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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부터 2020년 1월까지 봉준호 감독이 미국에서 한 인터뷰를 모아서 재구성했습니다.


출처:

Landmark Theatre, LA (Interview with Pete Hammond (Deadline Hollywood), 2019.10.12)

Writers Guild Theatre, LA (Interview with Rian Johnson, 2020.1.18)

Collider FYC Screening Series (Interview with Scott Mantz, 2020.1.18)

Santa Barbara Film Festival (Interview with Scott Feinberg, 2020.1.23)



1. 영화의 시작 - 왜 기생충인가

The Beginning of the film - Why Parasite?


Q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 시의적절해요. 언제 이런 주제의 영화를 구상하셨나요?


A 2013년 겨울에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설국열차' 후반작업할 때예요. ‘설국열차’와 연결되는 주제인데요. SF 장르가 아닌 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현실적인 인물들로 비슷한 주제를 풀어 보고 싶었어요.



Q 이 작품을 쓰는데 얼마나 걸렸나요?


A 2015년 15페이지 스토리라인을 썼어요. 그때는 지하실이 없었어요. 부자와 가난한 가족 두 가족만 있었어요. 2017년 가을 4개월 동안 시나리오 쓸 때 지금 이야기가 다 나왔어요. 세 번째 가족이 나오면서 이야기 구조가 만들어졌어요.


Q 처음엔 제목을 보고 ‘괴물(The Host)’와 비슷한 영화인 줄 알았어요.


A 기생충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SF영화처럼 보이기도 하고 ‘바디 스내처스’처럼 뭔가 몸속에서 튀어나올 것 같기도 하죠. 그래서 ‘괴물’의 속편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쩨쩨한 아이디어는 아니었어요.



Q 영화 속 아들처럼 부잣집 과외를 한 적 있다고요?


A 한국에선 대학생들이 과외를 많이 하는데요. 저도 부잣집에서 중학생 남자 아이에게 수학을 가르친 적 있어요. 지금 아내가 된 그 당시 제 여자친구가 그 소년에게 국어 과목을 가르치고 있었어요. 그 집에서 수학 과외가 필요하다고 해서 저를 소개시켜준 거죠. 영화에서처럼 자연스럽게 침입이 이뤄졌습니다(웃음). 저도 나중에 미술 과외할 사람을 소개시켜주려고 했는데 두달 만에 짤리는 바람에 더 진척되진 않았어요.


소년이 살던 집이 정말 부잣집이었어요. 고급 빌라 2층에 개인 사우나를 저에게 보여줘서 정말 놀랐어요.



2. 파트너 - 어떻게 팀을 꾸렸나

Partnership evolving


Q ‘기생충’은 당신이 10년 만에 처음 만든 한국어 영화죠. 송강호 씨와는 네 번 작업했지만 다른 배우들은 처음이에요. SAG 앙상블 상을 받았는데 어떻게 캐스팅한 건가요?


A 제가 가장 잘한 일이 캐스팅인 것 같아요. 10명의 앙상블 중 송강호 씨와는 오랫동안, 이정은, 최우식 배우와는 ‘옥자’에서 함께 일을 해봤지만 다른 7명은 처음 함께 작업한 배우들이었어요.


저는 오디션을 싫어해요. 사무실에서 만나서 연기를 해보라고 하고 그걸 보는 것이 불편하고 어색해요. 대신 배우들의 단편영화, 인디영화, 공연을 직접 보는 것을 좋아하죠. 그렇게 7명의 배우를 채워나갔어요. 가장 마지막에 가장 힘들게 캐스팅한 배우는 지하실의 남자 근세 역할의 박명훈 배우예요. 워낙 독특하고 정상과 비정상 사이를 오가는 인물인데다 관객에게 알려지지 않은 얼굴을 캐스팅해야 했어요. 제가 좋아한 인디 영화에 그가 출연한 걸 보고 캐스팅했어요. 박명훈 배우가 참여함으로써 마지막 퍼즐이 맞춰질 수 있었죠.



Q 송강호 배우와 네 번째 작업했습니다. 어떻게 그를 만났나요?


A 제 데뷔작이 ‘플란다스의 개’인데 영어로는 ‘Barking Dogs Never Bite’라는 우스꽝스런 제목의 연쇄 강아지 살인마 이야기였어요. 흥행에서 완전히 망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영화를 과연 찍을 수 있을까 생계 걱정을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다음 영화는 진짜 연쇄 살인범 이야기를 해보자고 생각했고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를 써서 송강호 씨에게 보여줬습니다. 당시 송강호 배우는 이미 톱스타였어요. 그가 흔쾌히 출연하겠다고 해주셔서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홍경표 촬영감독


Q 홍경표 촬영감독과 ‘마더’ ‘설국열차’에 이어 세 번째 작업했죠. 그와의 작업은 어땠나요?


