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블랙클랜스맨’은 스파이크 리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준 걸작이다. 2018년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고, 2019년 아카데미 영화상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등 후보에 올라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대사 중 하나는 “America First!” “Make America Great Again!”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슬로건을 영화 속 KKK 단원들은 틈만나면 외친다. KKK(쿠 클럭스 클랜)는 1860년대 창설된 백인우월주의 폭력단체로 현재도 여전히 명맥을 유지한 채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 이 영화의 노림수는 분명하다. 트럼프는 KKK와 다를 바 없으며, 이는 트럼프가 KKK의 부활을 방관하고 있다는 데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영화 '블랙클랜스맨' 포스터
2시간 25분의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는 2시간 가량 1978년에 실제로 있었던 실화에 기초한 픽션을 보여주고, 후반부 10분 동안에는 2017년 버지니아주의 대학도시 샬러츠빌에서 벌어진 KKK와 흑인 인권단체의 충돌 현장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것이 단지 40년 전 과거 일화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역사임을 주지시킨다. 스파이크 리 감독은 ‘말콤 X’에서도 이처럼 과거의 픽션과 현재의 다큐멘터리를 교차시킨 적 있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방식을 사용해 현실감을 극대화했다. 관객은 영화 속 KKK 리더 데이비드 듀크가 2017년에 실존인물로 등장하는 장면에서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맞은 듯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론 스톨워스를 연기한 존 데이비드 워싱턴(오른쪽)과 백인 아바타 플립을 연기한 아담 드라이버(왼쪽)
영화는 어떤 내용인가?
영화는 1978년 마치 터번을 쓴 것 같은 헤어스타일의 론 스톨워스(존 데이비드 워싱턴)가 콜로라도의 첫 흑인 경찰이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경찰서장이 그에게 서류 작업만 시키자 론은 패기만만하게 언더커버 수사에 자원한다. 그는 흑인 학생단체에 위장잠입해 학생회장인 파트리스(로라 해리어)와 친해짐과 동시에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KKK에도 가입 신청을 한다. 론은 유태인 파트너 플립(아담 드라이버)과 팀을 이뤄 전화통화할 때는 론이 나서고, 직접 만나야 할 때는 플립이 론의 백인 아바타가 되어 상대한다. 영화는 론의 시선으로 상반된 두 단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KKK에는 덜 떨어진 듯한 과격분자들이 모여 폭탄테러를 모의하고 있고, 흑인 학생단체는 과격하게 백인을 공격하려 한다. 두 단체가 맞붙으려는 일촉즉발의 상황, 론의 정체 역시 탄로날 위기에 처한다.
실존인물 론 스톨워스. 왼쪽은 1975년, 오른쪽은 2013년 사진.
1978년에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나?
영화의 내용은 대부분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론 스톨워스도 실존 인물이다. 그는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첫 흑인 경찰관으로 KKK에 침투해 수사했다.
1953년생인 스톨워스는 19세 때인 1972년 경찰학교 사관생으로 기록부서에 발령 받으며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1974년 그는 언더커버 수사에 흥미를 느꼈고 영화에 묘사된 대로 사회주의 시민운동가 스토키 카마이클이 연설한 나이트클럽에 잠입했다.
그가 KKK 단원으로 언더커버 수사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1979년 지역신문에서 KKK 모집광고를 본 직후였다. 첫 통화에서 자신을 흑인, 유태인, 멕시코인, 동양인을 싫어하는 인종차별주의자 백인이라고 밝혀 환심을 산 스톨워스는 접선책을 만나기로 약속하고는 백인 경찰관을 대신 보냈다. 그에게 녹음기를 부착해 모든 대화를 녹음했다.
스톨워스는 9개월 동안 KKK 단원 행세를 했다. 주로 전화로 상대했고 꼭 만나야 할 때만 백인 경찰관을 보냈다. 영화에서처럼 론은 당시 KKK 우두머리였던 데이비드 듀크와 통화했다. 듀크는 회원가입이 늦어지고 있는 점에 사과하고는 직접 싸인한 회원카드를 그에게 보내줄 정도로 스톨워스를 신뢰했다. 스톨워스는 자신의 사무실에 오랫동안 그 회원카드를 걸어놓았다.
KKK 잠입 수사가 마무리된 뒤 스톨워스는 영화에서와 달리 이를 비밀에 붙여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후 그는 유타주로 발령받아 옮겼고 그곳에서 20년 동안 근무한 뒤 2005년 퇴임했다.
