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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이라는 도시에 대한 감상문입니다.

저는 도대체 이 도시를 사람들이 왜 그렇게 칭송하는지 이해할 수 없군요.



1. 숫자와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도시. 거리 이름은 가로, 세로 숫자로 단순하게 구획져 있어 헷갈리고 지하철 라인 이름도 알파벳과 숫자 뿐이라 지루하다. 알파벳만 있는 알파벳 시티는 작은 마을로 족하다. 메가시티를 이렇게 단순하게 만들어놓다니.


2. 버스는 있지만 탈 수 없는 도시. 한번도 제시간에 맞춰 오지 않아서 어쩌다 보이는 버스들이 마치 유령처럼 배회하는 것처럼 보이는 도시. 계속 걸어다니란 말인가. 하긴 유엔본부에서 타임스퀘어까지 도보로 25분만에 주파하긴 했다.


3. 지하철은 수시로 운행일정이 바뀌는 도시,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확인하느라 헤매야 하는 도시. 주말엔 상행선만 운행하고 하행선은 운행하지 않기도 한다. 대체 어쩌라고? 파리보다는 덜 지저분하고 덜 걷는다는 건 장점이다만.


4. 버스가 없어서인지 길거리에 택시가 가득한 도시. 택시기사들이 우버(Uber)를 싫어할 만한 도시. 그러나 택시를 싫어하는 나에겐 이동수단이 오직 지하철과 도보 뿐인 도시.



5. 거대한 기업들(뉴욕타임즈, 뉴스 코퍼레이션, 타임워너, CNN, 피델리티, 찰스 슈왑, 록펠러, 트럼프 등등)의 본사가 있는 고층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선 도시. 그런데 막상 대낮 거리엔 직장인은 안보이고 관광객만 보여서 자본과 일상의 경계가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도시.


6. 심장이 뚫린 것처럼 공허한 도시. 외양은 번지르르한데 알맹이는 확인할 수 없는, 어쩌면 텅 빈 것 같은 도시. 김아타가 찍은 타임스퀘어 사진 속 공허함이 뉴욕을 정확하게 포착한 듯.


7. 타임스퀘어엔 들뜬 관광객으로 가득한데 왜 들떴는지 알 수 없는 도시. 타임스퀘어에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실체는 결국 대형 LED 광고판 뿐인데. 그들이 사랑한 건 광고의 내용이 아니라 이미지 자체였을까.


8. 타임스퀘어엔 언제나 인파 가득하다. 기마경찰의 말이 아스팔트에 싸놓은 똥덩어리를 누군가 무심결에 밟고 지나가면 비아냥대는 웃음이 터지는 도시. 나는 밟지 않았다는 안도감인가.



9. 맑을 땐 맑지만 비가 올 땐 우중충하다. 비가 생각보다 자주 오고 날씨가 변덕스러운 도시.


10. 걸어도 걸어도 고층건물만 계속 나오는 도시. 숨막힐 정도다.


11. 수시로 길을 막고 고층건물의 보수 공사가 한창인 도시.


12. 비현실적이고 공허하고 낭만과는 거리가 먼 도시.


13. 화려한 쇼핑몰, 유명한 그림이 걸린 미술관은 있지만 걸어다닐 때의 잔재미는 없는 도시.


14. 미술관에 가면 엄청나게 비싼 컬렉션이 즐비한데 너무 유명한 그림들이어서 오히려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도시. 그동안 수도 없이 복사본만 보아오다가 드디어 원본을 보게 되었는데, 감흥 보다는 원본만의 아우라를 기어이 찾으려고 달려들어야 하는 공허함에 질색하는 도시.


15. 아일랜드 시골 사람들이 술마시고 호텔로 돌아와 시끄럽게 떠들며 밤새 들떠 있는 도시.



16. 브루클린 브리지가 공사중일땐 다리 전체를 막아버려 맨해튼 브리지로 건너가야 하는 도시.


17. 도착하기 전엔 우디 앨런 영화 속 맨해튼을 떠올렸으나 지금은 김아타에 더 공감가는 도시. 우디 앨런은 왜 평생 이 도시를 사랑했을까.


18. 낮이건 밤이건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가 끊이지 않는 도시.


19. 그나마 내가 맨해튼에서 좋아하는 장소는 하이라인 파크가 있는 첼시 지역과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한적한 주택가 정도.


20. 맨해튼에서 보는 맨해튼보다 브루클린이나 퀸스에서 보는 맨해튼이 더 멋진 도시. 맨해튼은 그 속에 있을 때보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더 근사하게 보인다. 지금 맨해튼에 있다면 밖으로 나오라.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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