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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은 감독, 작가, 배우, 제작자라는 네 가지 직함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1965년부터 2014년 사이 50년 동안 66편의 영화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장편 49편, 단편 2편, 연극 8편, TV영화 2편을 썼습니다.

1년에 한 편 이상을 만든 셈입니다.



다작임에도 불구하고 완성도도 뛰어납니다.

아카데미 각본상 2회(한나와 그 자매들, 미드나인 잇 파리), 감독상 1회(애니홀), 작품상 1회(애니홀) 수상했고, 노미네이트된 작품은 그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애니홀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앨런만큼 왕성한 창작 욕구를 가진 감독은 찾기 힘듭니다.

잉그마르 베르이만은 59년 동안 55편의 각본 혹은 감독을 맡았습니다만 연기는 하지 않았죠.

존 포드는 51년 동안 140편을 감독했지만, 각본을 쓰거나 연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앨런은 뛰어난 작품들을 어떻게 계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걸까요?



앨런의 작품 중 <해리 파괴하기>(1997)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잘 알려진 영화는 아닙니다만, 앨런 자신이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장해 소설을 쓰는 과정을 판타지 속에 담아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왕성한 창작활동의 비밀을 조금이라도 캐내보겠습니다.


해리 파괴하기


영화 속에서 앨런이 연기한 주인공 해리 블록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 인생 처음으로 작가의 장벽을 경험했습니다. 이제까지 들어본 적도 없어요. 단편을 쓰기 시작했는데 끝낼 수가 없어요. 소설에 전혀 집중이 안 돼요. 선금을 받았기 때문이죠."


여기서 주목할 포인트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작가의 장벽', 또 하나는 '선금'입니다.



'작가의 장벽(writer's block)'이란 창작자가 경험하는 보이지 않는 벽입니다.

일종의 마비상태입니다.

밝혀진 원인은 딱히 없습니다.

뇌에 발생하는 경련이 원인이라고 보는 연구자도 있고, 심리적인 상태일 뿐이라고 보는 연구자도 있죠.

작가의 장벽이 실재하는지도 여전히 연구대상입니다.


영화가 개봉했을 때 앨런은 해리가 앨런 자신의 경험담에서 가져온 인물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고, 앨런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전혀 달라요. 해리는 작가의 블록을 경험한 작가지만 저는 아니죠. 작가의 블록이 뭔가요?"

능청스럽지만 그다운 답변이죠?



'작가의 장벽'까지는 아니더라도 창작자들은 늘 장벽에 부딪힙니다.

앨런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글을 어떻게 쓰는지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는 한시라도 허투루 보내는 것이 질색입니다. 아침에 어떤 곳을 걷고 있을 때도 무엇에 관해 생각할지, 어떤 문제와 씨름할지 계획을 세웁니다. 오늘 아침에는 제목을 생각할 것입니다. 아침에 샤워를 할 때도 그 시간을 활용하려고 노력하죠. 내가 가진 시간 중 상당 부분은 생각하느라 씁니다. 그것이 이런 글쓰기 문제를 공략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루종일 생각을 하는데, 심지어 무엇을 생각할지도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조금 더 자세히 그의 말을 들어볼까요?



"나는 수년에 걸쳐서 어떤 작고 소소한 변화도 정신 에너지가 새롭게 차오르도록 자극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방에 있다가 다른 방으로 가면 그것만으로도 도움이 됩니다. 집 밖으로 나가서 길에 서면 그건 엄청난 도움이 되죠. 위층으로 올라가 샤워를 하면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때로는 필요 이상으로 샤워를 하기도 합니다. 거실에 있다가 교착 상태에 빠질 때 위층으로 올라가 샤워를 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모든 교착이 깨지고 긴장이 풀리죠. 나는 베란다에 자주 나갑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가장 큰 장점은 긴 베란다가 있어서 극본을 쓰면서 수없이 서성일 수 있다는 점이죠. 공기를 바꾸면 크게 도움이 됩니다."


아하! 그는 생각을 더 잘 하기 위해 자꾸만 움직입니다.

수시로 샤워를 하고, 베란다를 서성입니다.

샤워를 하면 물줄기가 온몸을 두드립니다.

혈액순환이 일어나면 막혀 있던 생각이 뻥 뚫릴 때가 많습니다.

필자도 경험한 적 있으니 독자 여러분도 그런 경험 한 번쯤 있으시겠죠?


앨런 역시 생각이 막히면 샤워를 합니다.

그의 몸이 축 늘어진 것은 어쩌면 샤워를 자주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는 한국계 입양 딸 순이 프레빈과 함께 살고 있지요.

가끔은 샤워를 순이와 함께 할까요? 글쎄요. :)



'작가의 장벽'으로 괴로워하는 작가는 대부분 어떤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훌륭한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죠.

이는 주로 첫 작품에서 홈런을 친 작가가 두번째 작품을 준비할 때 찾아옵니다.

'2년차 증후군' 혹은 '소포모어 증후군'이라고도 하죠.

첫 작품이 아주 훌륭할 때 더 나은 두번째 작품을 쓰는 것은 어렵습니다.

어쩌면 거의 불가능하기까지 합니다.


작가의 장벽을 극복하는 방법은 뭘까요?

계속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앨런처럼 말이죠.



잘 쓰려는 마음으로 쓰지 말고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글을 써야 합니다.

작가의 장벽은 지속적으로 최상의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는 착각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잘 풀리는 날이 있으면 좀 덜 잘 풀리는 날도 있는 것입니다.

앨런은 이렇게 말합니다.

안 써진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나쁘다고요.