론 스톨워스를 연기한 존 데이비드 워싱턴
스톨워스가 KKK 수사에 대해 처음 밝힌 것은 퇴임 직후인 2006년 1월이었다. 그는 솔트레이크 시티의 지역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이를 공개했다. 가장 파장이 일어난 부분은 당시 미 육군과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에서 핵무기를 통제할 권한을 가진 사람 중에도 KKK 단원이 있었음을 폭로한 것이다. 2014년 스톨워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블랙 클랜스맨'이라는 책을 썼고, 이 책의 판권을 구입한 프로듀서 숀 레딕이 스파이크 리 감독을 섭외해 영화를 완성했다.
영화 속에서 론 스톨워스를 연기한 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덴젤 워싱턴의 아들이다. 덴젤 워싱턴은 스파이크 리의 '말콤 X'에서 말콤 X를 연기했다.
1920년 시카고에 모인 KKK 단원들
KKK는 어떤 조직인가?
KKK는 남북전쟁 직후인 1865년 남부 재건을 기치로 내세운 백인들의 친목단체로 시작했다. 드래곤, 싸이클롭스, 위저드라는 직함처럼 처음엔 신세한탄이나 하면서 기분전환하며 노는 게 목적이었다. KKK의 리더는 ‘그랜드 위저드’라 불리는데 초기 그랜드 위저드인 베드퍼드 포레스트(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포레스트의 이름을 따온 그 인물!)는 조직원들이 흑인을 적대시하는 것을 넘어 과격하게 살해하는 지경에 이르자 단체를 해산해버렸다.
이후 잠잠하던 KKK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인들이 미국으로 대거 이주한 1915년 부활해 전성기를 맞았다. 백인우월주의를 내세운 이들은 이제 흑인 뿐만 아니라 유태인, 천주교도들까지 배척하기 시작했다. 유럽 이민자들이 대부분 유태인과 천주교도들이었기 때문이다.
KKK는 1925년 회원수가 무려 500만명에 달할 정도의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다. 본부도 아예 미국 정치의 중심인 워싱턴DC로 옮겨 대규모 퍼레이드까지 벌였다. 이 당시 KKK는 우리가 알고 있는 비밀 결사대가 아닌 공식적인 거대 이익단체였다. KKK가 회원 수를 급격하게 늘릴 수 있던 배경에는 피라미드식 조직 관리가 역할을 했다. 회원이 신입 회원을 유치하면 가입비 중 40%를 떼어주고 그 신입회원이 또 신입을 유치하면 계속해서 수당을 받는 방식으로 회원 유치를 독려한 것이다.
1926년 9월 워싱턴DC에서 가두행진을 벌이는 KKK
조직이 거대해지자 이들은 정치 세력화되어 KKK 단원이 텍사스 주지사로 당선됐는가 하면, 조지아, 앨라배마, 캘리포니아, 오레건주에선 지지 후보를 발표하고 그 후보가 당선됐다. 당시 미국 대통령 중 일부도 KKK의 옹호자이거나 KKK 단원이었다. 우드로 윌슨(재임 1913~1921년)은 KKK의 과격 행동을 눈감아 주었고, 워런 하딩(재임 1921~1923년)은 대통령 취임식에서 아예 KKK 단원이 됐다. 해리 트루먼(재임 1945~1953년) 역시 젊은 시절 KKK 단원이었음을 고백했다.
하지만 KKK의 무리한 사세 확장은 1930년대 후반 역풍을 맞는다. 독일의 인종주의자 히틀러와 공조하려다가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회원들이 급속히 이탈한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 재건이 벌어지고 매카시즘이 휘몰아친 뒤 1960년대 들어 다시 스멀스멀 KKK가 재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때는 자유주의 바람이 불면서 흑인 인권운동이 거세기 일기 시작할 무렵이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흑인들을 상대로 살인, 협박, 폭탄테러를 일삼았다. 영화 ‘미시시피 버닝’에 묘사된 것처럼 일부 KKK에 우호적인 백인 경찰들은 이들의 테러 행위를 눈감아 주었다.
영화 '블랙클랜스맨'에 등장하는 KKK 단원들과 그랜드 위저드 데이비드 듀크
10여년 간 폭력행위를 일삼던 KKK는 1970년대말 FBI가 대대적으로 KKK 소탕작전에 나서면서 와해된다. 영화 ‘블랙클랜스맨’에도 FBI에 관한 대사가 한 줄 나오는데 이때만 해도 FBI는 흑인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무려 48년간 FBI 국장을 역임한 전설적인 존 에드거 후버가 사망한 후 1978년 신임 FBI 국장이 된 윌리엄 웹스터는 후버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업적을 원했고 그 결과로 KKK를 박살내버렸다.
