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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코, 007, 스타워즈, 인디아나 존스, 가위손, 반지의 제왕, 다크 나이트... 음악만으로 장면이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싸이코의 그 유명한 샤워 장면도 음악이 없었다면 그렇게 무섭지 않았겠죠. 팡파레 음악이 없는 스타워즈도 상상할 수 없습니다. 007은 음악이 없었다면 그렇게 장수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멋진 음악들은 과연 누가 만들었을까요?
다큐멘터리 영화 <스코어: 영화음악의 모든 것>은 할리우드 명작들을 있게 한 역대 영화음악 작곡가 60여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음악감독들의 인터뷰가 곳곳에 삽입된 영화 속 장면들과 영화음악과 어우러져 영화음악의 변천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에 소개된 음악감독들 중 11명을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볼까 합니다.
알프레드 뉴먼
알프레드 뉴먼
알프레드 뉴먼은 할리우드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감독입니다. 음악 역사가들은 30년 동안 그의 말이 거의 '법'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그의 제자인 막스 스타이너, 디미트리 티옴킨과 함께 영화음악 세 명의 대부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1901년에 태어난 그는 1970년 68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무려 200편 이상의 영화음악을 작곡했습니다. 폭풍의 언덕, 노틀담의 꼽추, 마스크 오브 조로,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버나데트의 노래, 페드로 선장의 모험, 이브의 모든 것, 모정, 아나스타샤, 안네프랑크의 일기, 위대한 생애, 에어포트 등이 대표작입니다. 그는 아카데미상 후보에 43회 올라 트로피 9개를 거머쥘 만큼 할리우드 황금기는 알프레드 뉴먼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할리우드 황금 시대에 그는 영화만을 위한 오리지널 스코어를 만든 최초의 작곡가입니다. 그는 조지 거쉬인, 찰리 채플린, 어빙 베를린 등 다른 작곡가들의 음악을 지휘하기도 했고,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음악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들 토마스 뉴먼, 조카 랜디 뉴먼도 음악감독입니다.
버나드 허먼
버나드 허먼
버나드 허먼은 오손 웰즈와 알프레드 히치콕의 음악감독으로 많은 걸작들을 남겼습니다.
1911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적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를 오페라 극장에 데리고 다니면서 바이올린을 배워볼 것을 권유했습니다. 허먼은 13살에 작곡대회에서 수상할 정도로 재능을 보였고 그 역시 작곡을 좋아해 장래희망에 음악이라고 적었습니다.
허먼은 뉴욕대에 진학해 퍼시 그레인저, 필립 제임스와 함께 배웠습니다. 이후 줄리아드를 졸업한 뒤 20살에 뉴욕 뉴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게 됩니다.
1934년에 허먼은 CBS의 지휘자가 됩니다. 그리고 CBS에서 그는 오손 웰즈를 만나 웰즈가 진행하는 라디오 쇼를 위한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머큐리 극장, 캠벨 플레이하우스 시리즈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웰즈의 ‘우주전쟁’ 음악도 허먼의 작품입니다.
웰즈는 할리우드로 가고 싶어했고 허먼도 함께 갔습니다. 웰즈가 배우로서 출연한 영화 '제인 에어'의 음악도 허먼이 맡았습니다.
웰즈와의 인연은 그가 RKO 픽쳐스와 계약한 뒤로도 이어져 웰즈의 데뷔작 '시민 케인'도 허먼의 작품입니다. 허먼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되었습니다.
웰즈의 두번째 영화 '위대한 엠버슨가'도 작업했는데 음악의 절반 가량이 스튜디오에 의해 편집됐습니다. 격분한 허먼은 크레딧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허먼은 1941년 '악마와 다니엘 웹스터'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합니다. 그는 다섯 차례 노미네이트되었지만 수상한 것은 단 한 번 뿐입니다.
알프레드 히치콕과 버나드 허먼
허먼은 또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중 7편을 작업했습니다. 해리의 소동, 마니, 너무 많이 아는 남자, 현기증,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싸이코 등입니다. 그는 '새'에도 사운드 컨설턴트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영화는 음악은 없고 오직 새 소리만으로 이루어진 영화입니다.
‘현기증’은 허먼의 마스터피스로 꼽힙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음악은 미스터리한 영화의 분위기 속으로 단숨에 빨려들어가도록 돕습니다.
그러나 허먼과 히치콕의 오랜 관계는 '찢어진 커튼'으로 깨지고 맙니다. 유니버설사의 경영진에게 압박받은 히치콕은 재즈 음악 대신 팝음악을 쓰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허먼의 음악이 올드하다고 생각한 히치콕은 그에게 변화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허먼은 자기 방식대로 음악을 작곡했죠. 히치콕은 전주를 듣자마자 허먼을 노려봤고 허먼은 이렇게 소리칩니다.
