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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삼형제 같은 세 남자가 있다. 한 명은 고아원에서 자란 한물간 건달 양익준, 한 명은 어리버리한 간질 환자 윤종빈, 또 한 명은 공장에서 해고당한 뒤 밀린 월급 받으려고 사장에게 절 하고 다니는 탈북자 박정범이다.


마땅한 직업 없이 수색동에서 어슬렁거리는 세 남자는 한 여자를 좋아한다. ‘고향주막’을 운영하며 의식불명의 아버지 뒷바라지를 하는 한예리다. 예리에게도 사연이 있다. 중국에 살던 그녀는 자신을 낳고 한국으로 도망간 아버지를 찾아 한국에 왔다가 눌러 살게 됐다.



세 남자와 한 여자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남자들은 모두 고만고만한 지질이여서 몸도 마음도 건강한 남자가 이상형이라는 예리에게 고백할 용기를 내는 남자는 없다. 영화는 성적 긴장감 없이 이들의 농담과 신세한탄과 어울리지 않는 한가로움으로 러닝타임을 채운다. 네 사람은 다함께 술을 마시고, 알까기 게임을 하고, 긴 터널을 건너 상암동으로 가서 영화를 보고, 정범이 다니던 회사를 찾아가 사장(김의성)에게 돈을 받아낸다. 세상에서 소외된 그들은 마치 이태백의 시처럼 여유롭게 희희낙락거린다. 이 부조화가 영화에 시종일관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영화 <춘몽>을 읽는 키워드는 ‘경계’다. <경계> <이리> <경주> <풍경> 등 장률 감독의 전작들처럼 이 영화는 여러 경계를 넘나든다.


우선, 한국인과 이방인의 경계. 탈북자인 정범은 북한보다 남한을 더 싫어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예리의 지적에 거기나 여기나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실제 박정범 감독은 그의 데뷔작 <무산일기>에서 한국 사회에서 소외받는 탈북자를 실감나게 연기한 적 있어 이 영화 속 정범 캐릭터는 그 연장선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둘째, 사회인과 비사회인의 경계. 세 남자가 동물원에 갔을 때 넥타이 맨 남자가 혼자서 이상한 행동을 하자 익준이 말한다. “저 사람도 우리랑 똑같아.” 실제 양익준 감독 역시 <똥파리>에서 한물간 건달 연기로 유명세를 얻었고 이 영화 속 캐릭터도 그때 그 모습 그대로다.


셋째, 빈부의 경계.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수색동과 상암동은 터널 하나만 건너면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지만 빈부의 격차가 고스란히 드러날 정도로 다르다. 예리는 매주 상암동으로 걸어가 영상자료원에서 무료 영화를 보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다. 하지만 수색역과 디지털미디어시티역 사이는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다. 종빈은 이 영화 속 캐릭터 중 유일하게 물려받은 재산이 있는 집주인이지만 상암동이 아닌 수색동에 집이 있다는 이유로 그마저 놀림감이 되고 만다.



네 사람에게는 수색동을 떠나지 못할 이유가 있다. 예리는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아버지 때문에, 정범은 북한에서 올지 모르는 가족 때문에, 종빈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집 때문에, 익준은 동네 시장 상인들이 왜 돈을 내냐고 말할 정도로 끈 떨어져서 마땅히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네 사람은 경계를 떠나지 못하고 떠돈다.


한예리는 장률 감독의 다른 여성 캐릭터인 <경주>의 신민아, <이리>이 윤진서처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녀는 자기 좋다는 남자 거부하지 않지만 누구도 선택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 거리의 옷장에 들어가는 할머니와 이를 예리가 따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예리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녀는 자기만의 옷장에 숨고 싶은 사람이다. 그녀에게 세상은 거리에 전시된 옷장과 같다. 누구나 그녀를 볼 수 있지만 또 아무도 보려 하지 않는다. 옷장 안에 갇힌 할머니는 죽음을 상징하고, 그녀는 삶의 의욕 없이 죽음을 생각한다.


이에 비해 그녀의 아버지는 의식이 없지만 그녀와 달리 영화 속에서 말을 한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깜짝 놀란다. 사주를 보러 갔다가 아버지가 오래 살 것이라는 말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된 예리는 자신은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는데 역술인(강산에)은 대답 대신 아버지가 정말 오래 살 거라고만 답한다. 예리는 이번에도 자신의 감정을 보여주지 않고 나중에 아버지와 단둘이 있을 때 사실 아버지를 버리고 싶어 했노라고 고백한다. 듣지 못할 상대에게만 속내를 털어놓는다. 하지만 사실 아버지는 모든 말들을 듣고 있다는 것을 영화는 은연중에 암시한다.



예리의 모호한 성격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다. 예리가 평소 이상형이라고 여겼던 남자(유연석)가 뜬금없이 고향주막 안으로 들어오더니 맥주를 주문한다. 놀란 예리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가 유연석과 함께 밖으로 나가고 영화는 컬러 화면으로 전환돼 예리의 영정사진을 보여준다. 주막 안에 남은 세 남자는 예리를 추모하고, 휠체어에 타고 있던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 걸어간다.


이 갑작스런 마지막 장면은 과연 현실일까? 스토리 전개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는 가정은, 예리는 사주를 통해 자신이 일찍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고, 사진관에서 영정사진을 미리 준비했기에 그녀의 죽음 역시 예견된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옷장 속에 들어갈 때부터 죽음을 예감했다. 운명의 남자는 일종의 저승사자여서 예리는 그를 따라 주막을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마지막 장면이 컬러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현실이 아니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흑백과 컬러는 현실과 환상, 혹은 현실과 꿈을 각각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춘몽>의 경우에도 흑백 화면이 현실이라면 컬러는 꿈일 수 있다. 이때 꿈을 꾸는 주체는 예리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사건들의 관찰자이자 조언자로 영화에 참여했었다. 예리가 이상형의 남자를 만나 사라졌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딸이 자신을 버리고 죽은 것과 다름없다. 아버지는 휠체어에서 일어나 딸을 찾아 헤맨다. 카메라는 동네를 한바퀴 돌다가 기차역 앞 전선의 위험 표지판 앞에 멈춰선다. 그곳은 넘어갈 수 없는, 꿈 속에서도 떠날 수 없는 경계다.


영화의 소재는 무겁지만 분위기는 경쾌하다. 가볍게 툭툭 던지듯 전개되면서도 영화는 시종일관 무게감을 잃지 않는다. 짧지만 강렬하게 여운이 남는 이태백의 시처럼 <춘몽>의 울림은 오래 지속된다.


<최악의 하루>에 이어 이번에도 세 남자에게 사랑받는 여자를 연기한 한예리는 이런 종류의 생활 연기에 적역이고, 양익준, 윤종빈, 박정범 등 개성 강한 세 감독들의 바보 삼형제 연기도 강렬하다. 또 카메오로 등장하는 신민아, 유인석 등 독립영화답지 않은 초호화 캐스팅이 눈길을 잡아 끈다.


춘몽 ★★★★☆

경계에서 꾼 꿈. 가볍게 툭툭 던지듯 만든 잔재미의 끝판왕.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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