A 그는 정말 미친 사람이에요. 아름다운 이미지에 항상 사로잡혀 있어요. 1997년 제가 조감독할 때 그가 포커스 풀러였어요. 각자의 길을 가다가 ‘마더’ 때 다시 만났어요. 그는 사적인 생활이 별로 없는 사람이에요. 24시간 동안 이미지와 촬영 생각만 합니다. 밥 먹고 계속 영화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에요. 평소에도 스틸 사진을 많이 찍어요. 촬영 도중에도 세트 사진을 찍어요. 사진집을 낸 적도 있어요. 그만큼 이미지에 매혹되어 있는 사람이죠.


우리 둘은 로케이션 돌아다니면서 미친 듯이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요. 서로의 사진을 비교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런데 이번 ‘기생충’은 대부분 세트 촬영이라서 사진 찍을 일이 별로 없었죠. 그래서 둘다 그것 때문에 되게 괴로웠어요.



3. 제작 과정 - 어떻게 만들었나

In Production - Actual filming


Q 반지하 아파트는 어디서 찾은 건가요?


A 그거 다 세트로 지은 겁니다. 부잣집, 가난한 집, 그리고 가난한 집에 홍수가 날 때 주변 골목길과 이웃까지 전부 수영장 위에 세트로 지었어요. 촬영하다가 마지막 이틀 동안 물을 집어 넣고 배우들과 제가 들어가서 찍은 거죠. 보기엔 더러워 보여도 깨끗한 물이에요. 머드로 흙탕물처럼 보이게 했어요. 피부에는 좋죠(웃음). 이하준 미술감독이 집요하게 리얼리즘을 추구하시는 분인데 엄청나게 노력했어요. 문짝 창틀 재료, 이웃들 벽을 실제 철거촌에서 재료 띄어와서 붙였어요. 질감이 리얼하죠. 음식물 쓰레기도 갖다 놔서 세트장에서 냄새가 나기도 했어요.



Q 계단 장면은 어떻게 찍었나요?


A 감독이라면 누구나 비오는 장면을 멋지게 찍고 싶은 욕심이 있죠. 영화의 90%를 세트에서 촬영했고 10%만 로케이션인데 계단 장면이 그중 하나예요. 계단 장면은 로드무비처럼 찍고 싶었어요. 위에서 아래로 수직적으로 내려오지만 그 장면이 길을 따라 계속 이어지는 로드무비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이 장면이 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것 같지만 7개의 로케이션을 이어 붙인 거예요. 가장 긴 계단이 있는 곳이 가장 오래 나오는데 그곳을 서울 모처에서 발견했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Q 마지막 장면은 어떻게 준비했나요?


A 클라이막스 장면은 생각보다 정말 빨리 찍었어요. 지하실에서 살던 남자가 세상 밖으로 나와서 처음 태양을 보는 날이기 때문에 강렬한 햇빛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뙤약볕이 내리쬐는 아주 더운 날 그 장면을 촬영했어요.



Q 부잣집은 어떻게 지었나요?


A 이하준 미술감독이 고생을 많이 했죠. 오픈세트 터에 정원과 1층을 짓고 2층 내부와 지하실은 별도 사운드 스테이지에 짓고 비주얼 이펙트로 합쳤어요.


제가 처음 구상한 부잣집 설계도를 미술감독이 실제 건축가에게 보여줬어요. 그런데 건축가가 “집을 이렇게 짓는 사람은 없다. 바보들이나 이렇게 짓는다”고 하더라고요. 미술감독이 마술사처럼 제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면서도 건축적으로도 믿을 만한 집을 만들어줬어요. 이번에 오스카 미술상 후보가 돼서 기뻐요.



4. 장면 해설 - 어떤 의미를 담았나

Comments about some scenes


Q 돌은 어떤 의미인가요?


A 그냥 돌이에요. 아들 기우(최우식)가 자기 입으로 “상징적이야”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말은 보통 영화를 보고 나서 기자나 평론가들이 하는 말인데 영화 속 인물이 하고 있으니 되게 이상하죠. 저는 오히려 그게 상징적인 게 아니라고 봐주기를 바랬던 것 같아요. 뒷부분엔 그 돌이 흉기로 돌변해 머리를 가격당해 피가 묻게 되는데 되게 물리적이에요.


아들 관점에서 보면 돌에 집착과 강박이 있는 것은 사실이죠. 그 돌은 부자들의 세계에서 온 거잖아요. 돌에 돈을 들이는 세계, 2층 집을 돌로 채울 수 있는 세계에서 온 거고 자기도 그런 세계로 가고 싶지만 잘 안 되는 거죠.



Q 아버지 기택이 아들에게 “계획이 없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팔로 얼굴을 가리는 이유는 뭔가요?


A 사실 그 대사가 아버지가 아들에게 할 소리는 아니잖아요. 기택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힘들었던 삶의 냄새가 나는 장면이죠. 스토리보드에도 팔로 얼굴을 가리는 것을 그렸고 송강호 배우도 그런 자세를 마음에 들어했어요. 그 장면에서 기택의 눈이 보이지 않고 입만 움직입니다. 그밖에도 영화에 기택이 눈을 감는 장면이 몇 번 있어요. 마지막에 기택이 칼로 찌르기 전에도 눈을 찔끔 감습니다. 갑자기 박사장을 칼로 찌르고 나서 후회가 밀려오지만 때는 이미 늦었죠. 자기가 저지른 일에서 피하고 싶은 마음이 복합적으로 들어 있어요. 그런 어찌할 수 없는 자조적으로 슬픈 감정을 눈을 감는 것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송강호) 저는 연기할 때 두 가지 생각이 있었어요. 하나는 자조적인 슬픔을 표현하려 했고요. 다른 하나는 기택이 아들에게 “계획이 없다”고 하긴 했지만 진심은 아니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 장면에 딱히 정답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을 필요도 없지 않을까 싶어요.



