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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글을 쓴다는 것은 남자들의 특권이었다. 여자가 쓴 글은 아무도 읽지 않았다. 재능있는 여자들은 이런 말을 들었다. “저자가 여자라는 게 밝혀지면 책이 안 팔려요.” “저 책들에서 빳빳한 소리나죠? 아무도 펴보지 않은 거죠.”
영화 '콜레트'
19세기말 프랑스 부르고뉴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키이라 나이틀리)는 20대에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은 ‘클로딘’이라는 소설을 썼다. 작가인 남편은 이를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했다. 콜레트는 책을 낼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이 의외로 잘 팔리면서 파리에서 클로딘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자 작가의 아내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녀는 차기작은 공동저자로 하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거짓으로 쌓아올린 명성이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한 남편은 화를 냈다. 오히려 그녀를 방에 가두고 얼른 글을 쓰라고 압박했다. 남편은 도박과 방탕한 생활에 빠져서 책이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줘도 곤궁한 처지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녀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영화 '더 와이프'
20세기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된 조안 캐슬먼(글렌 클로스)은 남편 조셉(조나단 프라이스)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유부남 교수였던 조셉에게 빠져 끝내 결혼하고 함께 살아온 수십 년의 세월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조셉의 전기를 쓰겠다며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나다니엘(크리스찬 슬레이터)은 스웨덴 한림원까지 쫓아와서 조안에게 넌지시 말한다. “사모님이 학창시절 쓰신 소설 정말 좋더군요. 하지만 그때 조셉의 소설은 수준 이하였어요. 두 분이 결혼하고 조셉의 소설은 이상하게도 갑자기 훌륭해졌어요. 이젠 진실을 털어놓아도 괜찮아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못한 채 평생을 남편의 유령작가로 살아온 조안은 그 순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지만 단단했던 마음은 흔들리고 있다. 그녀는 노벨상 시상식을 앞두고 한껏 들뜬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말한다. 남편은 모든 영광을 아내에게 돌린다는 수상소감을 남기지만 그 순간 조안은 자리를 박차고 연회장을 빠져나온다.
영화 '콜레트'
한 달 간격으로 개봉한 두 영화 ‘콜레트’(3월 27일 개봉)와 ‘더 와이프’(2월 27일 개봉)는 남편의 유령작가로 살아온 아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 전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프랑스의 작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실화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작품이고, 후자는 메그 윌리처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각색한 창작물이다.
“펜을 쥔 자가 역사를 쓴다.” 영화 ‘콜레트’에서 남편이 하는 이 말은 시대상을 함축한다. 그동안 펜을 쥔 자는 늘 남성이었다. 역사속에서 많은 여성들이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재능을 썩혀야 했다.
‘프랑켄슈타인’을 쓴 영국 작가 메리 셸리는 출판사에서 연이어 거절당한 뒤 이 책의 초판을 시인인 남편 퍼시 비시 셸리의 이름으로 출간해야 했다. 나중에 진짜 저자가 아내임이 밝혀지면서 이후 그녀의 이름이 책에 새겨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970년대까지도 퍼시 셸리 시집의 편집자로만 여겨져왔다. 여성인권 운동가인 엄마의 영향을 받은 급진적인 그녀의 작품세계에 대한 평가는 한참 후에야 이루어졌다.
젤다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인 남편 스콧 피츠제럴드의 그늘에 가려 죽을 때까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녀는 사망 후 20년이 지난 후에야 재평가받았다. 젤다는 1932년 장편소설 '왈츠는 나와 함께'를 썼지만 남편 스콧은 자신의 소설에 쓸 내용이 들어갔다며 글을 대폭 수정하게 했다. 이후 젤다의 소설과 에세이는 상당수 남편과의 공저로 출판됐다. 스콧은 젤다가 쓴 편지와 에세이의 표현들을 자신에 작품에 베껴썼다. 젤다는 ‘위대한 개츠비’ 속 문장을 빌려 이런 말을 남겼다. “피츠제럴드 씨는 표절은 집안에서 시작된다고 믿나 봐요.”
서스펜스의 대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아내 알마 레빌의 도움 없이는 걸작을 연이어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레빌은 그 자신이 뛰어난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이었지만 남편의 작업을 위해 자신의 역할을 공동 각본가로 한정시켰다. 오늘날 히치콕과 알마 레빌이 함께 만든 영화는 대부분 히치콕의 영화로 기억된다. 이처럼 영향력 있는 자가 크레딧을 독차지하는 현상을 ‘마태효과’라고 한다.
