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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흥행은 도박 아닌 정교한 예측
넷플릭스는 블록버스터 비디오 체인과 경쟁하던 시절 우편 서비스 용으로 대략 10만여 편의 DVD를 보유하고 있던데 반해 스트리밍 서비스의 인벤토리에는 고작 3만여 편만 있다. 이 숫자는 아마존 인스턴트 프라임, 부두(Vudu), 훌루(Hulu), 아이튠즈(iTunes) 등 경쟁자들에 비해 적은 숫자다. 특히 넷플릭스가 비디오 서비스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는 것에 비하면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스트리밍 영상 콘텐츠의 숫자는 의아할 정도로 적다. 그래서인지 스트리밍 서비스 초창기인 2009년 조사를 보면 소비자의 81%가 넷플릭스를 이용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객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65점으로 상당히 낮은 편이었다. (낮은 만족도는 이후 조금씩 개선되어 86점까지 올랐지만 2011년 7월 DVD렌탈과 스트리밍 서비스의 분리로 가격이 60% 가까이 인상되면서 다시 79점으로 떨어지고 만다. 이때 넷플릭스는 가입자를 80만명 잃고 주가도 폭락했는데 넷플릭스는 이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콘텐츠를 자체 제작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 과정에서 더 꼼꼼하게 빅데이터를 이용했음은 물론이다.)
더 잘 될 영화로 바꾼다
보유 편수가 경쟁사에 비해 적어서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낮았다면 상식적으로 보유량을 늘리기 위해 더 많은 콘텐츠 사업자와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해결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존 콘텐츠 사업자와 계약을 파기하고 새로운 사업자와 계약을 체결하는 식으로 3만여 편을 유지했다. 말이 3만여 편이지 그중 영화는 1만 편 남짓에 불과하고 나머지 2만 편은 TV 시리즈를 비롯한 각종 영상 콘텐츠였다. 한해 전세계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만 6천 편(2007년 5476편에서 2011년 6098편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에 달하고 그중 미국과 캐나다 영화가 1천 편이다. 1만 편은 전세계 영화 2년치 혹은 북미영화 10년치에 불과한 숫자다.
그렇다면 넷플릭스는 왜 3만 편을 유지하고 있을까? 비용 대비 수익성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주력 서비스는 편당 구매방식(Pay-per-view)이 아닌 월정액 무제한 서비스다. 보유 목록을 무한정 늘린다고해서 매출도 비례에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는 자체 조사를 통해 회원들이 대략 월 평균 3편의 영화와 6편의 TV 프로그램을 시청한다는 것을 알게됐는데 이런 기준으로 볼때 3만 편이라는 숫자는 그리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문제는 절대적인 양보다는 프로그램의 질이었다.
2013년 5월 넷플릭스는 바이아컴(Viacom)과의 계약이 만기되자 더이상 연장하지 않았다. 어린이용 캐릭터 도라(Dora the Explorer)와 스폰지밥으로 유명한 어린이 엔터테인먼트 채널 니켈로디언(Nickelodeon)을 비롯해 MTV, 코미디 센트럴 같은 인기 채널의 프로그램이 넷플릭스에서 사라졌다. 아마존 프라임은 즉각 반사이익을 누렸다. 넷플릭스는 그대신 드림웍스와 계약을 맺고 애니메이션을 공급받기로 했다.