이후 KKK는 고작 5000명 규모의 작은 조직으로 줄어들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최근 KKK는 백인 우월주의에서 탈피해 흑인, 라틴계, 동성애자 등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해 ‘강한 미국’을 건설하는데 주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KKK는 지난 대선에서 이슬람교도 입국을 금지하고 미국-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트럼프를 지지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KKK는 네오나치화 되어 스멀스멀 다시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2017년 8월 12일 샬러츠빌에서 KKK 단원이 시위대를 향해 급발진시킨 차량이 돌진해 1명이 사망하고 19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1년 후인 2018년 8월에도 샬러츠빌에서 흑백 시위대가 충돌했다.
2017년 샬러츠빌에서 어떤 일이 있었나?
지난 2017년 8월 12일 버지니아주의 대학도시 샬러츠빌에서 KKK는 흑인 단체와 충돌했다. 발단은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 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 동상을 철거하려는 시의 계획을 취소하라는 극우 단체들의 시위였다. '대안우파'를 자처하며 나치문양기와 횃불을 들고 나치정권의 구호 "피와 땅"을 외치며 행진한 이들 중에는 KKK 단원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의 시위에 맞서기 위해 흑인 단체와 샬러츠빌 시민들이 맞불집회를 열었고 이 과정에서 끔찍한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KKK 단원 중 한 명이 골목에서 자동차를 급발진시켜 “인종차별 반대”를 외치던 시민들을 들이받은 것이다. 이 사건으로 1명이 사망하고 19명이 부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양쪽 모두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발언해 극우단체를 옹호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영화는 후반 10분 동안 이 사건을 다큐멘터리처럼 담았고, 사망자인 백인 여성 헤더 헤이어를 추모하는 사진과 자막으로 마무리했다.
실존인물 데이비드 듀크
데이비드 듀크는 누구인가?
영화 속에서 스톨워스는 KKK의 리더인 데이비드 듀크와 친해지고, 뉴올리언스에 거주하던 듀크가 콜로라도 조직 관리를 위해 찾아올 때 그를 만난다. 이때 경찰서장은 스톨워스에게 직접 듀크를 경호할 것을 명령해 흑인인 론은 듀크를 경호하고, 론의 백인 아바타인 플립은 론으로 위장해 듀크를 만나 긴장감 넘치면서도 한편으론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펼쳐진다.
영화와 달리 실제로 스톨워스는 듀크를 경호하지 않았지만 흑인 경찰관이 KKK를 경호한 일은 몇 차례 있었다. 흑인 시위대의 규모가 커지자 위협을 느낀 KKK가 경찰에 신변보호 요청을 했고 이에 흑인 경찰관까지 차출된 것이다.
영화에서 데이비드 듀크를 연기한 토퍼 그레이스
데이비드 듀크는 영화의 마지막 다큐멘터리 부분에 깜짝 등장하는 것처럼 실존 인물이다. 1950년생인 그는 KKK의 그랜드 위저드로 대통령 후보에까지 출마한 정치 경력을 갖고 있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고 유태인들을 음모론자라고 여기며 백인이 우생학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2016년 대선에선 트럼프를 공개 지지했으나 트럼프는 그 지지를 (공식적으로는) 거절했다.
듀크는 1970년대 민주당원으로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공화당은 링컨의 유산을 받들어 흑인에게 우호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1970년대 민주당 소속으로 여러 번 루이지애나주 선거에 출마했지만 당선되지는 못했다. KKK가 위축되면서 그는 공금 횡령 혐의로 고발당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듀크는 야심가였다. 백인들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치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진지하게 믿고 있었다. KKK가 와해된 뒤 절치부심하던 듀크는 1988년 전격적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 하지만 민주당 예비 선거에서 떨어지자 포퓰리스트당으로 옮겨 끝내 출마했다. 그 결과 0.04%를 득표하며 꼴찌를 다퉜다.
잦은 출마와 낙선 경력은 그에게 인지도와 동정적인 여론을 심어 주었다. 1989년 그는 당적을 공화당으로 옮겨 루이지애나주 하원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는데 여기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다. 사실 루이지애나주는 공화당 텃밭이기 때문에 본선보다 공화당 후보를 뽑는 내부 선거가 더 치열했는데 듀크는 레이건과 부시가 동시에 미는 존 스파이어 트린이라는 강력한 후보를 꺾으며 파란을 일으켰다. 듀크는 트린이 주의원이 되면 세금을 크게 올릴 거라는 주장을 펼쳐 50.7% 대 49.3%로 아슬아슬하게 승리할 수 있었다.
