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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화학을 가르치는 박효주(김하늘)는 기간제 교사다. 그는 임신하면 사퇴한다는 서약서까지 쓰면서 정교사가 하지 않는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언젠가 티오가 나면 정교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은 그러나 사범대를 갓졸업한 이사장 딸이 낙하산으로 내려오면서 물거품이 된다. 자기보다 젊고 어리고 돈 많은데다 부유한 약혼자까지 가진 추혜영(유인영)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인기를 독차지한다. 모든 것이 자신과 정반대인 혜영에게 자신의 것이었어야 할 정교사 자리를 빼앗긴 효주는 그러나 투정부릴 여유도 없이 빡빡한 삶에 치여 산다. 어느날 그는 문열린 체육관에서 혜영이 무용 특기생인 신재하(이원근)와 정사를 벌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질투와 분노가 복잡하게 얽힌 겉잡을 수 없는 감정에 휘말린다.



세상에는 아마 두 종류의 영화가 있을 것이다. 관객이 공감하며 자발적으로 따라가는 영화와 관객을 따라오게 만드는 영화. 전자는 캐릭터가 성장을 향해 가지만 후자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여교사>는 후자다. 효주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효주의 감정 변화에 크게 의존한다. 영화는 김하늘의 옆얼굴, 앞얼굴, 클로즈업 등 다각도 표정을 통해 효주의 감정을 표현한다. 그런데 효주의 감정은 들쑥날쑥 기복이 심하다. 그에 따라 효주의 행동을 받아들이는 관객 역시 감정의 진폭이 커진다.



<여교사>를 보며 떠오른 영화는 <10분>(2013)<피아니스트>(2001)다. 이용승 감독의 독립영화 <10분>은 꿈을 포기하면서까지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 낙하산 정규직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비정규직의 이야기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피아니스트>는 젊은 제자와 은밀하고 위험한 사랑에 빠진 중년 교수 이야기다. 두 영화처럼 <여교사>의 비정규직 교사 효주는 젊은 제자와 위험한 사랑에 빠진다.


비정규직의 불안과 위험한 사랑, 사실 이 두 가지는 양립하기 힘든 소재다. [차타레 부인의 사랑] 이래 위험한 사랑은 안정적인 중산층 여성의 일탈을 상징하는 소재였다. 이에 반해 비정규직과 빈부 격차는 심화되는 신자유주의의 우울한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안정(정규직)을 찾고 싶은 불안정(비정규직)과 불안정(금지된 사랑)해지고 싶은 안정(오래된 커플), 현실과 일탈, 리얼리티와 판타지 등 애초에 결이 다른 소재이기 때문인지 영화는 때로 겉돈다. 효주가 재하에게 끌리게 된 과정의 임팩트가 부족하고, 사랑의 진정성을 무시하며 놀려대는 혜영을 향해 분노하는 장면에선 효주가 그만큼 재하를 사랑했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사건들의 동기를 혜영에 대한 효주의 질투와 히스테리로만 받아들인다면 영화가 너무 빈곤해진다.



논란으로 남을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 보자. 아마도 감독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효주에게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했을 것이다. 이런 극단성은 때론 개연성을 해치지만 관객이 깜짝 놀라 영화 속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소격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에서 감독이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임상수 감독도 <하녀>(2010)에서 은이(전도연)가 몸을 던져 스스로 산화하게 함으로써 관객이 강렬한 메시지를 한 번 더 돌아보게 했었다.


<여교사>의 이 장면은 그러나 다음 엔딩 장면에서 효주가 태연하게 샌드위치를 먹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효주는 그날 자신의 행동은 모두 계획된 것이었다는 듯 태연하다. 하지만 관객인 우리는 알고 있다. 그 결정적 장면에서 효주의 행동은 갑작스럽게 끓어 오른 분노 때문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억지로 화해한 두 사람이 계속 만나는 한 언젠가 발생할 일이었을 수는 있지만 효주는 그런 사건을 의도해서 저지를 만큼 계획적인 악인은 아니다. 그래서 이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의 흐름은 깨진다. 효주가 원래 사이코패스는 아니었을까 의심하도록 만들기까지 한다.



영화는 이질적인 두 소재를 엮어 공감과 억지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꾸역꾸역 관객을 끌고 갔지만 결국 어정쩡한 상태에서 효주를 폭발시키고 말았다. 영화가 남긴 것은 김하늘이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는 새로운 이미지 뿐. 그러나 김하늘의 연기가 효주 그 자체였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녀마저도 사실 이해할 수 없는 효주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들지는 못한 것처럼 보인다. 방황하며 은밀히 갈구하는 캐릭터를 도맡아온 전도연이나 이자벨 위페르 같은 배우들이라면 혹시 달랐을까? 혹은 현실적으로 김하늘의 눈가에 주름이라도 가득했다면?


여교사 ★★★

완전히 설득하지는 못한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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