넷플릭스가 도라를 버리고 드림웍스를 택한 것은 빅데이터 분석의 결과였다. 바이어컴의 도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예상 수익과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으로 벌 수 있는 예상 수익을 비교해 우위를 저울질한 것이다. 다른 플랫폼 사업자들 역시 비슷한 개념으로 예상 수익을 분석하지만 기존 콘텐츠가 어느 정도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에서 갈아탄다는 것은 쉬운 결정은 아니다. 또, 콘텐츠 사업이라는 것이 대개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예상 수익이 정확할 것이라고도 자신하지 못 한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자체적으로 분석한 예상 수익 모델에 맞추어 경영계획을 짰다. 넷플릭스가 다른 업체와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수시로 계약이 끝난 콘텐츠 제공자를 교체한다. 이는 그들이 정확한 예측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오는 것이면서 한편으로는 비용을 아끼려는 전략이기도 하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인기를 끌면서 가입자가 늘어나고 있고 그러면서 콘텐츠 사업자의 입김도 세졌다. 영상 콘텐츠의 공급가액도 계속 올라가는 추세다. 특히 2011년 7월 소니, 콜럼비아, 워너브라더스, MTV, 디즈니 등 대형 배급사들이 콘텐츠 제공 댓가로 넷플릭스에게 10배 인상된 금액을 요구했을 때 넷플릭스는 이를 받아들이고서는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아마존 인스턴트 프라임은 소니와 계약을 맺고 5천개의 타이틀을 아마존 프라임 회원들에게 무료로 풀어버렸고, 훌루는 드라마 폐인들에게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이런 위기의 순간에 넷플릭스가 생존을 위해 꺼내든 카드가 바로 계약과 해지를 반복해 힘의 우위에서 콘텐츠 제공자의 위에 서는 전략이었다. 넷플릭스가 하는 것처럼 계약해지가 빈번하게 발생하게 되면 콘텐츠 사업자의 입장에서도 언제 퇴출될 지 모르기 때문에 무리한 가격인상 요구를 할 수 없게 된다. 넷플릭스가 <하우스 오브 카드> 등 콘텐츠의 자체 제작에 나선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자체 제작 드라마로 콘텐츠를 채우게 되면 그만큼 콘텐츠 제공업자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게 되고 협상과정에서 플랫폼 사업자가 우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영화산업의 흥행 예측
넷플릭스의 빅데이터 활용이 가져온 변화를 영화산업의 흥행 예측에 대입해 보자. 콘텐츠 시장은 전통적으로 확률 게임이었다. 열 편의 영화를 만들면 그중 한 편이 소위 '대박'을 쳐서 나머지 아홉 편의 손실을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 그동안 감독, 배우 등을 독립변수로 놓고 영상물의 흥행지표를 종속변수로 놓아 상관성을 분석하는 등 과학적인 흥행 성공 방정식을 찾아내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오차가 컸다. 노련한 제작자의 감과 트렌드를 읽어내는 능력이 오히려 더 잘 들어맞곤 했다.
그런데 최근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영화산업에도 빅데이터가 슬슬 도구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빅데이터의 효용성을 먼저 알아본 사람은 돈에 민감한 투자자들이었다. 기획부터 감독 섭외와 배우 캐스팅 과정에서 데이터 분석이 쓰이기 시작하더니 마케팅과 배급 과정으로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콘텐츠 분야에서 빅데이터 활용은 크게 추천과 예측으로 나뉜다. 전자는 방대한 콘텐츠 은하계에서 사용자에게 맞는 콘텐츠를 발견해 추천해주는 것이고, 후자는 성공요소를 분석해 흥행을 예측하고 효과적인 마케팅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다. 전자의 추천 기능은 이 글에서 넷플릭스가 획기적으로 개선해온 추천 시스템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다. 후자는 전자보다 훨씬 더 리스크가 크고 자료가 방대해서 아직 오차가 큰 영역인데 노하우가 쌓여갈수록 점점 정확도가 높아지고 있다.
영상문화가 일상화되면서 영화 흥행에 마케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요즘에는 할리우드와 충무로 모두 마케팅 비용이 제작비에 맞먹을 정도로 크다. 물량공세를 해야만 흥행을 기대할 수 있을 만큼 영화 흥행은 점점 작품 자체의 완성도보다는 이벤트나 입소문의 영역이 되어가고 있다. 그만큼 정교한 예측이 필수적인데 최근엔 마케팅 비용을 어느 정도로 집행할지를 빅데이터가 결정하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시장을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릴펄스(Reel Pulse)는 박스오피스를 추적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신작 영화가 개봉하기 8주 전에 흥행성적을 예측해 스튜디오가 사전에 보다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을 전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들이 흥행을 예측하는 무기 중 하나는 소셜 미디어다.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단어를 형태소 단위로 분석해 긍정적인 메시지와 부정적인 메시지로 나누고, 두 개의 비율에 따라 흥행 가능성을 구체적인 수치로 예측하는 것이다.