"이봐 히치, 갑자기 그렇게 바꿀 수는 없어. 난 팝음악 작곡가가 아니야. 자네 영화도 팝영화는 아니잖나."
그전까지 히치콕은 허먼에게 음악에 관한 한 전권을 주었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물러서지 않는 두 거장의 설전 끝에 허먼은 히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히치, 내가 자네와 더 할 필요가 있나? 난 자네 이전에도 이 일을 해왔어."
결국 존 애디슨이 허먼 대신 음악을 맡게 되었습니다. 허먼은 나중에 히치콕과 화해를 시도하지만 히치콕이 거절했다고 합니다.
지구가 멈추는 날, 케이프 피어, 환상특급 등의 작품을 남긴 버나드 허먼은 ‘택시 드라이버’를 유작으로 남기고 1975년 64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토마스 뉴먼
토마스 뉴먼
아카데미상에 무려 14번이나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한 번도 수상한 적 없는 음악감독입니다.
토마스 뉴먼은 1955년 LA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안은 할리우드의 영화음악 왕가로 불립니다. 아버지 알프레드 뉴먼은 영화음악 대부, 형 데이빗 뉴먼과 누나 마리아 뉴먼, 삼촌 라이오넬 뉴먼과 에밀 뉴먼, 사촌 랜디 뉴먼과 조이 뉴먼도 모두 영화음악을 했습니다.
토마스 뉴먼은 USC에서 오케스트레이션을 배우고 예일대에서 예술학사와 음악석사를 받습니다. 예일대에서 그는 그의 멘토가 되는 스티븐 손드하임을 만납니다.
처음에 뉴먼은 브로드웨이 연극의 음악을 만드는 것을 더 좋아했지만 이후 아버지인 알프레드 뉴먼 후계자들의 지속적인 권유로 인해 영화음악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1979년 그는 '페이퍼 체이스'라는 영화로 영화음악에 데뷔합니다.
1983년 그는 존 윌리암스의 초청으로 '제다이의 귀환' 오케스트라 녹음 현장을 보게 됐고 이때 뉴먼은 이 일이 만만한 직업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합니다.
뉴먼은 여인의 향기, 쇼생크 탈출, 작은 아씨들, 더 워, 내 마음의 수호천사, 호스 위스퍼러, 밋 조 블랙, 그린 마일, 에린 브로코비치 등의 영화음악을 만들었습니다.
'아메리칸 뷰티'는 그의 대표작입니다. 퍼커션 악기의 과감한 사용으로 도덕적으로 모호한 영화의 분위기를 오프닝에서부터 잡아냅니다.
이후 로드 투 퍼디션, 니모를 찾아서,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월E, 레볼루셔너리 로드, 헬프, 철의 여인, 패신져스 등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토마스 뉴먼의 이름이 수상자로 불릴 날이 올까요?
존 윌리암스
존 윌리암스
존 윌리암스의 음악은 신낭만주의로 불립니다. 19세기말 차이코프스키나 바그너 등 거대한 스케일의 오케스트라 음악을 떠올리게 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별칭입니다.
1932년 뉴욕 출신인 그는 1948년 그의 가족이 LA로 이사가면서 UCLA에 들어갑니다. 그는 UCLA에서 이탈리아 작곡가 마리오 카스텔누오보 테데스코로부터 개인교습을 받았습니다.
1952년 그는 공군에 징집돼 미국 공군 밴드를 위한 음악을 작곡했고, 1955년엔 줄리아드에 입학해 로시아 레빈느로부터 피아노를 배워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그는 재즈 피아니스트로 재즈 클럽에서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1950년대에 그는 '조니'라는 가명으로 여러 TV프로그램의 음악을 작곡하며 경력을 쌓습니다. 첫 번째 영화음악은 1958년 ‘대디 오’라는 B급 영화였습니다. 그는 헨리 맨시니의 세션 뮤지션이었는데 1959년 ‘피터 건’의 OST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음악에 발을 들여놓습니다.
1967년 ‘인형의 계곡’으로 처음으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릅니다. 1969년 ‘굿바이 미스터 칩스’로 두번째 후보에 오릅니다. 그리고 1971년 ‘지붕위의 바이올린’으로 첫 번째 아카데미 음악상을 거머쥡니다.
1970년대 초, 그는 프로듀서 어윈 알렌의 재난영화 음악을 맡으며 커리어를 확장시켜갑니다. 포세이돈 어드벤처, 타워링, 대지진 등입니다.
