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것은 현상이다. 어벤져스가 지난 40년간 미국 대중문화 아이콘의 왕좌를 지켜온 스타워즈의 아성을 넘보고 있다. 전세계 흥행 순위 톱10에 지금까지 스타워즈 2편, 어벤져스 3편('블랙팬서' 포함)이 들어 있었는데 연일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이하 '인피니티 워', 11.9억달러)의 지금 흥행 속도라면 10위에 랭크된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2017, 13.3억달러)를 제치고 마블 영화가 4편이나 톱10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우리는 미국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스타워즈에서 어벤져스로 넘어가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그래봐야 디즈니 천하지만).



한국에서도 '인피니티 워'는 역대 외화 최단 기간 10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기세라면 '아바타'(2009, 관객 1300만명)를 넘어 사상 최대 외화 흥행 기록을 경신할 것이 유력하다.


전 세계는 왜 '어벤져스'에 열광하는 걸까? 4가지 이유로 분석했다.



1. 슈퍼히어로 한우물 '마블' 브랜드


아카데미 트로피와 칸 종려나무가 작품성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마블이라는 브랜드는 재미를 보장하는 이름으로 여겨진다. 마블에 필적할 만한 브랜드는 애니메이션 명가 픽사 정도다. 슈퍼히어로는 마블, 애니메이션은 픽사 하는 식으로 장르가 곧 브랜드의 명성이 되었다. 아마도 관객이 회사 이름을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경우는 마블과 픽사가 유이할 것이다. 다른 스튜디오들이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도전할 때 마블은 오직 슈퍼히어로 한 분야만 파고들었고 그 결과 이 분야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독점했다.


지난 2008년 첫 작품 '아이언맨'을 개봉한 이후 2017년까지 마블 스튜디오는 영화로 120억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2009년 월트 디즈니가 마블을 40억 달러에 인수할 때 고가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이젠 헐값처럼 여겨진다.



영화사로 변신한 마블이 슈퍼히어로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뒤에는 케빈 파이기 사장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다.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처럼 그 역시 어릴 적부터 액션 피겨와 만화책을 끼고 살던 '너드(nerd)'였다. 그는 슈퍼히어로 영화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다섯 번이나 떨어진 끝에 USC 영화학교에 입학했고, 졸업 후 영화 '슈퍼맨'을 만든 리차드 도너 프로덕션에 인턴으로 입사해 '유브 갓 메일' '볼케이노' 같은 영화의 프로듀싱을 도왔다. 말이 인턴이지 개 산책시키고 세차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고 그는 한 인터뷰에서 술회했다.


하지만 그의 열정을 눈여겨본 도너 감독의 부인이자 영화제작자인 로렌 슐러 도너는 파이기를 '엑스맨'(2000)의 프로듀서로 합류시켰고, '엑스맨'의 성공 이후 마블 스튜디오 창립자 아비 아라드가 그를 스카웃해 파이기는 할리우드에 슈퍼히어로 제국을 세우겠다는 꿈에 다가갈 수 있었다. 2007년 아라드의 뒤를 이어 마블 스튜디오 대표로 취임한 파이기는 그동안 다른 영화사에 판권을 빌려주며 안정적인 사업을 해오던 마블을 영화 제작사로 변신시키는 모험을 감행했고 그 결과 대성공을 거뒀다.


케빈 파이기 마블 스튜디오 사장


2. 복잡한 세계를 단순하고 가볍게


1939년 창립한 마블이 지금까지 출간한 만화책은 1만5000종이나 된다. 스탠 리가 창조한 마블 유니버스는 9개의 평행우주로 이루어져 있고 이 가상의 세계에는 무려 5000개가 넘는 캐릭터들이 얽히고 설키며 살고 있다.


마블 영화를 즐겨보는 팬들 중 원작을 전부 챙겨본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토르가 주인공인 만화만 600권 분량에 달한다. 왠만한 마니아가 아니고서야 그 방대한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조차 힘들다.


영화는 이토록 복잡한 마블 유니버스를 단순화했다. 만화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대신 최대한 알기 쉬운 스토리로 줄이고 캐릭터에 집중했다. 파이기에 따르면 "과잉이다 싶은 정보를 과감하게 빼고 필요한 스토리만 뽑아 재조합했다."


