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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눈에 보이는 것의 이면에 관심이 많다. 세계의 질서를 구성하는 비밀(파이), 마약중독 환각과 욕망(레퀴엠), 시공간을 초월하는 영원한 삶(천년을 흐르는 사랑), 흘러버린 영광의 시간(더 레슬러), 인간 내면에 잠재된 광기(블랙스완), 종말을 앞두고 신의 계시를 받은 인물(노아) 등이 그가 만드는 영화의 소재다.


<마더!>는 이 모든 것의 집약이자 극단이다. 영화는 외딴 저택을 무대로 그곳에서 펼쳐지는 여러 캐릭터들의 행동과 감정 변화를 그린다. 눈에 보이는 것은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부부의 집에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이상한 손님과 관련한 이야기지만 뜯어보면 이 영화는 성서를 재해석한 것이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맨 프럼 어스>, <최후의 Z> 같은 영화가 떠오르는데 그 영화들보다 더 스케일이 크고, 더 야심만만하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외딴 저택에서 홀로 깨어난 마더(제니퍼 로렌스)는 남편이 보이지 않자 문을 열고 나가본다. 곧 문 뒤에서 남편(하비에르 바르뎀)이 나타난다. 그는 시인이지만 최근엔 시를 쓰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다. 몸이 좋지 않은 마더는 자주 벽이 꿈틀거리는 듯한 환각을 경험한다. 부부가 살아가는 집은 부부의 피조물이자 둘을 보호해주는 공간이다. 하지만 마더는 자신이 만든 집에서 뭔가 불길한 징조를 계속해서 느낀다.


어느날 남자(에드 해리스)가 찾아와 죽기 전에 시인을 꼭 만나고 싶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런데 이 남자는 많이 아프다. 갈비뼈가 있는 자리에 피가 흥건하다. 다음날 여자(미셸 파이퍼)가 나타난다. 여자는 마더의 집을 이곳저곳 휘젓고 다니며 참견한다. 부부 사이엔 아이가 꼭 있어야 한다고 충고까지 한다.



남자와 여자는 금단의 방에 들어가 남편이 애지중지하는 하트 모양의 크리스탈을 깨뜨린다. 이에 격분한 남편은 자신의 방에 대못질을 하며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다. 마더는 남녀에게 추방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남녀는 나가지 않고 버틴다. 그날 밤 남녀는 섹스를 한다. 그리고 다음날 그들의 자식이 집으로 찾아온다. 두 아들은 오자마자 유산을 놓고 싸운다. 남편은 형을 나무란다. 그러자 형은 동생을 죽인다. 집 안에 씻을 수 없는 핏자국이 남는다.



장례식이 열리고 사람들이 찾아온다. 마더는 자신의 집을 망가뜨리는 인간들에 진이 빠진다. 사람들이 가고 나서 마더는 남편에게 왜 나를 이렇게 소홀하게 대하냐며 불만을 털어놓는다. 그날 밤 둘은 잠자리를 갖고 마더는 드디어 임신에 성공한다.


다음날 남편은 영감이 떠올랐다며 멋진 시를 써낸다. 그 시를 읽고 감명받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집 안팎은 다시 인간들로 붐빈다. 남편을 추앙하고 떠받드는 사람들이 집으로 쳐들어온다. 마더는 다시 혼비백산한다. 인간들은 그들끼리 싸우고 죽인다. 그 과정에서 집의 온갖 집기들이 깨지고 부서진다. 마더의 집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된다.


마침내 마더는 아들을 낳는다. 하지만 집에 가득 들어온 인간들은 그 아기를 죽이더니 살을 뜯어 먹는다. 그리스도의 몸을 먹는 신자들처럼 카니발리즘에 거리낌이 없다. 모든 것을 빼앗긴 마더는 견딜 수 없다. 그는 집을 불살라 모든 것을 끝내기로 작정한다. 말리는 남편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거잖아요."



집이 불타고 죽어가는 마더의 몸에서 남편은 '사랑하는 마음'을 꺼내 가져간다. 하트 모양의 크리스탈이 남편의 방으로 돌아온다. 폐허가 된 집이 새 집으로 바뀌고 잠들어 있던 마더가 다시 깨어나면서 영화는 끝난다.


영화의 모든 등장인물에는 극중 이름이 없다. 영화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알레고리라서 그렇다. 마더는 대자연, 남편은 신, 남자는 아담, 여자는 이브, 두 아들은 카인과 아벨, 마더가 낳은 아이는 예수, 그외 인간 군상은 도둑, 협잡꾼, 성직자, 군인, 경찰 등 여러 직업들을 상징한다. 위 스토리를 이러한 상징을 감안해 다시 읽어보면 그때서야 영화의 줄거리가 말이 된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영화 속 상징들은 매우 낮은 수준으로 매복돼 있다. 그래서 상징을 읽어내는 것이 어려운 영화는 아니다. 다만 이 모든 것이 상징에서 비롯됐다는 영화의 의도가 중반쯤, 너무 비현실적인 상황이 반복된 뒤에야 드러나기 때문에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한 느낌이 든다.




<마더!>의 독특한 점은 영화가 대자연을 의인화한 여성의 시점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는 듯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인간을 타자화한 자연의 이야기다. 그동안 많은 문학작품들은 자연을 여성(특히 엄마!)에 비유해왔는데 <마더!>는 이를 고스란히 비주얼로 구현해냈다. 서로를 파괴하는 이기적인 인간들과 인간들의 응석을 다 받아주는 신의 이타주의를 자연은 끝내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을 지켜주어야 할 신은 인간에게 빠져서 더 이상 자신에게 아무 관심도 없어 보인다. 집은 심하게 부서져 회복 불가능한 지경이 되어버렸다. 이 상황에서 자연이 택할 수 있는 복수는 망가진 세상(저택)을 파괴하고 새로 짓는 것뿐이다. 영화에는 무신론자이자 환경론자인 아로노프스키의 의도가 강렬하게 묻어난다.



감독이 작정하고 뚝심 있게 밀어붙인 영화이고, 아름다운 비주얼로 감쪽같이 속이는 영화다. 스토리의 새로움은 없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새로운 영화다. 세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점에서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없는 영화들이 즐비한 할리우드에서 자신만의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응원받아야 할 일이다.


마더! ★★★★

그녀가 바로 세상의 시작이자 끝.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하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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