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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으로 인류가 거의 멸종한 가상의 미래, 젊은 백인 여성 앤(마고 로비)은 숲속 마을에서 홀로 밭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어느날 마을에 다른 생존자가 나타난다. 방사능에 심하게 오염된 그는 중년의 흑인 남성 존(치에텔 에지오포)이다. 둘 사이에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백인과 흑인, 청춘과 중년, 토착민과 외지인 등 전혀 다른 두 사람은 인류의 두번째 아담과 이브가 될 수 있을까?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또 한 명의 생존자가 찾아온 것이다. 젊은 백인 남성 케일럽(크리스 파인)의 등장으로 세 사람은 이전과 전혀 다른 갈등 관계로 치닫는다.
28일 개봉을 앞둔 영화 ‘최후의 Z’는 단 3명만 등장하는 영화다. 마치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 그리고 카인과 아벨처럼 최후의 3명이 펼치는 드라마는 예사롭지 않다. 상징과 알레고리로 가득해 더 많이 생각할수록 더 많이 보이는 영화다.
우선 영화의 원제는 ‘Z for Zacharia’인데 유대교의 예언자 ‘자카리아’의 이름을 제목으로 붙인 것부터 의미심장하다. 영화 속에 ‘A for Adam’이라는 제목의 책이 등장하는데 최초의 사람이 아담이라면 최후의 인간은 자카리아라고 본 것이다.
영화 속에 예언자 자카리아는 두 남자의 형태로 등장한다. 앤과 동거하는 중년의 흑인 존과 젊은 백인 케일럽이다. 이들의 이름 역시 성서 속 인물에서 따왔다. 구약성서에서 존(요한)은 최후의 심판이 멀지 않았다고 말하는 성자다. [마태오의 복음서] 3장에서 요한은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훌륭한 분”이라고 말하며 최후의 심판을 예언한다. 영화는 존 뒤에 케일럽을 등장시키며 이 예언을 발칙한 상상으로 보여준다. 성서에서 케일럽은 모세가 가나안 땅으로 보낸 스파이 중 하나로 유다의 후손이다. 인류 최후의 날, 예수의 세례자가 유다의 후손과 맞딱뜨렸으니 두 사람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 수밖에 없다.
꼭 성서를 대입하지 않더라도 다른 방향으로도 영화의 풍부한 텍스트를 즐길 수 있다. 남녀 한 쌍이 존재할 땐 평화롭던 공간에 또다른 남자가 등장하면서부터 성적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한 여자를 놓고 벌이는 두 수컷의 질투, 남자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여자의 변심 등 인간 본성을 놓고 물고 물리는 치열한 심리대결이 벌어지는 과정 자체가 무척 드라마틱하다.
한편으론 마을에 고립된 세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방식을 인류의 역사에 대입해볼 수도 있다. 존은 전기를 만들기 위해 교회 건물을 부숴야 한다고 말해 앤과 말다툼을 벌이는데 이는 과학과 종교 중 인간에게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상징적 질문이다. 과학을 활용해 몸이 편리한 삶을 살 것인지 혹은 종교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지킬 것인지. 최후의 인간 앤의 선택은 영화를 통해 확인하시길.
크레이그 조벨 감독(왼쪽)과 치에텔 에지오포
영화를 만든 크레이그 조벨 감독은 2012년 문제작 ‘컴플라이언스’로 선댄스영화제를 떠들썩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경찰을 사칭한 전화통화로 패스트푸드점의 직원들이 동료 여성 직원을 집단 성폭행하게 만든 실제 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인간이 권력자의 명령만 있다면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짓이라도 태연하게 저지를 수 있다는 '악의 수동성'을 폭로해 충격을 줬다.
‘최후의 Z’에서 감독은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 결정하며 살아가는 최후의 인간을 통해 인간 본성에 더 다가가는데 ‘컴플라이언스’만큼이나 인간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다.
영화의 원작은 소설가 로버트 오브라이언의 유작으로 작가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며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원고를 그의 아내가 남편의 노트에 따라 완성해 1974년 세상에 내놨다.
등장인물이 단 3명 뿐이지만 캐스팅이 화려해 연기 대결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앤 역을 맡은 로비 마고는 그동안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못말리는 할리 퀸, ‘레전드 오브 타잔’에서 물에 뛰어드는 제인으로 강렬한 모습을 보여줬으나 이 영화에선 꽤 진지한 연기를 선보이며 정극에도 잘 어울린다는 것을 증명한다.
존 역의 치에텔 에지오포는 ‘노예 12년’의 솔로몬 노섭 역으로 얼굴을 알린 뒤 ‘마션’의 NASA 책임자 빈센트 카푸어, ‘닥터 스트레인지’의 조력자 모르도 등 최근 할리우드에서 덴젤 워싱턴 이후 유능한 흑인 역을 도맡고 있는데 이 영화에선 현명한 흑인 이미지를 살짝 비튼다. 케일럽 역의 크리스 파인은 ‘스타트렉’의 커크 선장, ‘로스트 인 더스트’의 영리한 은행강도 토비 등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를 오가는 할리우드 대세남으로 이 영화에서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험한 남자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한다.
인물 위주의 단조로운 진행을 막기 위해 영화는 간혹 아름다운 숲속 마을을 보여주며 한 템포 쉬어가는데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은 대부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인근에서 촬영했다.
최후의 Z ★★★☆
최초의 인류와 최후의 인류는 닮은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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