"글쓰기는 쉽지 않아요. 정말로 어려운, 고통스러운 작업이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죠. 한참 후 나는 톨스토이가 했다는 "펜을 피에 담가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됐습니다. 나는 아침 일찍 글을 쓰기 시작해 몰두하고 계속 쓰고 다시 쓰고 다시 생각하고 쓴 글을 찢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곤 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강경한 접근법을 찾아냈습니다. 나는 결코 영감이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언제나 틀어박혀서 글을 써야 했죠. 그러니까 억지로 해야 합니다."


영화 속 앨런은 늘 신경쇠약 직전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낙천적인 기질의 미국 관객들은 한동안 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술영화의 전통이 있는 프랑스에서 먼저 알아본 뒤에야 미국인들도 인정하기 시작했죠.

그는 지금도 자신의 영화를 좋아하는 소수의 관객들을 위해 영화를 만듭니다.


앨런의 작업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가 글을 쓰는 도구는 16살 때 구입한 진홍색 올림피아 SM2 휴대용 타자기입니다.

그는 반백년을 함께한 낡은 타자기를 자랑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 타자기는 아직 멀쩡합니다. 40달러 정도 준 것 같아요. 나는 모든 대본, [뉴요커]에 기고한 모든 기사, 지금까지 쓴 모든 글을 이 타자기로 썼습니다."


올림피아 SM2 타자기


그는 타자기 옆에 미니 스윙라인 스테이플러, 자주색 스테이플 제거기 두 개, 가위를 두고 자기가 작성한 글을 직접 오리고 붙입니다.

완고가 나오면 그 결과물은 그야말로 엉망진창 누더기가 됩니다.

하지만 그 종이 뭉치가 결국 오스카 각본상을 받은 영화들의 대본입니다.



두번째 포인트는 '선금'입니다.

선금은 일종의 보상입니다.


작가들이 살기 힘든 한국 땅엔 입금되는 날, 창작 의지가 샘솟는다고 말하는 가난한 작가들이 많지만 앨런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돈이 들어오는 순간 머리가 굳어진다고 하니까요.


앨런은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오스카 시상식에 참가하지 않는 이유는 그 상에 의미를 두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상이라는 개념 자체가 어리석어요. 나는 타인의 평가에 따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할 때 이를 수용하면 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할 때도 이를 수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상을 통해 타인에게 작품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상을 받지 못한 다른 작품은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상을 받지 않는다는 앨런의 말은 자신감의 표현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쓰는 모든 작품이 뛰어나다는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어느 한 작품을 도드라지게 생각하게 되면 지금까지 해오던 페이스를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입니다.



"나는 상에서 얻는 것은 편애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애니 홀>이야" 라는 식으로 말하지만 나는 육상 경기를 제외하면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그가 오스카 시상식에 참석한 적이 딱 한 번 있었습니다.

뉴욕에서 911 사태가 터진 이듬해인 2002년 시상식이었습니다.

당시 그의 영화는 후보에 오르지 못했지만 그는 할리우드까지 날아가 뉴욕에 대한 지원을 호소했습니다.

뉴욕은 데뷔 때부터 그가 모든 작품을 만들어온 곳입니다.

따라서 창작의 터전이 사라지는 것을 막는 일은 자신이 고수해온 원칙을 깨고서라도 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물론 세상엔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쥐고 싶어하는 영화인들이 훨씬 많습니다.

<타이타닉>을 만든 제임스 카메론이 시상식에 올라 "내가 왕이다"라고 소리친 것처럼 많은 후보들은 시상식에서 어떤 멘트를 할까 리허설까지 하면서 턱시도나 드레스를 고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앨런에게만은 창작의 동기가 돈이나 남들의 인정은 결코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가 그런 외적 동기에서 자극을 받는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미친 듯이 작품을 쏟아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성공한 뒤에는 쉬엄쉬엄 작업하지 않았을까요?


앨런은 뉴욕대 영화과를 다녔지만 중퇴했습니다.

학위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그는 80세가 된 지금도 매년 한 편씩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앨런은 시상식에 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영화에 관한 평도 일절 읽지 않고 심지어 극장에 걸린 자기 자신의 영화를 보러 가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그에게 창작의 동기는 창작에서 오는 만족감 그 자체인 듯합니다.


"글을 쓰려고 앉아 있으면 하루 종일 부엌에서 만든 음식을 먹는 기분이 듭니다."


그는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먹을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관객들은 그가 음식을 만들어 먹는 과정을 지켜보며 군침을 삼키는 것이고요.

그렇다면 그가 만든 영화는 '쿡방'의 또다른 버전이겠네요.


"굳이 녹초가 될 때까지 일하는 인생을 선택한 이유가 뭐냐고요? 흠. 당신은 자기 업무나 작품에 완벽을 기하는 생산적인 삶을 영위하려는 이유가 따로 존재한다고 착각하고 있군요. 하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몰두하는 이유는 어떤 영화를 누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나는 단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할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을 뿐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도 65년 된 낡은 타자기 앞에 앉아 차기작의 대본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글이 안 써질 때면 2층에 올라가 샤워를 하고 내려옵니다.

2012년작 <로마 위드 러브>에서 샤워하는 테너가 떠오르신다면 그가 바로 우디 앨런 자신일 것입니다.

오페라 하우스의 점잖은 관객 앞에서 노래하고 있지만 결국 그는 발가벗은 채로 신나게 샤워를 즐기고 있을 뿐입니다.



(참고: 케빈 애쉬턴 저 [창조의 발견] 257~298쪽, How Creatives Work - Woody Allen by Liam Smith)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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