가 핀업걸 같은 여성의 상품화로 줄곧 비판받았던 것과 달리 당초 페미니즘 캐릭터로서 정체성을 회복할 것이라는 선언이다.
원더우먼을 창조한 윌리엄 몰튼 마스턴은 남자 페미니스트였다. 그는 근육질 남성들이 가득한 세상 대신 여성이 지배하는 세상을 꿈꿨다. 당대의 페미니스트들과 두루 교류했던 그는 원더우먼을 그릴 때 전설적 여성 운동가들을 참조했다. 산아제한 운동가 마가렛 생어, 여성 참정권을 위해 싸운 에멀린 팽크허스트, 최저 임금 운동가 플로렌스 켈리, 그리고 마스턴의 아내이자 여성 운동가 세이디 할러웨이 등이 원더우먼 캐릭터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영화 <원더우먼>은 여성 운동가로서 원더우먼의 이미지를 곳곳에 활용한다. 영화는 당초 원작 만화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던 것과 달리 1차 세계대전으로 바꾸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그때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이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여성 참정권 투쟁 역사는 영화 <서프러제트>에 자세히 묘사된다.) 다이애나는 비서일만 하는 여성을 아마존에선 노예라 부른다며 사이다 발언을 날리고, 여성에게 출입 금지된 군수뇌부 회의에 몰래 들어가 전쟁을 회피하는 겁쟁이들이라고 소리치는 등 지리멸렬한 남자들의 세계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2 영화화 시도 21년만의 결실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젠 뭔가 해야겠죠."
원더우먼에 자극받아 전쟁에 나서는 스티브의 이 말은 76년만에 당도한 이 영화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사실 원더우먼의 영화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슈퍼맨, 배트맨만큼 유명한 슈퍼히어로지만 실사판으로 만들어지기까지 무려 2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첫 시도는 <배트맨> 3부작이 한창 인기를 끌던 1996년이었다. 코미디 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이반 라이트만 감독은 산드라 불록을 원더우먼으로 만들기 위해 시도하다 포기하고 프로젝트를 유명 제작자 조엘 실버에게 넘긴다. 그는 2001년 안젤리나 졸리, 비욘세, 메간 폭스, 엘리자 더쉬쿠, 캐서린 제타존스 등을 원더우먼 후보로 올리며 본격화하지만 문제는 각본이었다. 실버는 원더우먼이 등장하는 현대극을 원했으나 작가들은 원작에 충실하게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2005년 실버는 촉망받는 각본가 조스 훼던에게 아예 감독까지 맡겼지만 그는 스스로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를 완성하지 못하고 2007년 손을 뗀다.
이후 허공을 떠돌던 원더우먼 프로젝트는 마블 어벤져스에 맞서 저스티스 리그를 부활시키려는 DC의 기획 중 하나로 재가동됐다. 미국 첫 여성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그린 <몬스터>를 만든 여성 감독 패티 젠킨스가 합류하면서 급물살을 탄다.
원더우먼 역은 미스 이스라엘 출신 갤 가돗이 맡았다. 그는 2년간 군 복무한 뒤 로스쿨에서 법을 전공하다가 <분노의 질주>를 통해 할리우드 배우로 데뷔했는데 결혼해 두 딸을 낳아 키우고 있는 엄마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지덕체와 미모, 모성애까지 겸비해 이보다 더 적역인 원더우먼은 없어 보인다.
#3 원더우먼 더 비기닝
"넌 그들에게 과분해."
데미스키라 왕국의 여왕 히폴리타(코니 닐슨)는 인간을 구원하러 가겠다는 다이애나를 떠나보내며 이렇게 말한다. 원더우먼의 세계는 그리스 신화와 직접 연결돼 있다. 그는 여왕이 흙으로 빚어 만든 딸로 태어난다. 인간은 전쟁의 신 아레스의 지배를 받고 있어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떠나는 것은 스스로를 선의 수호자라고 여기는 원더우먼의 숙명이다.
<원더우먼>은 DC영화답게 캐릭터의 근원을 장중하게 파헤쳐 간다. <배트맨 비긴즈> <맨 오브 스틸>처럼 영화는 원더우먼의 시작을 이야기한다. 배트맨이 첨단무기를 갖춘 인간, 슈퍼맨이 외계인인데 반해 원더우먼은 반인반신이다.
다이애나는 아마존 섬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수천 년간 여성들만 살아온 이 섬은 마치 여성판 <300>처럼 전쟁을 대비한 훈련이 일상화되어 있는 곳이다. 총알을 튕겨내는 건틀렛, 부러지지 않는 검 갓킬러, 진실을 말하게 하는 올가미, 기관총도 막아내는 방패, 혜안을 갖게 해주는 왕관 등 원더우먼 특유의 스타일링 아이템도 하나씩 선보인다.
영화는 다이애나의 성장기로 시작해 그가 전쟁터로 모험을 떠나 아레스와 대결하는 영웅담의 서사를 충실하게 따라간다. 익숙한 스토리지만 캐릭터의 매력이 살아 있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원더우먼은 밝은 에너지와 엉뚱한 호기심, 과감한 결단력을 갖춘 인물이다. 남성 슈퍼히어로들이 지구를 지키다 지쳐서 존재 이유를 고민하고 자기들끼리 내전을 벌일 때 순수하게 선의 대변자를 자처하고, 사랑의 힘에서 인간의 가치를 발견하는 원더우먼의 등장은 청량 사이다 같은 매력을 선사한다.
슈퍼히어로 영화의 목적이 그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들어 계속해서 영화를 찾게하는 데 있다면 갤 가돗의 <원더우먼>은 기대 이상을 해낸다. 당장 올해 11월 개봉하는 <저스티스 리그>에선 배트맨, 슈퍼맨, 아쿠아맨, 플래시, 사이보그 등과 호흡을 맞추는 원더우먼을 다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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