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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확실하게 깨닫는 것이 있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면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미디어법이나 쌍용차 사태 같은 심각한 상황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지만
직접 연관된 사람들이 아니면 그다지 큰 의욕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 그렇군.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이 세가지 문장으로 끝나는 것 같다. 분명히 뭔가 심상치 않고
안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나서기는 싫은 거다.
'귀차니즘'의 사회화라고 할까.
작년 쇠고기 파동처럼 당장 쇠고기 먹으면 죽는다고 해야 거리로 나온다.
그건 바로 자기 자신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의 무의식을 탓할 수만은 없다.
그런 사람들이 뽑은 대표자가 바로 지금 국회의원이고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난장판인 국회와 독선적인 대통령. 하지만 그게 바로 우리 모습이다.
우리 나라의 정치는 딱 우리 나라 국민들의 수준을 대변하고 있다.
'국민의 힘은 무섭다' 나는 정치인이 하는 이런 말은 그냥 수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멍청한 국민들 덕분에 호위호식하는 매국노, 파렴치한들이
지금 정권을 쥐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에 국회에서 그 난리를 친 미디어법은 법률안 통과의 효력이 인정된다면
아마도 멍청한 국민들을 더 멍청하게 만들 것이다.
간단히 요약해서 대기업과 신문에게도 방송을 허락한다는 법인데
대기업과 자본력이 탄탄한 신문이 한번이라도 서민의 편인 적 있었나?
앞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고 캠페인하고 난리치지만
뒤로는 복지예산 깎는 법안이나 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이들이다.
그래도 그런 조삼모사에 사람들은 곧잘 속아넘어간다.
흠... 원래 미디어법에 대해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지 미디어산업 구도를
분석해보자는 취지로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시작부터 조금 흥분했다.
다시 가라앉히고 시작해보자.
신문법, 방송법, IPTV법으로 구성된 미디어법의 핵심요지는 앞서 말했던 대로
대기업과 신문에 방송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지분 관계나 경영권 등의 자세한 사항은 이미 많이 보도가 되었으므로 논외로 하자.
이 법을 환영하는 보수신문에서는 미디어 빅뱅이니
한국판 타임워너나 폭스의 등장이니 하는
미사여구를 동원하는데 정말 그게 맞는 말일까?
타임워너는 1989년 타임과 워너커뮤니케이션이 합병하여 만들어진 회사로
타임 같은 출판물을 만들면서 워너브러더스라는 영화배급사와 CNN TV 등을
소유하고 있다. 수십번의 M&A를 통해 지금의 거대한 미디어제국을 일구었는데
사실 돌이켜보면 실패한 M&A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AOL 인수 실패다. 당시 야후와 함께 미국 인터넷시장을 양분했던
AOL을 인수하며 AOL 타임워너로 사명도 바꾸었지만 결국 전혀
시너지효과를 내지 못하면서 2년만에 둘은 갈라서게 되었다.
폭스는 뉴스코퍼레이션을 운영하는 루퍼트 머독이라는 미디어 재벌의 야욕에 힘입어
미국, 유럽, 아시아를 아우르는 거대한 미디어제국을 만들었는데
작은 케이블 채널에 불과했던 폭스TV는 미국의 지역방송국을 차례로 인수하면서
미국의 유력 네트워크로 성장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그 엄청난 식욕이 부작용을 일으켜 머독의 아들이 아시아의 스타TV를
매각하기로 했다고 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선 모습이다.
그동안 미디어 관련 연구에서는 원소스 멀티유즈니 하면서 하나의 콘텐츠가 히트하면
연달아 다양한 플랫폼에서 엄청난 대박을 칠 것처럼 환상을 갖게 만들었지만
사실 콘텐트 사업이라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큰 위험성을 갖는 사업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콘텐츠가 실패하게 되면 모든 플랫폼에서 실패를 보기 때문에
그만큼 더 망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미국은 레이건 시대에 미디어법이 수정되어 미디어빅뱅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여론의 다양성 측면에서 엄청난 후퇴를 겪었다.
지금 ABC, CBS, NBC 그리고 FOX를 보라.
ABC는 디즈니, CBS는 소니, NBC는 MS, FOX는 뉴스코프라는 대기업의 손에서
그들을 대변하고 있다. 마치 누가 더 보수적인지 경쟁하는 듯하다.
