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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광고하는 남자, 박웅현 대표가 말하는 창의력
광고, 인문학, 창의성. 박웅현을 설명하는 세 개의 키워드다. 그는 '사람을 향합니다' '생각이 에너지다' '진심이 짓는다' 등 인문에 기반한 광고 카피로 판을 흔들었고,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책은 도끼다' '여덟 단어' 등 도합 60만 부가 팔린 책 세 권으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잡았다. 최근엔 대학생들에게 스피치 힘을 키워주는 '망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광고와 인문학이라는 두 이질적인 가치를 접목해 그 경계에서 창의성이라는 꽃을 피워내는 비결이 뭘까?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항상 우선순위가 일보다는 사생활에 있다고. 일상이 아이디어의 자양분이라고. 그에게서 창의력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보슬비가 내리던 지난 이른 봄날 오전, 강남구 신사동 J Tower 7층의 TBWA 사무실을 찾았다.
모든 술자리가 회의에 우선한다
모든 사생활이 공무에 우선한다
왜? 거기에 창의력이 있으니까!
"모든 사생활은 공무에 우선합니다." 그가 말했다. "사내에서 농담 삼아 자주하는 진담이 있습니다. 모든 술자리는 회의에 우선하고, 모든 개인 휴가는 수백억 프로젝트에 우선한다는 것이죠. 갑자기 300억짜리 프로젝트가 떨어져 인력이 필요하다고 해서 누구도 미리 잡힌 휴가 계획을 망치지 않아요. 휴가를 반납하려는 직원에겐 이렇게 말합니다. 잘 생각해봐, 너의 권리야. 이렇게 휴가 가려고 열심히 일한 거잖아."
그의 직함은 크리에이티브 대표(Chief Creative Officer). 작년 말에 승진해 이제 회사 운영을 총괄해야 하는 입장이 됐지만 그의 사생활 예찬은 그대로다. 그는 공과 사의 구분이 뚜렷한 사람이다. 회사는 공이고 개인은 사다. 그리고 공은 사를 위해 존재한다. 왜냐고? 우리는 모두 행복해지고 싶은 인간이니까. 개인이 행복하지 않으면 회사도 제대로 굴러갈 수 없으니까. 하지만 사생활을 강조하다보면 일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는 대나무를 예로 들어 대답했다.
"대나무에 마디가 있는 것처럼 일의 마디가 생활의 마디로 들어오지 않게 해야 합니다. 쉽지 않지만 딱 끊어야 합니다. 전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퇴근 후엔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대신 무의식을 믿습니다. 금요일 회의가 잘 안되면 팀원들에게 "그냥 월요일에 보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 유기체는 무서워서 몸으로 기억해냅니다. 놀다가도 뭐가 툭 걸려요. 그렇게 찾아낸 아이디어가 많죠."
그냥 놀았는데 아이디어가 쏟아진다니. 꼭 학창시절 공부 잘 하는 친구가 시험 전날 밤을 샜으면서 어제 놀았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하지만 그가 말하는 무의식은 시험공부와는 달랐다.
"은행 광고를 시작하면 거리에 은행 간판들이 주르륵 하고 올라옵니다. 다른 것들은 안보이고 은행만 보여요. 마찬가지로 휴대폰 광고를 하면 대리점 간판들이 올라오는 식입니다. 유레카의 순간은 그렇게 찾아오는 것 같아요."
유레카를 외치는 순간은 짜릿하겠지만 이를 위해서는 내공을 쌓아야할 터. 그에게 내공을 쌓는 인풋의 과정에 대해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도서관이나 회사보다는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순간이 모두 인풋이 됩니다. 출퇴근 길, 봄에 핀 꽃, 친구를 만나서 점심, 저녁 때 소주, 차타고 오가는 게 다 인풋입니다. 이런 것들이 제대로 된 ‘인문'이기도 하죠. 그것을 받아들이는 건 각자의 능력에 달린 문제이겠지만요."
아이디어는 일상 속에 있다
이 순간에 몰입하고 자존감을 키워라
사생활이 창의력의 원천이라는 이 남자. 이쯤되면 그의 사생활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꼬치꼬치 캐물은 그의 사생활은 생각 외로 굉장히 단순했다.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기, 저녁엔 휴대폰 꺼놓기, 회의는 절대 1시간을 넘기지 않고, 6시 칼퇴근에 회식도 9시면 끝. 주말엔 집에서 책 읽고 음악 감상. 아침형 인간이니 저녁형 인간이니 하는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은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보였다. 이런 사생활 속에서 창의적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은 언제일까?
"책상 붙들고 고민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정신 줄을 놓고 있을 때 아이디어가 샘솟습니다. 옛날 선인들은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으로 마상, 측상, 침상을 이야기했는데 마상은 말 타고 갈 때, 측상은 화장실에서, 침상은 자기 직전이었죠. 그 세 가지의 공통점은 아무 생각이 없을 때라는 것입니다. 잠들기 직전 혹은 새벽 수영하면서 강사가 "다섯 바퀴 도세요" 할 때 네 바퀴 쯤 돌다가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그는 창의성을 키우려면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제 못한 일을 오늘 생각하며 지금 이 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말이다.
"저는 최대한 눈앞에 집중합니다. 출근하고 나면 어제 일을 정리하는데 그렇게 해놔야 찝찝한 게 없죠. 지금은 인터뷰하는 이 순간에 집중합니다. 회의를 들어가면 이 회의의 목표가 뭔지만 생각합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곁눈질 하지 않고 앞만 보는 거죠."
이런 원칙이 광고에 인문학을 접목시키는 데에 도움이 될까? 그는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광고는 기업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기업도 법인으로서 오래 살아남아야 한다는 목표가 있잖아요. 광고는 자본을 추구하지만 그 자본의 궁극적인 종착점은 인간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늘 인간을 우선순위로 놓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사생활이 공무에 우선인 삶을 살려면 자존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바람처럼 흔들려 여기저기 끌려다니다보면 일도 삶도 모두 다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자존감을 키우려면 자신의 단점 받아들이고 영웅담을 믿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 부분적 진실일 뿐입니다. 나도 내 삶을 편집하면 그렇게 될 수 있지요.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지금 그대로의 자신이 더 중요하다는 걸 늘 의식해야 합니다."
(이 글은 매일경제신문 4월 3일자 C2면에 실린 기사의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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