5. 개봉 이후 - 전세계 호평 이유

After opening - Why the film get universal acclaim?


Q 전세계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데 나라마다 반응이 다른가요?


A 프랑스 칸을 비롯해 독일, 호주 시드니, 미국 등에서 관객과 함께 영화를 봤는데 객석 반응은 비슷해요. 웃음을 터뜨리는 부분이나 공포감을 느끼는 부분이 전반적으로 비슷한 것 같아요. 가난한 사람이 사는 반지하라는 공간이 한국만의 특이한 공간이어서 다르게 느낄 수는 있지만 일단 영화 속에서 그들이 와이파이를 찾기 시작할 때 관객도 마음을 열어요. 우리 모두 와이파이 찾아 헤맨 경험이 있잖아요.



약간 특이한 경험은 독일 뮌헨 상영 때였어요. 마지막에 냉장고를 여는데 독일 소시지와 맥주가 들어 있는 걸 보고 광적인 폭소가 터졌죠.


Q 독일 사람을 웃게 만들다니, 그건 정말 대단한 겁니다(웃음). 영화는 예측 불가능해서 더 놀랍습니다. 어떤 영화들은 너무 뻔한데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죠. 희극과 비극이 섞여 있어요.


A 한국말로 ‘희비극’이라고 하는데 시나리오 쓸 때 의식하지는 않고요. 그냥 씁니다. 마케팅 팀은 항상 힘들어해요. 도대체 장르가 뭐예요? 라고 물어보죠. 그런데 저도 무슨 장르인지 잘 몰라요.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건데 보는 분들은 희한한가 봐요. 칸영화제에서 어떤 미국 기자가 “너무 고민 말자. 봉준호가 장르다”라고 표현해주셔서 기뻤습니다.


Q 영화에 악당이 없습니다. 모든 인물이 모호해요. 다들 비슷하기도 하고 또 전혀 다르기도 해요.


A 가난한 사람은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지만 귀엽게 보이고, 부잣집 사람들은 얌체 같지만 나름대로 좋은 사람들이어서 애매하죠. 이렇게 모호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예측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Q 설국열차, 옥자, 기생충 등 모든 영화가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 건가요?


A 사회적인 코멘트를 하려고 영화를 만든 적은 없어요. 장르적 재미가 있는 영화를 하려고 하죠. 그런데 저는 인물들에게 관심이 많아요. 인물들에 대해 파내려가다 보면 사회, 역사와 저절로 연결이 돼요. 무인도에서 평생 사는 사람을 찍지 않는 이상은요.



Q 영화 만들 때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 알았나요?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고 생각하세요?


A 전혀 예상을 못했어요. 그냥 평소 하던 대로만 했어요. 대신 이런 건 있었어요. 작년 3월 영화 완성했을 때 후회가 되는 부분이 별로 없더라고요. 보통 영화를 만들면 후회가 남는데 이번엔 그런 게 없었어요. 하지만 칸영화제부터 오스카까지 이렇게 오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죠.


왜 이렇게 잘 됐냐고요? 그날 비오는 날 밤 가정부가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웃음).



Q ‘기생충’을 HBO에서 애덤 맥케이와 함께 TV시리즈로 만든다고요?


A TV시리즈 계획은 처음부터 있었어요. 2시간짜리 영화엔 넣을 수 없었던 아이디어가 제 아이패드에 쌓여 있어요. 그걸 풀어내려고요. TV시리즈라기보다는 6시간짜리 영화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영화를 만들 때 시간에 맞추느라 생략한 부분이 많아요. 예를 들어 원래 가정부 문광(이정은)이 비오는 밤에 돌아올 때 얼굴을 보면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잖아요. 영화는 설명을 안 해주지만 저는 그 스토리도 갖고 있어요. 또 민혁(박서준)과 부잣집 아내 연교(조여정)와의 미묘한 관계, 건축가 남궁현자 선생이 왜 문광에게만 지하 벙커를 알려줬는지 등 TV시리즈에는 더 자세한 이야기가 담길 겁니다. 저는 제가 구상했던 아이디어를 제작자인 애덤 맥케이에게 던져주려고 해요. 그가 알아서 잘 만들겠죠.


Q 다음 계획은 뭔가요?


A 다음 프로젝트로 한국어 영화와 영어 영화를 하나씩 준비하고 있어요. 몇 년 전부터 준비하던 것이에요. 이번 '기생충' 관련 상황 때문에 바뀐 것은 전혀 없어요. 둘 다 작은 규모의 영화예요. 드라마에 집중하는 영화고 시상식 시즌이 끝나야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시나리오 아주 초기 단계예요.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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