풍요로운 자는 더 풍요해지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진다는 마태효과를 처음 발견하고 연구한 사람은 미국의 사회학자 해리엇 주커먼이라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마태효과는 그녀의 남편인 로버트 킹 머튼의 업적으로 알려져 있다. 주커먼이 아무리 자신의 연구를 알리려고 해도 저명한 사회학자였던 남편 머튼의 한 마디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주커먼은 자신의 연구성과를 남편에게 빼앗긴 셈이 됐다.
영국의 생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DNA 나선구조를 처음 발견했지만 모든 업적은 남자 과학자들이 가져갔다. 제임스 왓슨, 프랜시스 크릭, 모리스 윌킨스가 이 연구로 1962년 노벨상을 받을 때 프랭클린은 그들의 조수처럼 언급됐다. 여성이 그렇게 어려운 방정식을 풀고 그렇게 뛰어난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을 리 없다는 선입견이 프랭클린이 무시당한 이유였다.
하지만 오늘날 프랭클린은 DNA의 어머니로 재평가받고 있고, 젤다는 남편을 제치고 TV시리즈와 영화의 주인공으로 재소환됐다. 역사는 느리긴 해도 결국 시시비비를 가려준다.
영화 '콜레트'
다시 영화로 돌아오자. 콜레트와 조안이 자신의 이름을 숨긴 채 글을 쓰게 만든 힘은 사랑이었다. 그들은 남편을 사랑했기에 이름을 빼앗겨도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비대칭적인 것이었다. 희생은 오로지 아내의 몫이었고 남편들은 아무 것도 잃지 않았다. 사랑이 식어가면서 두 여성은 현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유령작가로 살지 않기로 결심한 두 여성은 그러나 이후 전혀 다른 선택을 한다. (스포일러 주의) 남편의 바람기를 수시로 눈감아주며 살던 콜레트는 스스로의 의지로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난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아무 것도 모르는 날 당신의 욕망을 실현할 도구로 만들었어. 내가 못 벗어날 줄 알았겠지. 하지만 틀렸어. 클로딘은 죽었어. 당신이 배신했지. 나는 클로딘을 넘어섰어.”
영화의 모델인 실존 인물 콜레트 역시 남편과 이혼한 뒤 자기 이름으로 소설을 발표하고 뮤지컬 배우, 안무가, 연극 연출가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했다. 시대의 아이콘이 된 그녀는 프랑스 콩쿠르 아카데미 최초의 여성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안 K 롤링은 수시로 콜레트가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밝혔다.
영화 '더 와이프'
하지만 조안의 선택은 콜레트와 다르다. 그녀는 결정적인 순간 머뭇거린다. 영화 내내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그녀는(그러면서도 삶에 균열이 일어나는 과정을 미세한 표정 변화로 담아낸 글렌 클로스의 명연기!) 마침내 크게 동요하며 모든 걸 폭로할 듯 보였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자신의 말 한 마디에 남편의 커리어가 끝장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다시 깊은 침묵 속으로 들어간다. 남편을 향한 연민의 정, 그리고 젊은 시절 자신이 선택한 삶에 대한 정당화가 그녀를 돌려세운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으로 글을 쓰긴 하겠지만 과거는 영영 되찾지 못할 것이다. 고구마처럼 답답하긴 하지만 스스로 인생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현실적인 엔딩이다.
콜레트와 조안은 여성이 펜을 잡지 못하던 시대, 재능을 발휘할 기회조차 잃어버린 여성을 대표한다. 그 시절 자아실현에 목마른 이들이 재능을 발휘할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의 유령작가가 되는 것뿐이었다.
영화 '콜레트'
지난 시절 많은 여성들이 남편들의 유령작가로 살아왔다. 결혼 후 커리어가 단절된 채 누군가의 아내로, 엄마로 불리며 뒷바라지 하기를 암묵적으로 강요받아왔다. 나중에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날아간 것을 깨달았을 때에도 대부분의 여성들은 조안처럼 과거의 자신을 부정하지 못하고 시간 속에 묻는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하지만 콜레트는 달랐다. 그녀는 뒤늦게 깨달은 것을 실천했고 그 자신이 창조한 소설 속 캐릭터인 클로딘처럼 자유롭게 살았다. 콜레트처럼 스스로의 삶을 개척한 선구자가 있었기에 지금만큼의 여권신장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매일경제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http://premium.mk.co.kr/view.php?no=25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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