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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북쪽 지붕 핀란드 라플란드

이글루 위에 뜬 오로라


영하 37도. 온도계의 수은주가 마이너스 40도 근처까지 내려갔다. 양말 3개를 신고 방한복을 껴입었지만 찬바람이 그대로 닿는 맨얼굴엔 콧물이 나오자마자 서리로 변할 정도로 감각이 없다. 이곳은 핀란드 북쪽 끝 라플란드 지방의 사리셀카. 인구 350명이 오손도손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겨울엔 눈이 녹지 않아 이 지역 전체가 온통 흰색에 둘러싸여 있다. 해마다 오로라 헌터들과 액티비티를 즐기려는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스마트폰으로 오로라 예보 사이트를 확인해보니 오늘 오로라 활동 정도는 3. 최대 9 중 3이면 볼듯 말듯한 정도다. 장갑을 단단히 끼고 삼각대와 DSLR 카메라를 들고 이글루 호텔을 빠져나왔다. 사리셀카엔 칵슬라우타넨이라는 동화 속 마을 같은 산타 리조트가 있는데 이곳의 이글루 호텔은 눈벽돌로 만든 진짜 이글루와 달리 단열 유리로 만들어져 침대에 누워 유리 사이로 밤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다.



프랑스와 일본에서 온 오로라 헌터들이 벌써 자리를 잡고 오로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라플란드의 사미 원주민들은 오로라를 `불의 여우'라고 부르며 이 전설의 동물을 잡으면 큰 부자가 된다고 믿었단다. 일본에선 신혼부부가 오로라를 보면 천재를 낳는다는 미신도 있다.


"저기다!" 누군가 프랑스어로 소리를 질렀고 삼각대를 든 사람들이 일제히 뛰기 시작한다. 말로만 듣던 오로라 헌터들에 섞여 나도 덩달아 뛰면서 목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하늘을 봤지만 육안으로는 오로라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희미하게 흰빛이 감돌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주위에선 벌써 감탄사가 쏟아지고 있다.



감도와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는 미리 맞춰 놨다. 바로 찰~~칵! 25초 동안 하늘이 열린다. 희뿌연 연기 같던 오로라 잔상이 사진 속엔 녹색으로 남는다. 오! 자연의 신비여. 눈은 보지 못하는 그린라이트를 보는 카메라 렌즈의 놀라움이여. 오로라폭풍이 불 땐 붉은 색을 띈다는데 녹색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태양의 입자가 지구의 대기와 부딪혀서 만들어내는 이 마술은 운좋으면 밤새도록 지속되지만 대개는 잠시 왔다 사라진다. 그러니 그 결정적 순간을 잘 잡아야 한다. 상대가 다가왔을 때 그린라이트임을 바로 알아채야 한다.


신비로운 녹색을 사진 속에 담고 싶은 당신, 불의 여우와의 인연을 붙잡고 싶은 당신, 번거롭더라도 필히 삼각대를 들고 가시라. 아마추어 사진가도 오로라 헌터가 될 수 있다. 단, 카메라와 삼각대가 얼지 않도록 30분에 한 번씩은 실내로 들어와야 한다.



북쪽 하늘에 오로라가 있다면 동쪽엔 달이 떠 있다. 휘영청 큰 달이라 해만큼 반갑다. 이렇게 크고 선명할 수가. 카메라가 오로라를 담는 동안 별이 촘촘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심호흡을 해보라. 심장을 얼릴 정도의 차가운 공기가 폐에까지 와닿는다. 가만, 자세히 보니 하늘에 북두칠성의 일곱 개 별이 선명하고 오리온좌는 책에서 본 그대로다. 몇만 광년 떨어진 곳에서 온 몇만 년 된 빛이 눈에 닿는다. 그쪽에 계신 분들도 몇만 년간 잘 살아오고 있나요. 북두칠성을 향해 눈인사를 건네본다.



다음날 아침, 이글루에서 깨어나 산책길에 나섰다. 어젯밤보다는 확실히 날이 풀려 영하 26도밖에 되지 않는다. "곧 여름이 오려나봐요." 인상 좋은 할아버지가 내 얼굴을 보더니 농담조로 한 마디 한다. 문득 이곳의 여름을 상상해본다. 이 많은 눈이 다 녹아 온통 녹색 천지로 변한다니 그게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손으로 눈을 움켜쥐어봤다. 뭉쳐지는 눈이 아니라 건조하게 흩어지는 눈이다. 그래서 눈사람을 만들 수 없는 눈이다. 눈을 침대 삼아 그자리에 풀썩 드러누웠다. 뽀드득한 촉감에 온몸의 세포들이 깨어나는 기분이다. 눈 앞에 펼쳐진 하늘극장엔 해가 떠오르려는 듯 빨간 노을이 하얀 지평선을 물들이고 있다. 오로라를 찍었던 카메라도 이 광활한 아름다움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형언할 수 없는 광경을 가슴 속에 오랫동안 간직하기 위해 한동안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 이 글은 매일경제신문 2015년 1월 26일자에도 실렸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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