타임워너나 폭스 모델이 성공적이라고 나는 결코 생각하지 않지만
과연 지금 미디어법으로 인해 이런 모델이 한국에서 나올 수 있는지를 한 번 따져보자.
일단 지금 방송진출에 의욕을 표현한 곳은 대략 3곳 정도이다.
중앙일보가 Q채널을 운영하던 경험으로 종편을 기대하고 있고,
동아일보가 자사출신 최시중과 이동관을 등에 업고 의욕적으로 종편을 추진하고 있으며,
매일경제가 MBN과는 별도의 조직으로 종편 신설을 기획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대부분 계획이 없다고 잘라말하고 있는데 업계에서는
만약 대기업이 진출한다면 KT 혹은 SKT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조선일보는 방사장이 워싱턴에서 "방송을 하면 빨리 망하고
방송을 하지 않으면 천천히 망한다"라고 발언한 이후로 방송진출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다시 종편 추진으로
돌아섰다고 하는데 아직 정확한 진의는 잘 모르겠다.)
종편 즉 종합편성채널이라는 것은 기존의 케이블 혹은 위성방송의 형태로
보도를 포함한 드라마 오락 등을 다양하게 다룰 수 있는 방송을 말한다.
풀이해보자면 기존의 YTN이나 MBN에 드라마나 오락을 덧붙이거나
tvN에 뉴스 시간을 추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런 채널을 2개 혹은 3개 신설하겠다는 것이 이번 방통위의 업무보고 내용이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이런 채널을 몇 개 더 만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미 한국의 미디어 시장은 포화상태여서 방송사 역시
해마다 줄어드는 광고매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심지어 동양그룹은 잘나가는 케이블채널을 매각할 구상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기업 수는 정해져 있고 미디어에 광고할 수 있는 돈도 크게 늘어나기 힘들다.
그렇다면 결국 새로 생길 종편과 기존의 방송사가 그 광고를 나눠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 말은 결국, 지금 지상파 3사와 케이블로 확연하게 구분되어 있는 구조가
지상파 3사의 수입 감소와 이로 인한 방송 퀄리티 저하로 인해
그 경계가 어느 정도 누그러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처럼
여기저기에서 시청률 경쟁을 위해 저질 프로그램들을 양산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죽기살기식 경쟁으로 가지 않으려면 방법은 기존의 미디어시장을 놔두고
신문과 대기업이 효과적으로 방송시장에 진출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 그 방법은 기존의 지상파 지분 인수일 것이다.
중앙일보가 과거 자신들이 놓았던 KBS2의 재인수를 추진한다는 것이나
조선일보가 MBC를 인수하기 위해 TF를 움직였다는 설 등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지상파의 디지털 전환과 맞물려 지상파의 비어있는 채널에 대한
지상파 방송 신설 논의도 있지만 이것은 또다른 허가권에 관한 것이므로 논외로 하자.)
그런데 이렇게 미디어간 짝짓기를 통해 하나로 합쳐진다고 해서
미디어산업이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매출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니까 성장이라고 할 수 있나?
신문과 방송의 겹치는 인력을 구조조정해서 효율적으로 몸집을 줄일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매체간 인력통합과 구조조정은 그 무자비한 루퍼트 머독도
효율성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중에 후회했던 발상이다.
결국에는 신문사가 방송을 접수하고 폭스처럼 덩치를 키우려면
세계로 진출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세계 각지의 광고시장에서 광고를 수주해 매출을 올리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것은, 이번의 미디어법이 아니더라도
거대 신문사는 그들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얼마든지
외국에 나가서 미디어사업을 할 수 있었다.
기껏해야 한인 교포사회에 영자신문을 만들어 뿌리는 것 말고
진짜 컨텐츠를 만들어 그 나라 언어로 사업할 수 있는 길이 충분히 열려있다는 거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노력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갑자기 타임워너니 폭스니 하는
글로벌 기업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타임워너나 폭스는 방송보다는 영화로 더 유명한 회사들 아닌가.
조선일보나 중앙일보가 MBC나 KBS2를 인수한다고 갑자기 타임워너가 되는건가?
정말 타임워너가 되고 싶다면 차라리 영화를 만들어라.
내가 볼 땐 그편이 미디어산업을 위해서나 사양산업인 신문사의 변신을 위해서나
훨신 더 나은 선택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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