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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은 패터슨에 사는 버스 기사다. 그는 틈틈이 시를 쓴다. 일상에 관해 쓴다. 네모난 성냥갑에 적힌 확성키 같은 글자에 대해 쓴다. 비밀 노트에 차곡차곡 적는다. 그는 운율이 정확히 맞는 것을 싫어한다. 글자들이 적당히 여유를 갖고 있는 그대로 보여지도록 쓴다.



그는 버스 운전을 하면서 많은 쌍둥이들을 만난다. 패터슨에 사는 패터슨 씨라는 존재 자체가 이미 무언가의 쌍둥이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가 흠모하는 시인은 패터슨에 살면서 [패터슨]이라는 서사시를 쓴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다. 이름 자체가 쌍둥이 같은 시인이다.


윌리엄스는 20세기 중반, 일상적인 영어로 일상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려 했던 미국 시인이다. “관념이 아닌 사물로 말하라(Say it, no ideas but in things)”가 그의 모토다. 그는 에즈라 파운드나 T. S. 엘리엇처럼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 모를, 사상으로 이루어진 시를 배격했다. 사물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만지고 그 감각으로 시를 썼다. 구어를 사용하여 우리 일상의 현실에서 솔직한 아름다움을 찾으려 했다.



(이 글에는 영화 후반부 사건이 포함돼 있습니다.)


패터슨은 윌리엄스를 따른다. 그는 자신의 집 지하실에 작은 서재를 마련해 놓고 글을 쓰는데 윌리엄스의 책은 자주 펼쳐봐서인지 닳아 있다. 윌리엄스는 시인이면서 의사였다. 패터슨은 시를 쓰면서 버스 운전을 한다. 그의 일과는 매우 단조롭다. 아침 6시가 조금 지나 일어나서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회사로 간다. 버스 운전을 하면서 승객의 이야기를 엿듣고, 폭포 앞 벤치에서 점심을 먹으며 시를 쓴다. 버스를 반납할 때 만나는 회사 직원은 불만스런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퇴근해서 집으로 오면 아내 로라(골쉬프테 파라하니)가 오늘 새롭게 만든 옷, 커튼, 벽지, 컵케이크 등을 자랑한다. 집에서 저녁을 먹은 뒤 그는 잉글리시 불독 마빈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가 바에서 맥주 한 잔을 하고 돌아온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영화는 패터슨의 시처럼, 혹은 윌리엄스의 시처럼 어떤 것도 과장하지 않는다. 거창한 은유나 깨달음의 순간은 없다. 패터슨은 그저 생각나는 대로 시를 조금씩 완성해갈 뿐이다. 시는 주로 사랑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 아내에게 바치는 것이다. 관념에 관해 쓰면서도 그는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패터슨의 시를 한 편 살펴보자.


불빛 Glow


당신보다 일찍 잠에서 깨면

당신은 돌아 누워

얼굴을 베개 쪽으로 돌리고

머리카락이 흩트러진다

당신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에 놀란다

행여 눈을 떠

햇빛이 당신을 놀래킬까 두렵다

하지만 햇빛이 사라지면

내 가슴과 머리가

당신을 위해 얼마나

무너져 내릴 것인가

태아처럼 안에 갇힌 목소리들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거란

두려움에 떤다

벽 속의 틈이 희미하게 빛난다

비가 우울하게 내린다

나는 신발 끈을 묶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커피를 올려놓는다



영화 <패터슨>에 교묘한 트릭이나 반전은 없다. 짐 자무쉬 영화가 늘 그렇듯 정서적으로 반응하면서 보는 영화다. 그동안 자무쉬 영화의 정서가 인생의 허무함, 사라지는 담배 연기 같은 고뇌에 관한 것이었다면 <패터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내면적으로 단련되어 가는 한 시인을 그린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을 강조한다. 패터슨의 아내는 원형을 비롯한 패턴 무늬에 꽂혀 있고, 패터슨은 매일 엇비슷한 일과를 반복하며, 불독 마빈은 바 앞의 똑같은 장소에 매달려 있고, 바에서 만난 커플은 만남과 결별을 반복한다. (아담 드라이버가 버스 드라이버인 패터슨을 연기하는데 이 말장난 역시 반복의 한 형태다.) 그렇게 영화는 월요일에서 시작해 화, 수, 목, 금, 토, 일요일을 거쳐 월요일 아침으로 이어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역시 여기서 끝이 아니라 같은 날들이 반복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런데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순간은 반복이 잠깐 깨질 때다. 특히 금요일과 토요일에 많은 사건이 벌어지는데 버스가 갑자기 멈춰 서고, 바에서 에버렛이 실연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 소동을 벌이는가 하면, 마빈이 패터슨의 노트를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마빈은 그 사건이 벌어지기 전 아침엔 패터슨을 끌고 기어이 다른 방향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반복이 깨질 때 꼭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패터슨은 우연히 10살난 꼬마 소녀를 만나는데 시를 쓰는 그녀는 패터슨에게 영감을 준다. 또 벤치에서 만난 한 일본인 남자는 빈 노트를 선물로 준다. 반복되는 일상과 갑작스런 변화의 순간 속에서 패터슨은 좌절하지 않고 다시 또 새로운 시를 쓴다.


영화 속에서 패터슨이 찬미하는 윌리엄스는 “상상력이란 지상의 모든 것을 소멸시키고 세계를 새롭게 만드는 능력”이라고 했다. “견고하고 독립적인 사물의 표면을 주의 깊게 인식”할 때 상상력은 힘을 얻는다. 패터슨은 그렇게 삶을 살아간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닮은 사람들, 닮은 무늬들, 어제와 같은 풍경 속에서 세상의 표면을 오랫동안 관찰해 이 세상과 또다른, 자신만의 독립된 세계를 만들어 간다. 시를 쓰는 사람들, 일상에서 창작을 길어 올리려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패터슨 ★★★★

성냥갑 속에 시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쓸 수 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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