존 윌리암스
1974년 윌리암스는 드디어 스티븐 스필버그와 만납니다. 스필버그의 데뷔작 ‘슈가랜드 익스프레스’부터 두 사람은 공동작업합니다. 이후 그는 스필버그의 거의 모든 영화(3편을 제외한)에서 음악을 담당했습니다.
1976년에는 ‘패밀리 플롯’에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과 작업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습니다. 히치콕은 윌리암스의 음악을 매우 마음에 들어했다고 하는군요.
1958년부터 무려 60년간 활동하고 있는 존 윌리암스는 영화음악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등 할리우드 거장들의 영화음악에는 존 윌리암스라는 이름이 꼭 들어가죠. 죠스, 스타워즈, 미지와의 조우, E.T, 인디아나 존스, 슈퍼맨, 홈 얼론, 쥬라기 공원, 쉰들러 리스트, 해리 포터, 게이샤의 추억,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 대표작은 셀 수도 없습니다.
그는 23개의 그래미상, 5개의 아카데미상, 4개의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했습니다.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된 작품만 50편입니다. 이는 월트 디즈니 이후 두번째로 많은 노미네이션 기록이라고 하는군요. AFI는 스타워즈 테마음악을 영화 역사상 최고의 영화음악으로 꼽기도 했습니다.
제리 골드스미스
제리 골드스미스
제리 골드스미스는 영화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작곡가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그의 영화음악의 특징은 다양한 민속 악기를 활용하는 독특한 구성을 오케스트라와 결합하는 것입니다.
그는 천재였습니다. 1974년 ‘차이나타운’의 경우 다른 작곡가가 두 손 든 영화였는데 10일 만에 작곡을 해냈습니다. 동양적인 사운드와 재즈를 결합했는데 트럼펫 하나, 피아노 넷, 하프 넷, 퍼커션 둘, 스트링 섹션으로 구성된 앙상블을 재빨리 만들어 연주했습니다. 아카데미상 음악상에 노미네이트되었지만 그해 ‘대부’의 니노 로타에게 밀려 수상은 못했습니다.
1929년 LA에서 태어난 골드스미스는 16살때 알프레드 히치콕의 '스펠바운드'를 보고 미클로스 로자의 음악에 푹 빠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음악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USC에 진학해 로자의 음악 강의를 듣습니다만 이상과 현실은 달랐던 모양입니다. 그는 조금 더 실용적인 음악을 하고 싶어 수강을 중단하고 LA 시티 칼리지로 전학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작곡과 지휘, 코칭을 병행합니다.
1950년 21살에 그는 CBS 음악 부서에 타이피스트로 취직합니다. CBS 라디오 쇼를 위한 음악 악보를 만들었습니다. '환상특급' 에피소드 일부의 음악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의 영화음악 데뷔는 1957년작 서부영화 '블랙 패치'입니다. 그리고 그가 이름을 알린 첫 영화는 1962년작 웨스턴 '로니 브레이브'입니다. TV 쇼 '스릴러'에서 그의 재능을 알아본 알프레드 뉴먼의 소개로 이 영화에 투입됐습니다. 또 그해 작업한 '프로이드'로 그는 아카데미상 음악상에 처음으로 노미네이트됩니다. 이후 그는 아카데미 음악상에 18번 노미네이트되어 1976년 ‘오멘’으로 단 한 번 수상합니다.
골드스미스는 로버트 와이즈, 하워드 혹스, 오토 플레밍거, 조 단테, 리차드 도너, 로만 폴란스키, 리들리 스콧, 마이클 위너, 스티븐 스필버그, 폴 버호벤, 프랭클린 J. 샤퍼 등 할리우드의 거장들과 작업했습니다.
그의 대표작은 스타트렉 극장판, 샌드 페블스, 혹성탈출, 패튼 전차군단, 빠삐용, 차이나타운, 오멘, 브라질에서 온 소년, 카프리콘 원, 에일리언, 아웃랜드, 폴터가이스트, 그렘린, 토탈 리콜, 원초적 본능, 에어 포스 원, LA 컨피덴셜, 뮬란, 미이라, 람보, 적과의 동침, 포에버 영, 할로우 맨, 썸 오브 올 피어스, 스타트렉 네메시스 등입니다.
골드스미스의 음악은 20세기초 클래식 음악의 모더니즘과 인상주의에서 영향받았습니다. 그는 그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준 작곡가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미클로스 로자, 버나드 허먼, 벨라 바르톡, 알반 버그 등을 꼽습니다.
