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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쿠데타가 발생하자 최정예요원 엄철우(정우성)는 총상을 입은 ‘넘버 1’을 데리고 남한으로 내려온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는 전 부인의 병원에 ‘넘버 1’이 왔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엄철우와 ‘넘버 1’을 생포한다. 평양을 장악한 박광동(이재용)은 동요하는 북한 민심을 잡기 위해 남한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고, 이에 미국 국방장관은 남한 대통령 이의성(김의성)에게 북한을 향해 핵 선제공격을 강행할 것을 주장한다. 새 대통령에 당선된 김경영(이경영)은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 된다며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현 대통령의 핵 선제공격에 우려를 표하지만 이의성의 의지는 확고하다. 곽철우는 전쟁을 막기 위해 ‘넘버 1’ 송환을 놓고 북한의 군부와 거래할 것을 대통령에게 제안한다. 이에 대통령 비서실장 박병진(정원중)이 협상장으로 가지만 그곳에서 정체 모를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숨진다. 곽철우는 협상장에 나온 북한쪽 인사가 박광동임을 발견하고 그의 뒤에서 실권을 장악한 세력이 따로 있음을 알게 된다.



영화는 139분 내내 긴박감이 살아있다. 북한에서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가상 상황을 전제로 남쪽 청와대와 북쪽 군부의 권력 교체 상황이 교차된다. 북쪽에선 대남 강경파가 집권하고 남쪽에선 유화적인 대통령이 집권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현직 남한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에 핵전쟁을 무릅쓰려 하고, 북쪽의 쿠데타 지휘관인 리태한(김갑수) 역시 핵을 단지 엄포용이 아닌 실제로 발사해 남한을 인질로 잡고 미국에 맞서려 하면서 상황은 일촉즉발 위기로 치닫는다. 영화는 실제 군사용어를 사용하고, 또 지금 이 시점의 남-북, 미국, 중국, 일본 관계를 반영하고 있기에 가상의 상황을 다루고 있지만 개연성은 충분하다. 이처럼 폭발력 강한 소재와 개연성이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다.



올해 헤드라인을 장식한 뉴스들 중 꽤 많은 빈도를 차지하는 것은 북한의 ICBM 미사일 발사와 6차 핵실험이었다. 북한의 도발 뉴스가 나올 때마다 대통령은 규탄 메시지를 발표하지만 북한은 이에 아랑곳 않고 미사일 발사를 이어갔다. 남한 사람들은 안보가 위기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기에 거리의 일상은 평온하기만 하다. 영화가 건드리는 지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영화는 만약 핵전쟁이 실제로 일어나기 36시간 전이라면, 그래도 평온하게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살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엄철우와 곽철우의 대화를 통해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


“분단국가 국민들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자들에 의해 더 고통 받는다.”


이는 남한과 북한 모두에서 통용되는 메시지이고, 지난 수십 년 동안 반복되어온 역사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영화에는 뛰어난 배우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특히 조연배우들의 캐스팅과 연기가 훌륭하다. 김갑수, 조우진, 장현성, 정원중, 김명곤, 이재용, 박은혜, 박선영, 김지호, 김형종 등. 특히 현직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을 연기한 '조연계의 두 대통령'인 김의성과 이경영 캐스팅은 신의 한 수다. 한국영화는 크게 이경영이 나오는 영화와 김의성이 나오는 영화로 나뉘는데 <강철비>는 두 세계가 공존하는 영화라는 점에서도 영화의 메시지와 통하는 지점이 있다.


동갑내기 정우성과 곽도원은 각각 진지함과 코믹함을 무기로 서로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두 사람은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 중반 로드무비 같은 설정으로 케미스트리를 끌어올리려 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공조>의 현빈과 유해진 같은 화학작용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나마 지드래곤이 분위기를 많이 끌어올려줘 다행이다.



<변호인>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신데렐라처럼 데뷔한 양우석 감독은 <강철비>를 통해 그것이 단지 운이 아님을 증명했다. 보는 사람에 따라 황당하게 느낄 수 있는 가상의 스토리를 설득력 있게 풀어가는 솜씨는 탄탄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한다. 그는 영화감독이 되기 전 웹툰 ‘스틸레인’의 스토리를 쓴 적 있는데, 이때 10년 동안 쌓은 군사적 지식과 남북정세에 관한 자료가 시나리오의 토대가 됐다.


곽철우가 대학에서 한국사를 강의하는 장면, 두 철우가 식당에서 잔치국수를 먹다가 주인 아주머니와 대화하는 장면 등은 분명 사족이지만 이런 장면들을 굳이 집어넣은 것은 양우석 감독의 스타일이다. 그에게 영화는 스타일보다는 메시지인 것이다. 영화의 총제작비는 157억원, 손익분기점은 관객 440만명이다.


강철비 ★★★☆

일촉즉발 핵전쟁 위기에 놓인 한반도. 개연성 충분하다


PS) 영화 초반 개성공단 폭격 때 사용된 무기가 스틸레인, 즉 강철비다. 집속탄이 폭발하면서 수만 발의 강철 탄환이 흩뿌려지는데 강철비는 1991년 걸프전 때 이라크군이 붙인 별칭이다. 살상 반경이 매우 커서 전세계 140여개국 이상이 사용 금지협약을 맺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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