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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를 여행한다는 것은 2천년 전 고대 도시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사막 한복판에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계곡이 있고 그 틈새에 고대 도시가 숨어 있다. 나바테아인들이 바위산을 정교하게 깎아 만든 이 도시는 1812년 서양에 소개된 이후 경외의 대상이었다. 아가사 크리스티는 페트라를 배경으로 '죽음과의 약속'을 썼고, 영화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의 해리슨 포드는 성배를 찾기 위해 페트라의 알 카즈네(Al Khazneh) 속으로 들어갔다. <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에서 주인공이 에너지의 원천을 찾은 곳도 여기였으며, 베르메르 미스터리 중 'Chasing Vermeer', ‘탱탱의 모험’에도 이 신비한 고대 도시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페트라는 작년 종영한 드라마 <미생> 마지막회의 배경으로 더 친숙한 곳이다. 오상식과 장그래는 페트라에서 만나 꿈과 길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꿈을 잊었다고 꿈이 아닌 것은 아니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길이 아닌 것은 아니다." 많은 '미생'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준 이 대사를 기억하는 팬들은 분명 페트라를 그들의 버킷리스트에 추가했을 것이다.



낮과 밤이 전혀 다른 페트라


페트라를 찾았고 두 번 놀랐다. 처음엔 거대한 규모에 놀랐고 그 뒤엔 낮과 밤이 전혀 달라서 놀랐다. 페트라를 제대로 보려면 최소한 두 번 이상 가길 추천한다. 낮의 페트라가 깎아지른 협곡을 따라 고대 도시를 탐험하는 미로라면, 밤의 페트라는 고요한 우주에서 다른 행성을 찾아가는 길이다. 페트라의 입구인 좁은 협곡 시크(Siq)는 무려 1.2km에 달하는데 바닥에 깔아 놓은 촛불을 따라 걷다 보면 세상엔 하늘에 뜬 수많은 별과 나 혼자만 존재하는 기분이 든다.


한참을 걷다 보니 불현듯 눈앞에 수백 개의 촛불의 향연이 나타난다. 아랍 유목민 베두인이 부는 피리 소리가 고즈넉하게 협곡에 울려퍼지고 그 뒤로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바로 페트라의 보물, 알 카즈네다!


너비 30m, 높이 43m의 거대한 문인 알 카즈네는 사암을 음각으로 깎아 만들었는데 6개의 코린트식 원형 기둥이 2층 구조를 떠받치고 있다. 이 보물이 놀라운 것은 접근조차 힘든 산 속에서 바위를 깎아 세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아름다워서 많이 알려졌지만 페트라에서 알 카즈네는 시작일 뿐이다. 이 고대 도시엔 상수도, 목욕탕, 극장 등 없는 게 없다. 페트라는 중국과 인도 상인들이 비단과 향신료를 들고 이집트, 그리스, 로마로 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무역로로 나바테 왕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나바테 왕국은 한때 로마 제국에 대항할 정도로 막강했지만 이내 로마의 속국이 됐기에 로마의 유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페트라는 지진으로 묻힌 뒤 14세기 이후 300년 간 잊혀졌었다. 1812년 스위스의 탐험가 요한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발견됐는데 그는 아랍인 복장을 하고 베두인을 속여 페트라를 찾아내 서양에 알렸다. 이곳을 몰래 보호해온 현지인 입장에선 기가찰 노릇이지만 현재 요르단의 주요 관광 수입원 역할을 하고 있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페트라는 규모가 워낙 방대해 발굴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아직 페트라의 일부분만 보고 있는 셈이다.



페트라의 속살 아드 데이르


이제 페트라의 더 깊은 곳을 탐험할 차례다. 다음날 아침 다시 페트라를 찾았다. 밤의 페트라가 소박한 독주라면 낮의 페트라는 웅장한 오케스트라다. 높이 80m에 달하는 붉은 기암괴석이 다양하게 변주되며 끝없이 펼쳐져 있다.


나바테 왕국은 왜 산 속에 페트라를 건설했을까? 첫번째 이유는 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좁은 협곡은 난공불락의 천연 요새로 손색이 없다. 두번째 이유는 이곳에 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세의 계곡 '와디 무사'엔 마르지 않는 샘이 있었는데 나바테아인들은 이 물을 산속으로 공급하기 위해 댐과 수로를 만들었다. 지금도 협곡에는 수로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다시 한 번 알 카즈네에 도착한 나는 이번엔 페트라의 북서쪽 끝에 있는 아드 데이르(Ad Deir)로 가기로 한다. 당나귀로 1시간쯤 걸리는 먼 길이다. 물론 하이킹을 즐긴다면 걸어서도 갈 수 있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당나귀를 타볼 것인가. 페트라에는 700마리의 등록된 낙타, 말, 당나귀, 노새가 있다. 가격은 흥정하기 나름인데 보통 왕복에 40디나르(6만2000원) 정도다.


당나귀는 페트라의 곳곳을 뚜벅뚜벅 걷는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백 기의 무덤들, 나바테아인들이 거주했던 동굴 입구 등이 풍경처럼 지나간다. 당나귀가 말을 잘 듣냐고? 기자는 이 길이 처음이지만 당나귀는 전문가다. 곧 바위산이 나타나고 당나귀는 850개의 계단을 쉬지 않고 오른다. 당나귀가 계단을 오를 땐 함께 몸을 앞으로 숙여주는 게 좋다. 호흡이 맞는 당나귀는 신이 나서 걸을 것이다. 마침내 도착한 종착점에서 지친 당나귀를 쉬게 하고 나머지 절벽 위는 걸어서 올라간다. 그러자 장엄하게 펼쳐진 수도원 아드 데이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곳에 오니 수백년 간 페트라가 잊혀진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알 카즈네처럼 아드 데이르 역시 겸손하다. 거대한 바위산 속에서 아드 데이르의 세밀한 음각은 히잡을 두른 아랍 여성처럼 조용히 빛난다. 가만히 앉아 누군가 찾아와주길 기다리고 있다. 결국 당신이 직접 길을 만들어 찾아가야 한다. 페트라가 잊혀진 꿈이라면 당신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며 언제까지라도 이곳에 숨어 있을 테니까.



페트라 여행 팁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페트라를 제대로 보려면 하루로는 짧다. 최소 이틀 이상 머물 것을 추천한다. 입장료는 1일권 50디나르(7만7000원), 2일권 55디나르(8만5000원), 3일권 60디나르(9만3000원). 하지만 요르단을 당일치기로 방문해 페트라만 보고 가는 관광객은 90디나르(14만원)를 내야 한다. 현지 거주자는 단돈 1디나르면 된다.


밤의 페트라는 일주일에 두 번, 저녁 8시 30분부터 10시까지 알 카즈네까지만 개방하는데 입장료는 17디나르(2만6000원)다.


페트라는 요르단의 최대 관광지이니만큼 주변에 모벤픽 등 최고급 호텔을 포함해 다양한 종류의 숙박시설과 식당이 있다. 페트라의 전경을 감상하고 싶다면 페트라의 관문인 와디 무사에 위치한 호텔에 묶는 것도 좋다.



(* 이 글은 매일경제신문 2015년 4월 27일자 B1면에도 실렸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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