골드스미스의 제자인 마르코 벨트라미는 2001년 한 인터뷰에서 그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제리 골드스미스는 옛 할리우드의 음악 스타일과 현대 스타일을 연결시켜주는 브릿지 역할을 한 작곡가다."
골드스미스는 2003년 '루니 튠스: 백 인 액션'을 마지막으로 2004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워드 쇼어
하워드 쇼어
하워드 쇼어는 같은 캐나다인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음악감독이자 반지의 제왕으로 아카데미 트로피를 3개 수상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1946년 캐나타 토론토에서 태어난 쇼어는 8살때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해 13살부터 밴드에서 다양한 악기를 연주합니다. 이후 그는 보스턴 음대에서 수학한 뒤 1969년부터 3년간 재즈 퓨전 밴드 '라이트하우스'의 멤버로 활동했습니다.
쇼어는 캐나다 마술사 더그 헤닝의 뮤지컬 '스펠바운드'를 위한 음악을 작곡하고,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음악을 맡으면서 인지도를 쌓아갑니다. 댄 에이크로이드의 ‘블루스 브라더스’ 밴드명도 쇼어가 지어준 것입니다.
쇼어는 80여편의 영화음악을 맡았습니다. 첫 영화는 1978년 저예산 스릴러 'I Miss You, Hugs and Kisses'입니다. 이어서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브루드'를 작업합니다. 크로넨버그와는 이후 꾸준하게 작업해 단 한 편(데드 존)을 제외하고 크로넨버그 영화의 음악을 모두 쇼어가 맡았습니다. 비디오드롬, 플라이, 네이키드 런치, M 버터플라이, 폭력의 역사, 이스턴 프라미스 등입니다. '플라이'가 오페라로 제작될 때 오페라 영화음악도 쇼어가 맡았습니다.
하워드 쇼어
하워드 쇼어의 이름을 전세계적으로 알린 작품은 반지의 제왕 3부작과 호빗 3부작입니다. 특히 반지의 제왕 1편과 3편으로 그는 3개의 아카데미상 트로피를 수집하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또 마틴 스콜세지의 특근, 빅, 양들의 침묵, 필라델피아, 에드우드, 노바디스 풀, 세븐, 더 게임, 개와 고양이에 관한 진실, 댓 씽 유 두!, 패닉 룸, 갱스 오브 뉴욕, 디파티드, 휴고 등이 쇼어의 대표작입니다.
대니 엘프먼
대니 엘프먼
"영화음악에서 단 하나의 규칙이 있다면 그것은 아무런 규칙이 없다는 것이다."
대니 엘프먼은 버나드 허먼의 이 말을 신봉할 만큼 개성 강한 음악가입니다.
1953년 LA에서 태어난 그는 1974년부터 1995년까지 뉴웨이브 밴드 '오잉고 보잉고'의 리드 싱어이자 작곡가로 활동했습니다.
1976년에는 배우로 영화 경력을 시작했는데요. 영화음악을 시작한 것은 1980년 그의 형인 리차드 엘프만이 연출한 '포비든 존'의 음악을 맡으면서부터입니다.
1985년 팀 버튼이 ‘피위의 어드벤처’의 음악을 엘프먼에게 맡깁니다. 버튼은 엘프먼이 정식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점에 끌렸다고 합니다. 또 오잉고 보잉고 밴드의 음악을 매우 마음에 들어했다고 하네요.
대니 엘프먼
가위손, 에드우드, 크리스마스의 악몽, 스위니 토드, 찰리와 초콜릿 공장,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등 그는 팀 버튼과 전성시대를 함께 했습니다.
배트맨으로 그래미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상에 4회 노미네이트 되었습니다.
‘심슨’의 테마음악도 엘프먼의 작품이고,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저스티스 리그 등도 그의 작품입니다.
엘프먼은 영향 받은 작곡가로 벨라 바르토크, 필립 글래스, 루 해리슨,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모리스 라벨, 에릭 사티,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차이코프스키 등 클래식 작곡가들과 스페셜, 매드니스, 셀렉터, XTC 등 팝 밴드를 꼽았습니다.
엘리엇 골든살
엘리엇 골든살
엘리엇 골든살은 ‘생각하는 영화음악’을 만듭니다. 창의적인 방법으로 여러 음악 스타일을 조화시키는 그의 작품은 실험적이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기교로 가득 차 있습니다.
1954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맨해튼 음악학교에 다니던 시절 아론 코플란드와 존 코리글리아노를 사사했습니다.
그의 대표작은 에일리언3, 마이클 콜린스, 배트맨 포에버, 히트, 퍼블릭 에너미,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데몰리션 맨, 드럭스토어 카우보이, 스피어, 프리다 등입니다. 2002년 그는 '프리다'의 영화음악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습니다.