2016년 연방 상원의원에 출마한 데이비드 듀크
그는 1992년까지 주 하원의원으로 활동했지만 이 자리에 만족하지 않았다. 1990년 연방 하원의원, 1991년 루이지애나 주지사, 1992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1996년 연방 상원의원, 1999년 연방 하원의원 등에 계속해서 출마했다. 하지만 행운은 그에게 두 번 찾아오지 않아 연거푸 낙선이었다.
연이은 출마에 돈이 떨어졌는지 2002년 듀크는 금융계에 끈이 있는 척하고 후원자들에게 돈을 받아 도박한 혐의로 텍사스 구치소에서 15개월 복역하기도 했다. 2016년 듀크는 트럼프의 인기에 고무돼 다시 한 번 연방 상원의원에 출마했으나 트럼프가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결국 3%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D.W. 그리피스 감독의 '국가의 탄생' 포스터
‘국가의 탄생’은 어떤 영화?
영화 속에서 KKK 단원들은 D.W.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1915)을 보면서 흥분한다. 영화가 KKK를 남부를 지키는 정의의 기사단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와해됐던 KKK가 재결집한 데에도 미국 전역에서 대히트한 ‘국가의 탄생’이 큰 영향을 미쳤다.
사실 ‘국가의 탄생’은 영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을 꼽을 때 항상 상위권에 위치하는 작품이고, D.W. 그리피스는 영화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감독이다. 영화의 역사에서 ‘국가의 탄생’이 중요한 이유는 몽타주 기법을 스토리텔링에 도입한 최초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리피스 감독은 클로즈업, 페이드아웃, 컷백 등을 신의 중간에 삽입해 유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장면을 구성했다. 그전까지 영화는 오직 원 신 원 커트였다.
또 영화는 남북전쟁부터 링컨 암살로 이어지는 미국의 역사를 무려 3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대서사로 구성했는데 이런 대담한 시도 역시 영화 역사상 최초였다. 신기술과 신화적 스토리텔링 덕분에 영화는 제작비 대비 500배에 가까운 수입을 올릴 정도로 흥행할 수 있었다.
'국가의 탄생'은 흑인을 저능아로, KKK를 정의의 사도로 묘사했다.
이 영화 이후 미국은 유럽을 넘어 상업영화의 본산으로 떠올랐고, 영화가 다룬 미국 신화는 할리우드 영화의 주요 테마가 되었다. 그리피스는 오늘날 할리우드 시스템의 토대를 구축한 영화인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국가의 탄생’은 그리피스에게 영광과 동시에 오명을 안겨 주었다. 영화가 흑인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KKK를 영웅으로 묘사해 이 영화의 상영을 금지하라는 대규모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져 그리피스는 압박감에 시달려야 했다.
D.W. 그리피스 감독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낙인에 대해 그리피스는 차기작 ‘불관용’(1916)으로 대답했다. 역시 영화 역사상 걸작 중 하나로 곧잘 꼽히는 작품으로 그리피스는 미국의 역사를 넘어 세계사를 다시 썼다.
고대 바빌론부터 예수의 기독교, 유럽의 르네상스, 미국의 현대 등 네 가지 이야기를 교차편집한 이 영화는 서로 다른 시대 속 불관용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증오와 편협함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관용과 사랑 뿐이라고 설파한다. 이를 그리피스에게 대입해 보면, 흑인들이 그에게 보여준 불관용은 인류사에서 반복되어 왔기에 거두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읽힌다. 메시지는 그럴 듯하지만 결국 자기합리화로 가득한 지적 유희의 영화로 그리피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톨러런스' 중 바빌론 장면
직접 영화 제작에도 나선 그리피스는 수천 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할 정도로 돈을 쏟아 부었지만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이야기 구조 탓에 흥행에서 실패해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스파이크 리 감독은 ‘블랙클랜스맨’ 속에서 ‘국가의 탄생’을 거의 쓰레기 취급하고 있다. 젊은 시절 패기만만하게 미국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쓰겠다고 선언한 그답다. 영화는 붉은 성조기가 뒤집혀 있다가 검정색으로 물드는 장면으로 끝나는데 이는 미국의 역사에서 거꾸로 매달린 채 살아야 했던 흑인의 역사에 대한 은유이자 그리피스의 ‘불관용’에 대한 스파이크 리의 답이다.
블랙클랜스맨 ★★★★☆
영화를 무기로 쓰려면 이 정도 배짱은 있어야.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