예를 들어 토르는 600권 중 아스가드에 살다가 아버지에 의해 추방당하는 부분만 가져다 썼다. 나머지는 원작을 따라가기보다는 캐릭터의 성격을 구체화하고, 다른 캐릭터들과의 에피소드를 만드는데 더 신경 썼다. '다크 나이트' 같은 기존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영웅의 숙명을 강조해 진중한 분위기를 풍겼다면 마블의 슈퍼히어로 영화는 무게감을 덜고 가벼운 팝 음악처럼 다가갔다.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지만 인간적인 결점을 강조해 친구 같은 영웅으로 남도록 했다.


그 결과 만화를 즐기는 마니아 팬들을 넘어서 보다 광범위한 관객층에 다가갈 수 있었다. 초기 마블 영화는 10대~30대 남성 관객 위주였으나 이젠 여성 관객과 중장년층 관객도 많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프리미어


3. 모이고 해체하는 케이팝식 마케팅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인피니티 워'까지 모두 19편이 만들어졌다. 이 영화들은 전부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거대한 연속극이다. 속편, 프리퀄이라는 개념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

마블 이전의 프랜차이즈 영화에는 "전편 능가하는 속편은 없다"는 말이 있었다. 속편을 보기 전 사람들은 항상 "전편 보고 가야돼?"라고 물었고 그래서 대개 속편의 흥행은 전편보다 부진했다.


마블은 이런 고정관념을 깼다. 파이기는 "마블의 강점은 다른 세계의 점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우린 영화와 영화 사이를 연결하는 유일한 제작사다. 엄청난 연결성과 연속성은 우리의 힘"이라고 말했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에는 캡틴 아메리카만 나오는 게 아니라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헐크 등 어벤져스 멤버들이 출동하고, 또 관객들에겐 이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예전 영화들은 '슈퍼맨', '배트맨' 등 단독 캐릭터 위주로 진행됐다. 간혹 '에이리언 대 프레데터', '슈퍼맨 대 배트맨', '프레디 대 제이슨' 등 일회성 흥밋거리 이벤트를 만들기도 했지만 이런 영화들은 완성도도 형편 없었고 대개 흥행에서도 실패했다. 하지만 마블은 히어로들의 그룹 캐스팅을 상시화했다.


마블의 마케팅 전략은 케이팝 그룹 멤버들이 유닛을 만들어 수시로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것과 비슷하다. 마블의 슈퍼히어로들이 공공의 빌런에 대적하기 위해 어벤져스로 뭉치는 것은 흩어져 각자 활동하던 멤버들이 완전체로 컴백해 대형 콘서트를 여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케이팝이 전세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것과 마블이 전세계 영화시장을 접수한 전략에는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4. 신선함과 안정성의 밸런스


크리스 헴스워스, 크리스 에반스는 마블 영화에 캐스팅되기 전에는 무명 배우에 가까웠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인지도가 있었지만 마약중독 전력이 있어 사고뭉치 이미지가 강했다. 존 파브르, 루소 형제, 셰인 블랙 등은 대작을 만들어본 적 없는 감독이었다.

파이기는 수억 달러 예산이 들어가는 블록버스터를 만들면서 알려지지 않은 배우와 경험 없는 감독을 투입했다. 스칼렛 조핸슨, 베네딕트 컴버배치 등 스타 캐스팅은 어벤져스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온 뒤 시도했다.


초기 캐스팅에 대해 파이기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브래드 피트를 캐스팅했다면 사람들은 피트 이야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무명 배우가 같은 역할을 맡으면 사람들은 캐릭터 이야기를 하게 된다. 얼굴이 덜 알려진 배우는 관객에게 상상력을 자극한다."


아이언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 어벤져스 등은 슈퍼맨, 배트맨에 비하면 B급 캐릭터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슈퍼맨과 배트맨을 능가하는 캐릭터로 자리잡았다.



신선한 뉴페이스 전략으로 어벤져스를 궤도에 올린 마블은 지난 10년 동안 신선함과 안전성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마블은 거의 매년 새 캐릭터를 투입하면서 여기에 인기 캐릭터를 활용해 관객의 낯가림을 줄여준다. 비슷한 방식이 반복돼 지겨울 만해지면 마블은 역으로 악당 캐릭터를 강조해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신선함을 만든다. 그래서 끊임없이 후속편을 기대하게 한다.


'인피니티 워'에서 신선함을 담당한 캐릭터는 단연 '타노스'다. 할리우드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오가며 개성 있는 역할을 주로 맡아온 조쉬 브롤린이 연기했다. 영화에는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닥터 스트레인지 등 수많은 인기 히어로들이 등장하지만 사람들은 타노스 이야기만 한다. 관객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간적인 악당의 등장에 환호한다. 이 역시 안정성과 신선함을 조화시켜 롱런하고 있는 마블의 전략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