마르코 벨트라미
마르코 벨트라미
마르코 벨트라미는 주로 공포영화 음악을 만들며 명성을 얻었습니다. 스크림, 미믹, 패컬티, 레지던트 이블, 돈 비 어프레이드, 우먼 인 블랙 등입니다.
1966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브라운대를 졸업한 뒤 예일 음악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이후 LA로 옮겨 USC 손튼 음악학교에서 제리 골드스미스에게 배웠습니다.
그의 영화음악 데뷔는 1994년 ‘데스 매치’였습니다. 그는 1996년 ‘스크림’으로 명성을 얻습니다. 웨스 크레이븐과 그는 오랜 친구사이기도 합니다. 크레이븐 뿐만 아니라 알렉스 프로야스, 렌 와이스먼, 존 무어, 기예르모 델 토로의 영화를 주로 맡아왔습니다.
헬보이, 울버린, 로건, 엔젤 아이스, 블레이드 2, 아이 로봇, 레드 아이, 다이하드 4.0, 허트 로커 등이 대표작입니다. 2015년엔 필립 글라스와 함께 ‘판타스틱 4’를 공동작업하기도 했습니다.
아카데미 음악상에 두번 노미네이트 되었습니다.
알렉산더 데스플라
알렉산더 데스플라
알렉산더 데스플라는 프랑스영화로 시작해 헐리우드와 독립영화계를 넘나들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196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데스플라는 다섯살에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또 플루트와 트럼펫도 불었습니다. 그의 음악에 대한 관심 분야는 넓어서 라벨, 드뷔시 같은 프랑스 교향곡 작곡가부터 재즈, 에로틱 세계음악 등까지 다양합니다.
그의 첫 영화음악은 1986년작 'Le souffleur'이고, 헐리우드 진출작은 2003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입니다.
그의 대표작은 시리아나,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 더 퀸, 더 퀸, 황금 나침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트와일라잇,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킹스 스피치, 문라이즈 킹덤, 아르고, 제로 다크 서티, 고질라, 이미테이션 게임, 언브로큰 등이 있습니다.
아카데미상에 7번 노미네이트되었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수상했습니다. 프랑스 세자르 영화상에서는 8번 노미네이트돼 3번 수상했습니다.
한스 짐머
한스 짐머
한스 짐머의 음악은 전자 사운드를 전통적인 오케스트라에 녹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1957년 독일에서 태어난 그는 1980년대부터 영화음악에 뛰어들어 150편 이상의 영화에서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1980년대 초중반 런던으로 이주해 스탠리 마이어스와 함께 릴리야드라는 스튜디오를 차려 영화음악을 작업하기 시작합니다. 문라이팅, 인시그니피컨스,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등의 영화음악을 만들었습니다.
한스 짐머
짐머가 단독으로 영화음악을 맡은 작품은 1987년 터미널 익스포져라는 작품부터입니다. 이후 그는 1988년 할리우드로 이주해 레인맨의 음악을 만들고 이 영화의 대성공으로 촉망받는 작곡가로 인정받습니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델마와 루이스, 파워 오브 원 등 그는 1990년대 대표작들의 음악을 만들며 명성을 얻습니다.
1995년 짐머는 라이온 킹으로 마침내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습니다. 캐리비안의 해적, 더 씬 레드 라인, 글래디에이터, 라스트 사무라이, 다크 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블레이드 러너 2049 등이 대표작입니다. 그는 4개의 그래미상 트로피와 2개의 골든글로브 트로피도 갖고 있습니다.
그의 스튜디오는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 있으며, 그는 드림웍스의 음악 부문장이기도 합니다.
영화 <스코어>
그밖에 영화 <스코어>에서 소개하고 있는 영화음악 감독 리스트:
레이첼 포트먼
스티브 자블론스키
브라이언 타일러
베어 맥크레리
존 데브니
조 크레머
해리 그렉슨 윌리암스
패트릭 도일
애티커스 로스
존 파웰
마크 마더스보
다리오 마리아넬리
트레버 라빈
헨리 잭맨
크리스토프 벡
타일러 베이츠
데이빗 아놀드
크리스토퍼 영
데이빗 뉴먼
헤이터 페레이라
마이클 다나
콘래드 포프
조셉 트라파네스
맥스 스타이너
머빈 워렌
크리스토퍼 레너츠
데보라 루리
J. 랄프
벅 샌더스
존 배리
J.A.C. 레드포드
퀸시 존스
랜디 뉴먼
트렌트 레즈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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