엔터테인먼트 관련 소셜 미디어 여론 분석업체 피지올로지(Fizziology) 역시 소셜 미디어 빅데이터를 이용해 영화의 흥행 예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피지올로지는 2009년 서비스 개시 이후 영화 500편 이상의 박스오피스 실적을 추적해왔는데, 각 영화마다 개봉 4주 전부터 개봉 후 3주까지의 기간에 걸쳐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등 소셜 미디어의 연관 단어들을 수집하고 이를 분석해 ‘이프스코어(Eff-Score)’라는 순위 산출 서비스를 내놓았다. 피치올로지는 이를 바탕으로 분석 내용과 흥행 예측을 담은 주간 보고서 ‘무비 트래커(Movie Tracker)’를 영화 스튜디오에 제공하고 있는데 정확도가 95% 수준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도 최근 빅데이터 붐에 힘입어 영화 흥행 예측에 빅데이터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2013년 6월 빅데이터 아카데미의 한 연구팀이 개봉영화의 흥행 성적을 빅데이터로 예측하는 연구를 진행했는데 결과는 세 편 중 두 편의 흥행 스코어를 일정 범위 내에서 맞출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관객 수를 총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균등하게 구분해 30만명 미만, 30만~100만명, 100만~220만명 등 9개의 카테고리로 나누고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해당 영화가 어떤 카테고리에 들어갈지를 예측했는데, 개봉 후 흥행 최종 스코어와 비교해보니 두 편은 정확히 맞혔고, 한 편은 100만명 이상을 예측했으나 결과는 95만명으로 비교적 근사치에 가깝게 틀렸다. 이 연구는 감독, 배우, 배급사 등의 정형 데이터와 관객의 호감도라는 비정형 데이터를 혼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후자의 경우, 개봉 15일 전까지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영화평 84만여 건을 수집해 단어를 긍정/부정으로 나누어 스코어링했는데, 분석 결과 영화 흥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감독 - 배우 - 감성 데이터 - 배급사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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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흥행에 빅데이터 분석이 도입되면서 더이상 영화 제작은 감에 의존한 도박이 아닌 예측 가능한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일에나 양면이 있는 법이다. 예측 가능한 시장이 된다는 것은 투자자에겐 리스크를 줄여주기 때문에 반가운 일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흥행이 잘 안 될 것으로 예측된 영화는 아예 만들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공존한다. 대자본이 투여될수록 어느 정도의 흥행을 담보할 수 있는 안전지향 위주의 영화만 만들어진다면 오히려 영화계는 활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최근 10년간 대기업 체제로 재편된 충무로에서 이런 변화를 목격해오기도 했다.
넷플릭스가 빅데이터를 이용해 성장해온 사례를 통해 영화계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영화를 될 영화, 안될 영화로 단순하게 이분법으로 나누어 안될 영화를 폐기해버리지 말고, 정교한 흥행 예측을 통해 잘 안 될 것 같지만 의미 있는 영화는 예상되는 흥행 스코어에 맞추어 규모를 줄여서 제작하는 것이다. 둘째, <하우스 오브 카드>처럼 어느 정도의 예상 관객을 담보할 수 있는 영화라면 그외 부분은 과감하게 제작자의 역량에 맡기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의외의 ‘대박’이 터질 수도 있다. 대박은 블랙스완이어서 빅데이터의 레이더에 결코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세계 영화제작 및 소비시장 동향과 시사점 - 한국콘텐츠진흥원
https://www.kocca.kr/knowledge/abroad/deep/__icsFiles/afieldfile/2013/04/12/HiQRJe3zWRlg.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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